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향한 창밖으로 사과나무가 겨울을 떠내 보내고 있다.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던 사과 몇 알은 여전히 까치가 먹어 주기를 기다리고 가을을 미처 따라가지 못한 단풍 진 나뭇잎들은 추운 겨울을 내느라 너덜너덜 헤진 모습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다.어느새 2월, 창밖은 아직 한겨울인데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진다. 그저께 입춘대길이라는 카톡 메시지가 급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다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같은가 보다.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어도 봄을 생각하면 괜히 좋다. 겨울이 오려고 11월부터 눈폭풍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잔뜩 겁을 먹었는데 그 뒤로 날씨가 좋았다. 아무리 고집 센 동장군이라도오는 봄을 막을 수 없고 강남 갔던 제비가 온다는 3월은 우리를 찾아온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창밖만 내다보는데 머지않아 올봄을 생각하면 얼마 남지 않은 겨울도 좋다.
겨울은 떠나가기 싫은지 아직 건재한다며 칼바람으로 닦달하고 있지만 얼음 밑으로 오는 봄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며칠 전만 해도 지붕 위에 쌓였던 눈이 길어지는 해 덕분에 속에서 녹아 마치 비처럼 처마 밑으로 흘러내렸는데 갑자기 한파가 몰려오는 바람에 세상은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이제 이 한파가 지나 2월 중순이 되면 낮에는 따뜻하여 눈이 녹고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고드름이 생긴다. 고드름을 생각하면 옛날 친구들과 그 추운 겨울에 고드름을 아이스케끼라며 빨아먹으며 고드름 노래를 목청이 떠나가도록 불렀던 기억이 난다. 생각하면 위생상 별로 깨끗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참 맛있게 빨아먹었다.지금이야 아이들의 놀거리들이 많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그저 친구들과 노래하고, 공깃돌을 던지며 놀거나 땅에다가 백묵으로 선을 그어놓고 깽깽이질로 승부를 가리는 놀이밖에 없었다.
밥 세끼 먹기에도 힘겨웠던 겨울은 왜 그리도 추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괜히 추워진다. 어느새 해가 길어져 너도나도 눈밑으로 오고 있는 봄을 맞으려고 꿈틀거린다. 앞마당에 토끼 발자국이 선명하게 눈 위에 찍힌 것을 보니 아마도 어느 굴속에서 겨울을 난 토끼가 봄이 얼마만치 왔나 산책을 나왔었나 보다. 새들도 날씨가 추운데도 봄을 기다리는지 나와서 봄 마중을 하느라 바쁘다.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벌써부터 짝짓기에 바쁜 듯이 하루 온종일 시끌시끌하다. 동물들은 우리 인간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들을 미리 알 수 있는 본능이 있나 보다. 오래전 인도네시아에 무서운 스나미가 온 적이 있었는데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지만 동물은 하나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정보가 있었다. 아마도 인간은 두뇌가 발달하고 동물들은 귀와 방향감각이 발달돼서 아주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미리 듣고 피신을 하였나 보다.
(사진:이종숙)
인간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봄에도 봄이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봄이 우리에게 온 줄도 모르고 봄을 기다리는 어리석음이라 할까? 시샘 바람, 꽃샘바람으로 봄이 온 것을 알지 못한 채 봄이 다녀가고 난 뒤에야 봄이 다녀갔다는 것을 알아 채릴 때는 이미 봄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 한 겨울에도 봄을 느끼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상상력 이리라. 봄은 그렇게 살그머니 아무도 모르게 오는 것 같지만 지구 상에 존재하는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물들은 본능으로 봄이 오는 것을 느낀다. 봄이 오려면 아직은 넘어야 할 몇 개의 산도 있고 건너야 할 강도 있겠지만 어딘가에 오고 있을 봄을 맞이하기 위해 일어나 봄 마중이라도 가보고 싶다. 언덕 넘어 어딘가에서 거드름 피는 봄을 우리 집 마당에 어서 모셔다 놓고 싶다.
봄이 온다 하여 특별히 변하는 것은 없어도 여전히 봄을 기다리며 산다. 1년 동안 코로나는 우리 사회를 겁박하며 떠나지 않는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확산을 막고 있다. 방역지침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강화되고 있다. 백신을 맞기 위해 벌어지는 새치기로 사회문제가 되어간다. 지역주민으로 위장해서 맞고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맞는다. 누구나 때가 되면 맞을 수 있는 백신이 준비되었다고 하는데도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한다. 모든 게 때가 있고 차례를 기다리면 되는데도 금방 발각될 것을 모르고 몰래 새치기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안 그래도 백신 운반에 문제가 있어서 기다리는데 그런 뉴스가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 이게 모두 코로나 때문에 생긴 문제이니 어서 빨리 코로나가 없어져야 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이까지 만들며 버티고 있다.
뒤뜰에 서있는 마가목 나무의 새빨간 열매도 겨울을 이겨내느라 주름이 생겨 쭈글쭈글한 것을 보니 아무리 코로나가 극성을 펴도 봄이 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봄이 오면 코로나도 쫓겨 도망갈 것이다. 2월에 올 생각도 하지 않는 봄타령을 하는 내가 우습지만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랜선으로 가상여행을 떠나고 추억이 많은 사람들은 사진으로 추억여행을 가듯이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봄맞이를 한다.
모르는 사이에 세월이 간다. 새해라고, 새해가 왔다고 새해인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기다리는 봄도 올 것이고 코로나도 우리 곁을 떠나 자유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