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 하고 싶은 말을 한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밤새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벽난로 뚜껑이 열리고 밖에 바람소리가 불어오는데 너무 무섭게 불어댑니다.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바람소리가 심해서 이층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나무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았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무서운 바람이 불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람도 할 말이 많은가 봅니다. 포근하게 불어줄 때는 기분이 좋고 사나운 바람이 불 때는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무섭게 불어서 겁이 나기도 한답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바람은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며 좋은 일도 하고 해도 끼칩니다.


얼마 전 숲 속을 걸어가는데 커다란 나무들이 마구 넘어져 있었습니다. 약해진 나무들이 성난 바람을 이겨낼 수 없었나 봅니다. 작년 가을에 미처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들도 엄청 많이 떨어졌습니다. 하얀 눈 위에 마른 잎들이 떨어져서 숲이 지저분해졌지만 또 다른 바람이 찾아와서 그들을 덮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바람이 윙윙거리며 숲을 흔들어 댑니다. 나무들은 바람이 흔들어 주는 대로 쏴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어줍니다.


바다에 사는 파도는 철썩철썩 온몸으로 이야기합니다. 넘실대며 춤을 추는 것 같지만 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성난 모습으로 밀려왔다 밀려갑니다. 모래의 색깔도 사람처럼 다르답니다. 어느 것은 하얗고 어느 것은 노랗고 어느 것은 검습니다. 지난번 멕시코 해변에서 보았던 모래는 새까만 모래였습니다. 너울 파도가 새카만 모래를 입에 물고 달려와서 모래사장에 뱉어 놓고 가는 모습을 보고 참 신기했습니다. 백사장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세상의 모래도 색이 있어 놀랐습니다. 지역에 따라 모래 색깔이 다르듯이 사람도 사는 곳에 따라 피부색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며 하고 싶은 마음을 전합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소리 없이 오는 이슬비와 보슬비가 있는가 하면 무섭게 쏟아지는 소나기도 있고 돌풍과 함께 오는 비바람도 있습니다. 비가 하고픈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지요.


눈은 사박사박 내리며 그리움을 전합니다. 잠깐 오다 끝나기도 하고 며칠 동안 계속 내리기도 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한답니다. 사람들이 봄여름 가을만 이뻐하기에 하얀 모습으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려고 하나 봅니다. 눈이 오는 날은 아이가 되어 강아지처럼 뛰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눈싸움도 하고 싶고 눈사람도 만들고 싶어 동심으로 돌아가며 나이를 잊어버리고 한답니다. 하얀색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나 봅니다.


햇빛은 해맑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구름 뒤로 숨으며 아침에 떠오르고 저녁에는 넘어가며 할 말을 합니다. 구름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마음속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먹구름이 되고, 때로는 새털구름이 되고 때로는 하늘 뒤에 숨으며 숨바꼭질을 합니다. 나무는 목이 마르면 가지를 내리고 잎을 늘어뜨리며 목마름을 호소합니다.


사람들에게 밟혀도 한마디의 말도 없는 땅은 몸으로 이야기합니다. 비가 오면 질척이고 바람이 불면 먼지를 날리고 가뭄이 들면 쩍쩍 갈라집니다. 사람처럼 그들도 말합니다. 그들도 사랑을 알고 그리움도 알고 기다림도 압니다. 싫어도 참고 괴로워도 참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면 화를 냅니다.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으면 뒤집힙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가 되면 그들도 그들의 말을 합니다. 사람만 말하는 게 아니고 사람만 기다리는 게 아니고, 사람만 참는 게 아니고 그들도 참지 못하고 화가 나면 그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라고요. 더 이상 슬프게 하지 말라고요.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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