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아침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밖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어 세상은 더 눈이 부시다.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생각하며 무심히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소방차가 사이렌 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며 점점 가까이 들려서 어딘가 불이 났나 하며 창밖을 내다보니 바로 우리 집 옆에다 소방차가 선다. 특별히 연기 나는 곳도 없는데 연달아 4대의 소방차가 와서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만 알 도리가 없다. 길 건너 타운하우스를 향해 한대가 들어간다. 잠시 후에 그 차가 아무 일도 아닌 듯이 그냥 나오더니 나머지 소방차들이 줄지어 따라간다. 불이 난 장소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불이 꺼졌는지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하나둘 흩어져 간다. 싱겁게 끝났지만 아무런 일도 없어 천만다행이다. 한가한 아침나절에 소방차를 보니 오래전 식당을 운영할 때 부엌에서 불이 나서 정신없던 때가 생각난다.
아침에 일찍 오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있는데 그릴 아래에서 빨간 불꽃이 보인다. 불이 나기 시작했으니 곧바로 소화전으로 불을 끄며 소방서에 연락을 했더니 소방차가 순식간에 달려왔다. 소화전으로 불을 꺼서 불길은 금방 잡혔지만 뒷정리가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소화전에서 나온 하얀 가루가 불만 끈 것이 아니고 부엌 전체로 퍼져서 부엌이 하얗게 되었다. 음식이고 재료고 다 덮어버려서 하얗다. 배고픈 손님들은 계속 들어와서 각자 편한 자리에 앉아서 불난 부엌을 쳐다보며 우리가 청소를 마치기를 기다린다. 소방 대원들은 점검만 하고 갔고 우리는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부엌을 청소하는데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때 상황이 또렷이 생각나고 그려진다. 큰 불이 안 났으니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나중에 청소를 하고 보니 기름이 그릴 뒤로 흘러서 얇게 파손된 전깃줄에 불이 붙어 화재가 난 것이었다.
그릴 밑에서 타다닥하며 시뻘건 불길이 순식간에 붙는데 남편이 뛰어와서 소화전으로 불을 껐으니 망정이지 옆집으로 번졌다가는 정말 큰일이었다. 옆집은 빵집이라서 우리 부엌 하고 나란히 있는 커다란 오븐과 튀겨내는 기름통에 불이 붙을 수 있었다. 오래된 식당이라서 모든 것이 낡아 틈나는 대로 갈고닦았지만 그릴 뒤로 넘어간 선에 불똥이 떨어지며 불이 붙었다. 순간에 일어난 생각지 않은 화재로 인해 그 뒤부터는 소방차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뛴다. 매일 접하는 뉴스로 여기저기 화재가 나고 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가 많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산다. 그런데 더 안타깝게도 가까운 시외에 사는 한국사람이 며칠 전에 화재로 변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며 깜짝 놀랐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한국사람 둘이 화재로 사망했단다.
갑자기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집에 불이 나서 친정 부모님과 밖으로 나갔는데 아들이 보이지 않자 엄마가 아들을 구하려고 무섭게 불이 붙은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모자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 채 참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타버리는 집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깡그리 다 타버렸다.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다 타버란 화재의 원인은 아직 알 수 없고 의심스러운 정황도 찾을 수 없는 화재로 사망했다. 남편은 직장 관계로 그날 밤 집에 없었기에 화를 면했지만 갑작스럽게 당한 황당한 화재로 아내와 아들을 보내야 하는 심정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 생각지 못한 화재로 목숨을 잃고 황당해하는 가족들의 슬픔을 감히 뭐라 할 수 없다. 알고 보니 내가 다니는 성당에 다니는 형제분의 누님 가족 이야기였다.
이민 와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부인과 아들은 불속에서 발버둥 치며 허망하게 갔다. 성당에 와서도, 장을 보러 다니면서도, 항상 바쁘게 살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은 식구들의 슬픔은 얼마나 클까?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힘들지만 고비를 넘기며 살아가는데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다.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동네 사람들이 인터뷰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나왔다. 착실하고 좋은 사람들이 변을 당했다며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인데 갑자기 화재로 가족을 잃은 그들을 위해 동네 사람들이 모금을 하여 힘든 그들을 돕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마트 문은 닫혀있고 가게 문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인형들이 하나둘씩 쌓여 가고 있는모습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날마다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웃고 장사하던 사람이 사고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 사는 게 무엇인지 점점 알 수가 없다. 이민자의 힘든 삶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로서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이 간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이지만 안다고 한들 피할 수도 없는 것 또한 인생이다. 올 것은 기어이 오고, 갈 것은 끝내 가기에 어쩔 수 없는 인생살이다. 아침부터 몇 대씩 달려온 소방차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순식간에 전재산과 가족을 앗아 갔으니 남은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태양은 눈부신데멀리서 아련히 들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니 새삼 더 그들의 사연이 안타깝다.
산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 하지만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 잘살아보려고 이민을 와서 아이들도 잘 크고 살만한데 어찌해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행복과 불행은 소리 없이 오고 가고 세월도 오고 간다.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며 남은 가족이 아픔을 딛고 일어나서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