아무 생각 없이 나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에 한두 시간씩 걷는 운동을 하는데 멀리 가기도 싫고 동네나 한 바퀴 돌아보려고 집을 나섰다. 집들만의 동네처럼 집만 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집안에서 무언가를 하는지 동네는 사람 소리가 없다. 학교를 끼고 운동장 옆을 걸어가면 성당이 나온다. 평소 같으면 주차장에 신자들의 차로 꽉 차있을 시간인데 코로나로 집회 금지가 되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은 남편과 나 둘 뿐이다. 큰길로 나가보니 의외로 차들이 많이 다녀서 엄청 시끄럽다. 매일 조용한 숲 속에서 산책을 하는데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차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차 소리를 피해 운동장으로 걷고 싶은데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갈 수 없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는 언덕이 나온다.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옆으로 차들이 쌩쌩거리며 달려간다.
어디를 저리도 바쁘게 가는 걸까? 사람도 만나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어딘가 차로 드라이브라도 하러 가는 모양이다. 아이들하고 생활하기가 말같이 그리 쉽지 않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뭐라도 놀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저러고 다닐 것이다. 애나 어른이나 심심해서 어쩔 줄 모른다. 뭐라도 봐야 하고 뭐라도 해야 하는데 붙잡아 놓으니 앉아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꼼짝을 안 한다. 추워도 밖에 나와 걸어보면 나름 좋은데 아예 생각을 안 한다. 억지로 할 수도 없으니 애들 하는 대로 놔두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손주들을 데리고 다니며 맛있는 것도 사주고 재미있는 곳도 데리고 다니고 싶은데 코로나가 막는다. 한 지붕 안에 살지 않으면 방문도 안되기에 그저 마음이 답답하다. 겨울방학인데 꼼짝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말로 자숙하자고 떠들던 이곳 정치인들 몇 명이 살그머니 하와이와 멕시코 그리고 미국 등 해외로 여행 간 것이 드러나 사회가 들썩인다. 꼭 필요한 여행 말고는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다.
(사진:이종숙)
캐나다 동부에 있는 온타리오주의 재무장관이 사람들에게 집안에서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라고 해 놓고 몰래 캐리비안 해안에 여행을 간 것이 알려졌다. 사람들은 안 그래도 코로나로 예민한 신경에 그런 소식을 듣고 분노하고 그 사람은 결국 장관직을 사퇴하는 일이 생겼다. 잠깐의 잘못된 생각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세상은 비밀이 없다. 살짝 갔다 오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 사람 생각처럼 세상이 어수룩하지 않다.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 다니며 살았는데 여행을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서로가 참고 협조하며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극복하자고 하는데도 방역 규칙을 어긴다. 앞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니 언덕 위에 사람들이 보인다. 미끄럼을 타기 위해 사방에 사람들이 서 있고 여기저기서 타고 내려간다. 넘어지고 뒤집어지며 신나게 타고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그곳에 인생이 보인다.
힘들게 올라오고 재미있게 내려간다. 내려가면 다시 올라와야 탈 수 있다. 내려가기는 쉬워도 올라오기는 힘들다. 한없이 올라갈 수도 없고 끝없이 내려갈 수도 없다.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반드시 있다. 사방에서 내려가도 다치거나 부딪히지 않고 잘 내려간다. 가다가 부딪힐 것 같으면 교묘히 피하며 위험을 넘긴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길거리에 차들이 오고 가는 것 같다. 그 옛날, 어릴 때 보았던 교통순경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손을 위아래 좌우로 움직이며 교통정리를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교통정리를 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다들 잘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애나 어른이나 미끄럼 타는 것이 재미있는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크고 작게 들려오는 행복한 날이다. 미끄럼틀을 뒤로하고 공원을 걸어본다. 30년이 넘은 공원인데 처음에는 나무도 어리고 여러 가지가 참으로 미약했는데 지금은 30 대 청년의 모습이 되어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이종숙)
해마다 캐나다 생일에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시내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밴드가 와서 흥을 돋운다. 사람들이 많이 오니 기념품 장사, 음식 장사들이 와서 먹고 놀며 하루를 보내고 밤에는 불꽃놀이를 구경한다. 텐트나 야외용 의자를 가지고 와서 음식도 먹고 누워서 불꽃이 터지며 찬란하게 퍼져 오르는 밤하늘을 구경하며 하루를 즐기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그것마저 못했다. 여름에는 새파란 잔디가 끝없이 깔려 있어서 사람들이 걷기도 하고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운동도 하는데 아무도 없다.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는데 어느새 하늘이 석양으로 빨갛게 물들어 간다. 동지가 지나서 해도 조금씩 길어지고 밤도 짧아진다. 공원을 빠져나와 초급대학교가 있던 빌딩을 지난다. 여름 내내 사람들이 코로나 검사를 맡으려고 긴 줄을 섰던 곳인데 눈으로 덮인 채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서 있다.
(사진:이종숙)
그 옆에 초등학교를 지난다. 지난봄에 산에서 내려온 늑대가 새끼를 낳아 기르던 곳인데 지금은 텅 비어 있다. 겨울방학을 해서 몇몇 동네 아이들이 언덕에서 미끄럼을 탈뿐 조용하다. 길을 건너 집을 향한다. 여전히 동네는 조용하다. 동네 한 바퀴를 걸어도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남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좋다. 지나간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숨 쉴 사이도 없이 바빴던 날들이 소리 없이 가고 아련한 추억만 남아있다. 시간이 달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시간과 동행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이 대로 시간속도가 같다는데 너무 빨리 간다. 시간아, 그렇게 빨리 가면 과속 티켓을 받을 텐데 이제 그만 천천히 가자. 새롭게 찾아온 오늘도 조용히 막을 내리며 어둠이 세상을 덮는다. 오늘이 있던 자리에 내일이 와서 오늘이 된다.
삶은 이렇게 알아서 돌고 돈다. 언제가 시작이고 언제가 끝이 될지 아무도 모르며 세월은 왔다 가고 사람도 오고 간다. 동네를 돌며 내 마음도 따라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