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기뻐하며 살자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세상은 변한다. 나도 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하지 않은 채 과거에 매여 산다. 옛날이야기는 미주알고주알 다 생각이 나는데 엊그제 일은 까마득하다.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조차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어 남편에게 물어보며 둘이 웃는다. 모르는 어느 시간에 정지가 되어 살아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옛것은 잊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억해야 하는데 쉽게 잊어버린다. 인간의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기억력은 짧아진다. 수많은 이름을 기억하고 살았는데 사람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쩔쩔매기도 하고 얼굴도 가물가물 한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산 지 1년이 넘어간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던 얼굴도 거침없이 부르던 이름도 아련하다. 세월은 그냥 다녀가는 게 아니다. 우리의 시간도, 기억도 가져간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작은 단어조차도 빼놓지 않고 기억을 하던 것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 잊히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 머리를 떠난다. 책이나 영화 리뷰를 써 보고 싶은 생각에 펜을 들면 이미 어디론가 가버려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어제 영화 한 편(Head full of honey)을 보았다. 76세의 한 남성이 치매에 걸려 일어나는 생활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사람이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을 알려 준다. 오늘을 살면서 오늘을 살지 않고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산다. 그는 현실에 있지 않고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산다. 전쟁의 환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도망가고 쫓기를 반복한다. 옛날에 입던 군복을 꺼내 입고 총을 쏘고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구석에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다.


부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사진을 앞에 두고 웃으며 하루를 이야기하고, 빵을 굽는다고 구두를 오븐에 넣고 구워 화재를 일으킨다. 며느리는 못살겠다고 난리를 치고 손녀딸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할아버지로 받아들인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생각하고 생활하고 있는 모습은 처참하기도 하지만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지만 부모 자식의 연으로 이해하려 들고 며느리는 마음을 닫은 채 황당한 사건을 매일 만난다. 수의사였던 그는 동물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 유머가 풍부하고 유식한 노인은 10살짜리 손녀가 태어났을 때를 생각하며 행복해한다. 아들 며느리가 노인의 증세가 도를 넘는 것을 보다 못해 고심하며 의사를 만난다. 요양원에 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을 안 손녀는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가는 것이 싫어서 아무도 모르게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간다.


다행히 비밀번호를 기억해 카드 하나로 기차표를 사고 호텔을 예약한다. 손녀는 여러 가지 상황을 겪지만 끝까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힘든 고비를 넘긴다. 바닷가 모래 위에서 불을 피고 별을 보며 추억을 이야기하고 잠을 잔다. 걷는 동안 배가 고파 수녀원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성모상을 껴안고 먼저 떠난 부인으로 착각하며 보고 싶었다고 눈물을 흘린다. 수녀님 들과 시장에 가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호텔에 가서 묵으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만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감정 기복으로 때로는 슬퍼하고 기뻐한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에 과거로 돌아가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아들의 얼굴도, 손녀의 존재도 잊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들어가 화내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한 노인의 치매로 가정이 삐그덕거리고 부부 사이도 서먹해져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서로를 원망한다.


아들과 며느리는 집을 나간 그들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서 서로가 다시 한 팀이 되었음을 확인한다. 한편 손녀딸은 호텔에서 잠을 자던 할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고 과거에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왔던 곳을 기억하고 그를 찾아간다. 아들 며느리도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에 도착하여 극적으로 그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함께한다. 노인은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손녀딸에게 천국에서 부인을 만날 것이라 말하며 천국에서 너를 바라보겠다며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치매환자는 행복한 순간에 정신이 돌아온다는 의사의 말에 노인이 원하는 것을 하며 추억을 만들고 어느 날 손녀딸이 신문을 읽어주는 사이 노인은 하늘나라로 떠난다. 치매환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에 참으로 공감 가는 영화였다. 조금 이상하면 치매환자로 취급하고 마는 세상에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세상에서 살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그들을 대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사는 시간은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고 가장 두려웠던 시간이다. 우리가 불행했던 시간은 불행으로 끝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은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힘든 가운데서도 우리가 긍정적으로 살며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다. 삶이란 원래 계절 같은 것이다. 겨울에 봄을 기다리지만 봄이 오면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모른다. 여름에는 겨울을 잊고 찬란한 가을에는 겨울이 오고 있음을 모른다. 기억이 없어지는 것도 기억을 잘하는 것도 다 축복이다.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은 없어지지 않는 곳에 저금하며 삶이 힘들어지는 날 하나씩 꺼내보며 살면 된다.


오늘도 어느 날 먼 과거가 되어 오늘을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날이 될 것이다.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기뻐하는 나날을 만들며 살아야겠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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