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잠자러 왔던 토끼가 없다. 부지런한 토끼가 새벽에 맛있는 아침을 먹으러 나갔나 보다. 해가 떨어지고 어스름한 저녁녘에 집으로 오는 토끼는 등 굽은 소나무 아래에 산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저녁이 되면 잠을 자러 온다. 눈이 하얗게 쌓인 곳에 하얀색 토끼가 앉아 있어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토끼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더니 토끼가 그곳에서 추운 겨울을 나는 것을 알았다. 아니 겨울뿐이 아니라 사시사철 우리 집 뜰이 토끼집이다. 저녁에 왔다가 잠을 자고 아침 새벽에 나간다. 겨울에 소나무 바닥은 토끼가 앉고 비벼놓아서 반질반질하고 여름에는 토끼가 땅을 움푹 파고 앉아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토끼의 안부가 궁금해서 커튼을 열고 토끼를 찾아본다.
며칠 동안 보지 못하고 토끼가 자던 잠자리만 보았는데 어제저녁 때 토끼가 껑충껑충 뛰며 뜰로 돌아와 소나무 아래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더니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 앉아 졸고 있는 것을 보고 잘 있음을 확인했다. 밤에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처럼 짐승도 제 잠자리를 찾아온다. 오래전에 마음에 드는 집을 사려고 할 때가 생각이 난다. 멀리 가고 싶지 않아 가까운 곳에 사려고 여러 집을 구경 다녔다. 처음에는 저렴하고 좋은 집을 사려고 했는데 그런 집은 없었다. 아무래도 한번 집을 사면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가 생각하던 금액을 조금 올려서 좋은 집을 보러 다녔다. 마음에 들면 너무 비싸고 가격이 맞으면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며 집 보러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마음에 꼭 맞는 집도 찾기 힘들어져 갈 즈음 우연히 본 집이 마음에 들어 사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나무가 많은 우리 집에는 여러 가지 새들이 숲인 줄 알고 찾아와 논다. 먹이 한번 주지 않는데도 새들은 우리 집 뜰이 좋은지 매일매일 찾아온다. 우리 집에 사는 토끼도 우리 집을 찾기 전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집 앞에 서 있는 노송은 가지가 여러 개로 갈라져서 가운데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포근하다. 그것을 어찌 토끼가 알았는지 오래전부터 우리 집 뜰에 산다. 오래전에 사람들이 살기 전 숲 속이었는지 토끼도 새도 편하게 살아간다. 몇 년 전 지독하게 가물었던 해가 있었다. 새로 개발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길러놓은 채소를 야생 토끼가 와서 다 먹어버려 토끼가 싫다고 하던 생각이 난다. 숲을 다 갈아엎고 집을 지으니 토끼들이 먹을 양식이 없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오래된 동네라서 토끼들이 먹을 양식이 많아 그런 행패는 부리지 않고 얌전하게 잠만 자고 드나든다.
(사진:이종숙)
여름에도 뜰에 있는 채소 하나 건드리지 않는 것을 보면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우리에게 보답하는 것 같아 기특하다. 짐승도 다 생각하는 게 있어 자세히 보면 사람과 다르지 않다. 지난여름 새끼 까마귀가 소나무 가지에서 며칠 동안 머무를 때 어미 까마귀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것을 보고 눈물겨웠던 생각이 난다. 사람들이 새끼를 행여나 다치게 할까 봐 멀리서 보고 있던 어미가 사람이 가까이 가면 깍깍 울어대며 경계하던 모습을 지켜보았다. 밤에는 소나무 가지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어미가 가까운 곳으로 데리고 가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까마귀가 다 똑같아 알 수 없지만 한동안 집 주위에서 지내던 새끼 까마귀는 지금쯤 어미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곳은 까치도 많다. 한 번은 연애하던 까치 둘이 부부가 되어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새끼를 데리고 우리 집 뒤뜰로 산책을 나왔다.
막상 새끼를 데리고 나왔지만 아직 어린 까치가 날기에는 힘들어 쩔쩔맨다. 어미 까치가 보기에 너무 안쓰럽지만 새끼 까치가 혼자 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푸드덕거리며 조금 날다가 떨어지고 넘어지며 나무 아래에 서 있는데 어미까치는 누군가가 새끼를 해칠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온 동네 까치들을 다 불러놓고 내 새끼 봐달라며 울부짖는다. 새끼 까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넘어지고 자빠지며 나르는 연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넘어지고 다시 날기를 끊임없이 하더니 담 위에 올라앉아 재롱을 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로등 꼭대기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또 한 번은 한여름에 더워서 그늘에 앉아 있는데 뜰 구석에 부상당한 까치가 절룩거리며 쩔쩔매는 모습이 보였다. 안쓰러워서 어쩔 줄 모르며 한참을 보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물을 가져다주고 동물 보호 센터에 전화를 하란다.
전화까지 하기는 뭐하고 물을 가져다주며 안타까워했는데 며칠 동안 뒤뜰에서 서성이더니 상처가 나았는지 어디론가 가버렸다.오래된 집에서 살다 보니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부지런한 토끼는 밤에는 우리 집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길을 떠나 무엇을 하는지 동네를 걷다 보면 길에서도 만나고 운동장에서도 만난다. 그들도 오래된 우리 동네가 좋은지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안 한다. 지난봄에 늑대가 학교 건물 아래 공터에서 새끼를 낳고 이 동네를 점령했을 때는 개와 고양이 그리고 토끼가 꼼짝 못 하고 숨어 살았는데 늑대가 떠나고 활기차게 잘 살아간다.
엄마품 같은 포근한 등 굽은 노송 아래에서 토끼는 잠을 자고 참새와 까치는 가지에서 오르내리며 논다. 행복은 결코 요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새들이 날아와서 노래하고 밤이 되면 토끼가 와서 편안한 잠을 자는 이곳에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