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갑자기'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갑자기 연락하는 사람, 갑자기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 갑자기 당하는 사고, 갑자기 가까워진 사이를 거부한다. 갑자기는 눈에 보이지 않게 어딘가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나타난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병에 걸리고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이혼을 한다. 친절하던 사람이 갑자기 소식을 딱 끊는다던가, 보고도 외면하던 사람이 갑자기 친한 척할 때 어리둥절하다.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생긴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해서, 보이지 않아서 갑자기 생긴 일 같지만 어찌 보면 이미 다 계획된 일이 었는지도 모른다. 평소의 생활방식이라든가 습관이 그런 일이 생기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갑자기 심장이 뛰고 숨이 가뻐서 심장병이 생겼나 걱정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워낙에 커피를 못 마시는 내가 아침에 우유에 커피를 조금 타서 마시면 맛이 있어 며칠 동안 그렇게 마셨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까짓 커피로 인하여 심장이 빨리 뛸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견딜 수 없이 빨리 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병원을 가야 하나 아니면 이러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커피 때문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어쩌면 커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커피를 넣지 않고 우유만 마셨더니 심장이 조용해졌다. 갑자기는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처럼 갑자기 친하려 들거나, 갑자기 친절하거나, 갑자기 연락하는 사람을 조심하는 것이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생전 연락 없이 살던 사람이 연락이 오면 깜짝 놀란다. 오랜만에 만나서 좋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도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거나 이용을 하기 위해 연락을 하는 것이다. 사람 관계란 마음만 있으면 꾸준히 주거니 받거니 연락을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몇 글자로 안부를 묻고 넘쳐나는 좋은 글 귀를 보내고 받으며 살아있음을 전할 수 있는 세상이다. 보고 싶은 것은 혼자 찾아 읽어도 되지만 좋은 글이나 노래를 주고받으며 서로 교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지나치게 많이 보내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좋은 정보라 생각하고 시간 날 때 천천히 읽는다. 매일매일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서 특별히 문자를 보내지 않아도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떠도는 것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좋은 정보도 있고 흘러간 옛 노래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어 좋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서로 주고받다 보면 정말 유익한 정보도 받을 수 있어서 좋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두꺼운 백과사전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무엇을 알고 싶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두꺼운 돋보기로 이것저것 찾아보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요리방법도 있고, 꿈해몽도 있고, 여러 가지 살림에 필요한 상식이 들어 있어 어른들이 자주 이용하셨던 책인데 이제는 핸드폰이 현대의 백과사전이 된 지 오래되었다. 인터넷은 만능박사고 백과사전이고 없는 것이 없다. 역사부터 정치, 영화, 사회를 비롯하여 건강과 생활 전반을 통틀어 찾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은 다 답해준다. 그렇게 세상이 편하다 보니 사람들은 각자 살기에도 바쁘다. 원하는 것을 찾아보고 알아보고 배우며 살아간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혼자 알기 너무 아까운 것들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내 서로 좋은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렇게 좋은 세상이 되었는데 평소에 문자 한번, 전화 한번 없던 사람이 갑자기 소식을 전한다면 괜 스레 기분이 묘한 이유는 여러 번 좋지 않은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의심을 받는 당사자는 기분이 나쁘지만 뜬금없이 나타나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은 실로 무례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돈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불쾌하다. 친하던 사람이 사정이 있어 못 만나더라도 진심이라면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문자 정도는 하고 지내는 게 상식인데 그것조차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엉뚱한 부탁을 하면 아주 곤란하다. 싫다고 할 수도 없고 해 줄 수도 없을 때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고 결과는 뻔하다. 내가 당하든지 아니면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손해를 주고 사라져 무소식으로 살다 우연히 만나면 염치가 없어서 그랬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다. 봉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절을 베풀게 된다. 나로 인해 상대가 기분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다 보면 싱겁게 웃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실없는 사람 같아 보이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을 본다.
사람마다 생각이 있는데 바보로 생각하고 자기 위주로 얕잡아보고 이용하고 일이 끝나면 안면 몰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알 수 없는 사람의 일이라 하지만 오늘만 살고 말 것 아닌 이상 얄팍한 마음은 금방 들통이 난다. 어딘가에 좋은 것 있다고 말하며 같이 가서는 노른자는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혼자 약은 것처럼 남들을 이용하고 골탕 먹이는 사람들의 끝은 어떨까 궁금하다. 무엇이든지 계산하고 남이야 골탕을 먹든 손해를 보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 챙기려 드는 사람에게 처음 몇 번을 넘어가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들이 어수룩해 보여도 바보는 아니다. 오래전에 친하지는 않아도 평소에 알던 사람이 갑자기 와서 지갑을 놓고 왔는데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며 다음날 주겠다고 돈을 빌려갔다. 알고 보니 놀음하는 사람이었고 애초부터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빌려간 것이다.
어리석게 안된 생각에 얼른 돈을 준 나도 바보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불청객의 한 예이다. 오래도록 봐 오고 겪어본 사람을 신뢰하는 이유는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를 알고 나를 알기에 유난을 떨지 않아도 믿음이 간다. 물론 살아가려면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며 살아야 한다. 사귀되 서로를 배려하며 친분을 쌓아가야지 갑자기 뜨거워진 사이는 금방 식어버린다. 갑자기 복권이 되고 횡재를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갑자기 사기도 당하고 도둑도 맞고 배신도 당하는 세상이다.
천재지변은 갑자기 온다. 인간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고 모르는 척 가버린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길에 갑자기라는 불청객을 만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