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가장 젊은 날

by Chong Sook Lee
IMG-20191025-WA0006.jpg 피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sharon lee)


이곳저곳 여행을 하며 가는 곳마다 많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실물보다 더 보기 좋기를 기대하며 즐겁고 행복한 듯 웃으며 찍는다. 활짝 웃고 허리도 쭉 펴고 조금이라도 멋있게 찍히고 싶은 것은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함일 것이다. 웃는다고 웃었는데 눈가와 입가에 주름이 보이고, 허리를 폈는데 목만 앞으로 나왔다. 이번 여행은 유난히 날씨가 좋아 사진을 예상보다 더 많이 찍었는데 막상 사진에 있는 내 얼굴엔 전에 없던 주름이 눈에 띈다. 경치가 좋아 멀리 찍은 사진은 인물이 적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가까이 찍은 사진은 얼굴이 커서 잘 보이지만 얼굴의 세세한 주름살과 점들이 자세히 보이니 보기 흉하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사용하기 좋고 사진 결과를 바로 알 수 있어서 좋은 반면에 사진을 당겨서 보면 얼굴의 모든 것들이 보이니 나이 든 우리 같은 노인들은 별로 환영하지 않는다. 그래도 옛날의 사진보다는 훨씬 낫지만 완벽함을 원하는 지나친 나의 기대 때문에 실망을 한다. 오래전에는 카메라의 질도, 사진 기술도 지금보다 훨씬 뒤떨어져 옛날 부모님 사진이나 우리 어릴 적 사진은 더 형편없었다. 어느 날 흑백사진에서 칼라사진으로 변환되었을 때는 눈이 번쩍 뛰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 늙어도 사진에서만은 고은 얼굴을 보고 싶은 욕심이다. 찍은 사진을 정리해 본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진을 마구 지운다. 눈도 이상하고 머리 모습도 안 어울린다. 허리도 구부정하여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안다. 사진의 모습이 지금 나의 진짜 모습인데 아침저녁에 한 번씩 거울을 볼 때마다 늙어가는 모습도 싫은데 사진에서 까지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지라 여럿이 다 잘못 나오고 내가 잘 나온 사진은 보관하고, 여럿이 잘 나오고 내가 잘못 나온 사진은 지워버린다. 남편과 찍은 사진도 내가 못 나온 사진은 지워버리고 식구들과 찍은 사진도 내가 잘못 나왔으면 없애버린다. 결국에 가서는 사진을 지워도 그 사진은 여전히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 내 눈으로 안보이니 없어진 걸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마음에 드는 사진은 그냥 놓아두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을 하나 둘 지워 나가다 문득 생각을 해보니 오늘은 내가 살아온 날 중에서 제일 늙은 날이지만 내게 남은 세월 중에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일 것이라는 생각이 퍼득 떠올라서 지우지 않고 그냥 놓아 두기로 했다. 나중에 내가 더 늙은 후 지금의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그야말로 미인의 모습일 것을 생각하니 약간 마음에 안 드는 사진도 애착이 간다. 화장하나 하지 않은 어릴 적 사진에서 나를 볼 수 없듯이 지금의 나의 모습도 세월 속에 묻힌 채 더 이상은 늙지 않을 것이다.

젊었던 시절에 주위의 나이 든 사람을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얼굴과 목에 주름이 많은 것을 보며 나는 늙어도 저렇게 늙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의 모습도 그들처럼 변해 있다. 세월은 그 누구도 이겨낼 수 없나 보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지금의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지금의 내 모습을 조금은 찾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나의 모습일 것이다. 머리는 더 희어질 것이고 얼굴도 여기저기 쳐질 것이다. 어느 시점까지 염색으로 흰머리는 가리겠지만 워낙 화장도 별로 하지 않는 나에게는 보톡스로 주름을 펴는 현대문명은 남의 이야기일 뿐 나에게는 적용이 안된다. 주름도, 처짐도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늙고 구부러진 노송에서 아름다운 세월의 흔적을 느끼지 않는가? 세찬 바람과 무서운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숭고함으로 뭇사람들의 칭송과 우러름을 받는다.

그래도 고생하며 힘들게 살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만하면 만족이다. "나이가 들었는데 얼굴에 주름도 있고 허리도 굽어야지 너무 주름 없는 얼굴도, 너무 꼿꼿한 허리도 늙은이 같지 않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을 거야." 하며 나름 속으로 자위해본다. 오래전 사는 것이 힘들고 괴로웠 던 시절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려웠던 시간은 아름다운 시절로만 생각이 난다. 아이들이 어느새 나이 마흔이 되고 손주들도 예쁘게 커간다. 얼굴의 주름을 가릴 수는 없지만 나의 지나간 삶이 세월 속에 차곡히 쌓여있다. 세월은 너무도 빠르게 가고 있다. 어찌나 빠른지 세월을 잡아둘 수 있는 끈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세 아이 들을 낳아 기르며 정신없이 보낸 세월처럼 우리 아이들도 아이들을 기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보니 지나간 나의 인생이 마치 지난밤 꿈처럼 아른거린다.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은 화살처럼 눈 깜빡할 사이 나를 스쳐갔는데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시간들도 그처럼 왔다 갈 것이다. 지나간 세월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오는 시간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사진으로 보는 지금의 나의 모습은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흔적이니 앞으로 그것을 교훈 삼아 잘 살아야 지금처럼 찍었다 지우는 사진이 많지 않을 텐데 하며 혼잣말로 뇌까려본다.


"오늘은 나의 가장 젊은 날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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