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원래 황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살면서 누구나 황당한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 황당한 사건들이 지나고 생각하면 웃음꽃으로 피어 돌아온다.
밤새 잘 자고 아침에 일찍 식당에 장사하러 갔는데 멀쩡하던 물통이 새서 밤새 바닥에 흘러넘치던 날이 생각난다. 물걸레 짜기로 일단은 바닥을 닦고 하루를 시작했지만 그 와중에도 와주는 단골손님 밥을 해주며 태연한 척 물통을 고치며 잘 넘겼다.그 뒤 얼마 지난 뒤에 다음날 한국에 가려고 식당 청소를 다 끝내고 집에 가려는데 어떤 사람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화장실을 쓰겠다 해서 잠깐 들어왔다 갔는데 떠난 뒤에 보니 큰 실례를 하고 도망갔을 때의 황당함이란 말로 못한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날 잘 돌아가던 냉장고가 비실비실하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서 버렸다. 식당에서 필요한 재료들로 꽉 차 있던 냉장고가 일을 안 하니 다른 냉장고로 옮겨놓았다. 날이 더우면 문제가 생기는데 우리처럼 다른 식당에도 같은 문제가 생겨 기술자를 찾기가 힘들다. 간신히 기술자를 불렀고 전날 번 돈과 그날 번 돈을 몽땅 들여서 고쳤다. 냉장고가 밥 먹여주는 것이니 천금을 들여서라도 고쳐야 한다.
이곳에서 4시간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결혼식 참석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남편이 신사복을 준비했기에 내 정장도 남편 신사복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남편이 가져오리라 생각했고 남편은 내가 가져가야 한다는 말을 안 했으니 가져오지 않았다. 남편이 당연히 가져올 거라 생각한 나의 정장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30분 정도 떨어진 곳을 갈 때였다. 우리는 다시 집으로 가서 옷을 가지고 출발했다. 왕복 1시간을 길에서 소비했으니 마음이 급하다. 결혼식 시간에 맞춰서 가려면 과속을 해야 만 한다. 열심히 가도 그 시간에 도착하기는 힘들어 다니던 곳으로 가지 않고 샛길로 빠져 갔다. 시내 길이 아니라 차도 없고 교통체증이 없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도저히 그 시간에 갈 수 없는 상황에 기지를 발휘해 새로운 길에 도전한 결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은 황당했지만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었다.
빵이 남으면 만일을 대비해서 빵가루를 만들어 놓는다.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아 당장 쓰지 않으면 냉동고에 얼려놓아야 하는데 2-3일 내로 쓸 것 같아 생각 없이 선반에 놓았다. 시간이 가고 청소를 하는 과정에서 선반에 있는 그릇들을 지하실에 내려다 놓았다. 여러 그릇이 포개져 있어서 그곳에 빵가루 들어있는 그릇이 다른 그릇 아래에 겹쳐져 있으리 라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까만 하루살이 벌레들이 집안에 하나 둘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며칠은 그러다 없어지려니 생각했는데 점점 많아져서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화분에서 나오는가 해서 물도 덜 주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를 해도 어디서 나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모기향을 피워가며 혹시나 없어질까 했는데 여전히 찾을 수 없어 벌레 죽이는 사람을 불러볼까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중 지하실에 무언가를 가지러 내려갔다가 우연히 겹쳐진 그릇에서 벌레가 하나씩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깜짝 놀라 그릇을 들어보니 그 안에 있던 빵가루에서 벌레가 생겼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집안을 들썩거리게 만든 사건이었다.
소화가 잘 안된다고 불평하던 남편이 위 내시경을 찍고 의사 소견으로 아주 좋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 뒤 3일째 되던 날 갑자기 심한 복통과 고열 때문에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열제와 진통제를 주고 집으로 보냈다. 밤새 앓으며 한잠도 못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응급실로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4시간 정도 기다렸다. 멀쩡 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픈데 보통 증상이 아니었다. 기다리다가 황갈색의 소변을 보았다고 간호원에게 이야기를 하니 그때부터 본격적인 검사를 시작했다. 하루 전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아픈 사람을 돌려보냈는데 간과 쓸개에 염증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 의사의 오진으로 염증이 퍼진 상태가 되었다. 그 뒤로 해마다 병원 출입을 하며 담석을 제거할 때까지 엄청 많은 고생을 하였다. 한번 의사를 잘못 만나 시간을 놓쳐 고생했고 서둘러서 치료를 하지 않았으면 생명이 위험했던 것이다.
선물로 받은 진주 팔찌가 하나 있었다. 뽀얀 진주에 십자가가 있는 손목 묵주라서 언제나 끼고 다녔다. 하루는 옷가게에서 옷을 입어보다가 떨어뜨린 줄 모르고 집에 왔는데 몇 시간 뒤에야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깜짝 놀라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분명 옷가게에서 떨어 뜨린 게 확실했다. 전화를 해보니 오라고 해서 급하게 달려갔더니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 갔어도 바로 물건을 받을 수 없었다. 어떤 색이냐 어떤 모양이냐 재료는 무엇이고 언제 누구에게 받았는지 자세히 설명을 하고 간신히 받아왔다. 내 물건이라도 일단 잃어버리면 찾을 때는 절차가 복잡하다.
남편이 식탁용 간장병에 간장을 담아준다며 싱크대 아래에 있던 큰 통을 꺼내다가 간장통이 미끄러져 싱크대 옆에서 설거지를 하고 서 있던 내 발가락에 떨어졌다. 엄지발톱에 떨어졌는데 순식간에 새카맣게 멍이 들었다.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했으면 괜찮을 텐데 무서워서 안 가고 덜렁덜렁하는 발톰으로 걸어 다니며 미루다가 발톱에 염증이 생겼다. 발톱을 빼러 병원에 갔더니 속에서 발톱이 자라면서 나오던 발톱을 파고 들어가 수술을 해서 발톱을 빼야 한단다. 두려움에 미뤘던 나의 불찰로 일은 더 복잡하게 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며 발톱 때문에 2달 이상을 절룩거리고 살아야 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실수를 하고 문제가 계속 생겨도 해결하고 고치며 산다. 새록새록 기억나는 많은 일들은 세월 따라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웃음꽃으로 피어난다. 안 일어나도 될 사건들이 일어나도 없던 일처럼 지나간다. 당장에는 속이 상했지만 이렇게 지나고 생각하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세월 속에 묻혀 있다가 때때로 나를 찾아온다. 이렇게 한심한 실수를 꺼내보니 지난 일이라 그런지 재미있다. 앞으로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많고 많은 황당한 사건들을 조금씩 꺼내보리라.
살면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를 겪고 당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매번 또 다른 모습의 상황을 맞는 것 보면 인생은 어쩌면 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싫다고 피해 가지 않고 도망간다고 걸려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또 비가 오고 바람이 부나 보다 생각하며 맞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