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척 춥다. 눈이 와서 세상이 두꺼운 하얀 옷을 입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고 뜰에 난 토끼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소나무 아래로 걸어간 토끼 발자국을 자세히 보니 하얀 토끼가 빨간 눈을 반짝이며 소나무 아래 웅크리고 있다. 추운데 그나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나무 아래가 나은지 꼼짝하지 않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 쇼핑카트에 무언가를 잔뜩 실고 급하게 가는 노숙인이 보인다. 그들도 살기 위해 저렇게 추운 날씨에 따뜻한 곳을 찾아 가리라. 갈 곳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막연히 가고 있는 그 사람의 발걸음이 급하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삶의 법칙이 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숙소는 깨끗하고 따뜻하지만 지켜야 할 법과 규율이 있다. 겨울이 워낙 추운 이곳은 노숙인들의 동사를 막기 위해 겨울이 오기 전에 그들을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지 않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따뜻함보다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강제로 그들을 숙소로 보내지 않는다. 거리를 떠돌다 밤이 되면 나무 아래에서 밤을 보내는 토끼를 보니 그들이 생각난다.
나무가 많은 우리 뜰에 토끼는 사시사철 드나든다. 봄이 오려고 날이 따뜻해지면 조금씩 털색이 바뀌어 여름과 가을 동안은 회색토끼가 된다. 가을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흰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겨울을 맞는다. 어디서 무얼 먹고 사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털옷을 입었다지만 얼마나 추울까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집안에 데려다 키울 수도 없으니 집안에서 토끼 발자국을 바라보며 안타까워만 한다.
토끼를 보니 오래전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가 생각난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뒤뜰에 토끼를 키우는 아이들 친구가 살았는데 토끼 두 마리를 얻어와서 뒤뜰에 망을 만들어 키웠다. 봄에는 이곳저곳에서 풀을 뜯어다 먹이고 겨울에는 슈퍼에서 사다가 먹이고 때로는 얻어다 주기도 했다. 토끼는 위험에 처하지 않으면 말이 없다. 강아지들은 사람을 따르며 짖어대고 장난치고 사람들과 놀 줄 아는 데 비해 토끼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이 안고 예쁘다고 쓰다듬어주면 가만히 있지만 대꾸도 없고 사랑도 없는 것 같은데 아이들이 풀을 들고 먹여주면 열심히 뜯어먹는다. 그 모습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풀만 보면 토끼에게 갖다 주려고 열심히 풀을 뜯어 먹였다. 아이들이 다니는 태권도 학교 앞에 있는 들판에서 매일매일 풀을 뜯어 먹이며 예쁘게 기르다가 겨울이 왔다. 그렇게 기르다가 하루는 찌그러진 망을 빠져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간신히 찾아 데려오기도 했다.
밥 주고 똥을 쳐주며 정이 들어갈 무렵 어느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들에 돌아다니며 사는 야생 토끼는 살아남는데 우리에서 자란 집토끼는 이곳 추위에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죽은 토끼를 대신해서 야생 토끼들이 우리를 방문하며 사시사철 토끼를 볼 수 있게 됐다. 겨울에 눈이 와서 하얗게 된 뜰에 토끼가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토끼는 심성이 조용하고 겁이 많아 잠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다고 한다. 저렇게 추운 겨울에 나무 아래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는 토끼를 보면 그때 얼어 죽은 토끼가 생각난다. 생각 같아서는 상자에 담요라도 넣어서 나무 아래에 놓고 싶지만 야생들의 취향이 아닐 것 같아 마음만 애태운다. 그들도 어딘가에서 추위를 피하며 살다가 봄을 맞이 할 것이다.
집 없이 머리 둘 곳이 없어도 그들은 잘 살아간다. 인간처럼 좋은 집에서 따뜻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고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는 그들은 어쩌면 세상 전체가 그들의 집 일 것이다. 더 많이 쌓아놓고 더 큰집에서 살기 위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며 사는 인간들과는 다르다.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죽은 것은 절대로 먹지 않는 짐승도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욕심 많은 인간인 우리가 배워야 한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치 두 마리가 나무 아래서 눈을 헤치며 무언가를 찍어 먹는다. 먹을 것이 많은 여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열매인데 먹을 게 없는 겨울에는 그나마라도 배를 채워야 하기에 열심히 먹는다. 토끼는 토끼대로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까치는 까치대로 살아간다. 서로 시기 질투하지 않고 해치지 않으며 서로 상생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세상을 보는지 아니면 간밤에 추워서 못 잔 잠을 자는지 웅크리고 앉아있는 토끼가 푸른 들판에 뛰어다니는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