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불속은 코로나 없는... 좋은 세상이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삼한사온은 옛말이 되었다. 지독한 한파가 열흘을 넘게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하 30도에 가까운 온도라서 체감온도는 영하 40도가 넘는다. 말도 안 되게 추운 날에 밖에 나갈 생각은 할 수 없으니 가만히 집에서 벽난로에 불을 땐다.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아이들은 잘 있는지 보고 싶고 한국에 사는 형제들도 궁금하다. 이렇게 못 만나고 살 줄 알았으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 때 더 자주 만날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한번 가려면 돈보다 시간이 없어 갈 수 없었는데 전염병 때문에 하늘길이 막혀 못 갈 줄은 정말 몰랐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유를 빼앗기고 살았는 데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언제 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우리의 자유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하다. 연로하신 엄마는 요양원에서 자식들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실 텐데 아무도 찾지 못한다. 몇 달 만에 간신히 유리창 너머로 얼굴만 보고 돌아서야 하는 형제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도 할 수 없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민오는 날부터 오늘까지 엄마의 마음을 애타게 하며 살았어도 그동안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울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찾아가 뵈었다. 만나도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도 보고 오면 마음이 안정되어 얼마 동안은 견딜 수 있었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에 남편이 가라고 했을 때 못 이기는 척하고 다녀왔어도 되었으련만 그때 가지 않은 것이 정말로 후회스럽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는 이름뿐인 딸이다.


결혼 후에 겨우 2년 동안 한국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민을 왔으니 아무런 효도도 못하고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용돈 조금 드린다고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았는데 형제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것도 못 해 드렸고 효도 한번 못하고 살았다. 내가 있어야 할 시간에 나는 그곳에 없었고 부모님이 힘들어하실 때 형제들은 고통을 나누었지만 나는 멀리 산다는 이유로 모르게 지나갔다.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도, 병원에 가셨을 때도 나는 사느라 바빠 가보지 못했다. 부모님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혼자만 잘 살아 보겠다고 찾아뵙지 않았다. 가기가 힘들다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열심히 살았을 뿐 부모님께 아무것도 해드린 것 없이 살은 것을 이제와 생각하니 바보처럼 살은 것 같다. 가족이라는 것은 힘들 때마다 의지하고 도우며 함께 하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사진:이종숙)


엄마가 길을 잃고 헤맬 때 형제들은 엄마를 찾기 위해 사방천지로 돌아다니며 얼마나 애태웠을까를 생각하면 형제들한테 너무나 미안하다. 생면부지의 고마운 경찰관이 집에 모시고 왔다 는 말을 들었을 때 대한민국의 경찰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기에 더욱더 형제들이 고맙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함께 하지 못한 나는 말로만 가족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난다. 자식이 살 만하면 떠나시는 부모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정말 맞다. 이제 나는 아이들 다 키우고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코로나가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는다. 빨리 가서 엄마 얼굴을 보고 싶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다. 오도 가도 못한 채 지켜야 할 규제가 많다. 가도 엄마를 볼 수 없고 이곳에 와서도 격리를 해야 하는데 꼼짝없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 세월이 약이 될지 병이 될지 모르지만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불을 바라보면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되어 괜히 우울해진다. 불을 바라보며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이 참으로 요사스러워서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어 한다. 몸은 벽난로 앞에 있지만 생각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난다. 앞으로 살아갈 것을 계획하고 해야 할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내 인생의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주어진 시간 동안에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내 인생의 3분의 2를 살았는지 5분의 4를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살아왔듯이 앞으로 살아가는 것도 누군가의 손길에 맡기고 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빨간 불빛을 바라보며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한다. 추억을 되새기며 웃고 운다.


나무가 타고 있는 불속에는 불밖에 없지만 우리들의 삶이 있다. 불속에는 코로나가 없어 생각으로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가고 싶은 곳도 가며, 해야 할 일을 계획한다. 봄이 오면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처럼 코로나가 끝나면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불멍을 때리다 보니 세월 가는 줄 모르겠다. 어서 일어나서 무언가 하며 봄 맞을 준비나 해야겠다. 눈 쌓인 뜰에는 토끼 발자국만 쓸쓸하게 보이니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망상을 떨쳐버려야겠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코로나가 없는 좋은 세상이 오면 훨훨 날아서 어디든지 가리라.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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