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바람이 차다.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꼈어도 냉한 기온으로 춥다. 집에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 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나왔다. 머리는 집에 있어도 밖에 있어도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지만 몸은 집에 있으면 가만히 있게 된다. 추워도 이렇게 나와서 걷다 보면 몸이 좋아하는 것 같다. 해가 없는 오솔길을 걸어보니 아무래도 너무 추운 것 같아서 큰길로 나왔는데 마찬가지다. 조금 걷다가 해가 비치는 숲 속으로 들어가 보니 조금 낫다. 사람들의 발자국은 없고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간 흔적이 있다. 햇빛이 곱게 쏟아져 아까보다는 따스하다. 눈이 온 지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깨끗하다. 나무들도, 마른 풀잎들도 겨울을 이겨내느라 가만히 있다. 죽은 듯 서있지만 봄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다람쥐들도 열심히 바스락 대며 나무를 오르내린다.
눈이 올 듯 기온은 차지만 아직 하늘은 파랗고 높다. 이곳에 늑대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직 산짐승을 만나지 못했다. 어제 차를 타고 다른 산책길 근처를 지나가는데 늑대 한 마리가 동네 입구를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작년 봄에 집 가까이에 있는 학교에서 새끼를 낳고 사는 늑대를 보았지만 겨울에 보기는 처음이다. 이렇게 숲을 걷다가 늑대를 만난 적도 있었는데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다. 여름에는 보이지 않는 숲이 겨울에는 훤히 보인다. 눈이 쌓여 겨울이 더 위험할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숲이 우거진 여름이 더 무섭다. 지난봄에 취나물을 캐러 숲에 들어가다 숲이 너무 깊어 무서운 생각에 그냥 나온 적도 있다. 숲이 우거진 여름에는 숲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아 웬만하면 숲 속 깊이 들어갈 생각을 못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간다.
늑대가 동네길을 걷고있다.(사진:이종숙)
모기가 그렇게 많았던 여름인데 지금은 하얀 눈만 보인다. 매번 갈 때마다 더 많은 나무들이 넘어져 있다. 사람도 겨울을 내기 힘들듯이 나무들도 겨울을 이기지 못한 채 그냥 누워 버리나 보다. 지난번에 보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 주먹만 한 버섯을 매달고 있다. 죽어서도 무언가를 하는 나무를 보면 신기하고 기특하다. 한참을 걸어 계곡 가까이로 걸어간다. 꽁꽁 얼은 물 위에 사람들이 걸어간 발자국이 보인다. 여름에는 넘지 못하는데 겨울에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얼은 계곡을 건너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아이들처럼 건너본다. 계곡의 물이 의외로 두껍게 얼어 계곡을 따라 걸어간다. 우지직 거리는 소리가 날 때는 겁나지만 걸어갈 만하다. 위에서 내려다본 계곡보다 훨씬 넓고 걷기 좋다. 여름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겨울에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은데 오늘 대담하게 걸어본다.
가다 보니 얼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곳이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고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계곡을 지나서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절벽 꼭대기에 서서 내려다보니 무척 가파르다. 떨어지면 계곡으로 그대로 내려갈 것 같다. 조심해서 걷는데 훈훈한 바람이 분다.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니 명당자리 같은 생각이 들어 남편하고 잠시 둘러본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이 훤하게 뚫렸고 아래에는 물이 흐르는 모습이 정말 좋다. 나중에 내가 죽으면 아이들 보고 뼈가루를 뿌리라고 해야겠다. 우리가 생전에 즐겨 다니는 곳에 뿌려놓으면 내 영혼도 좋아할 것 같다. 남편과 나는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평소에 생각한 이야기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걷는다. 특별히 유언을 할 필요 없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서로 기억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더 간단하다.
(사진:이종숙)
아이들을 매일 만날 수도 없고 만나도 안 하게 되는 이야기가 많다. 죽음이라는 것도 삶이나 마찬가지로 친해야 만났을 때 서먹서먹하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 대화를 통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죽음에 대한 산자의 마음을 아는 것도 좋다. 자연에 가까이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걸어간다.길을 따라 걸으면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앞으로 갈 때는 몰랐던 모습이 보인다.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왔다. 직선으로 곧장 가면 쉽고 빠른 길인데 왜 이렇게 길을 만들었을까 의문이다. 우리네 인생길도 이렇게 구비구비 넘어갈 것이다. 여름에 보이던 것들은 눈에 거의 다 파묻혀서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마른 딸기나무도 보이고 마른 취나물 대도 보인다. 그들은 키가 커서 겨울인데도 꼿꼿하게 서 있다. 씨를 땅에 다 털어놓고 마른 꽃대만 하늘을 향해 서있다가 다가올 봄에 꺾어질지언정 버티고 서있다.
사람처럼 식물도 가야 할 때가 있어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가지 하나 마음대로 꺾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작년 여름에 숲이 너무 우거져 무더기로 피어있던 취나물을 멀리서만 바라보았는데 올여름에는 길을 잘 찾아보고 많이 뜯어야겠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간다. 나뭇가지에 새집을 걸어 놓은 것이 보인다. 누군가가 먹이를 채워놓았는데 껍질만 바닥에 놓여있다. 한번 채워놓으면 며칠 안 가서 텅 빈다. 겨울이라 먹을 것이 귀한 숲에 새 먹이를 가져다준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나는 예쁘다고 말만 하고 지나치는데 그 손길과 마음에 축복을 해주고 싶다. 길을 걷다 보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지난 일도 생각나고 앞으로의 일도 생각하고 마음도 선해져서 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연이 주는 축복인 것 같다.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면 욕심도 미움도 다 없어진다. 나도 저렇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숲을 찾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