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가 없다. 줄 때는 언제고 지금은 도로 달라고 한다. 작년 11월에 받은 1시간을 돌려주고 서머타임이 시작되었다. 1 시간을 돌려주어서 밖은 아직 깜깜하지만 봄이 가까이 온다는 말이다. 북향에는 눈이 녹지않아 아직도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지만 남향 쪽은 눈이 다 녹아 누런 잔디를 내놓고 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살며시 온다. 가고 싶지 않은 겨울이 슬그머니 가나보다. 계절은 이렇게 소리 없이 자리바꿈을 하는데 사람들은 겨울이 빨리 가지 않고 봄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성급해한다.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더우면 옷 하나 벗으면 되건만 조금 춥다고 웅크리고 조금 덥다고 짜증 낸다. 하늘이 봄을 내려놓아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눈부신 태양은 쌓였던 눈을 벗긴다. 얼음으로 가두어 놓았던 계곡물도 녹아 흐르며 갈길을 찾아 떠나고 봄을 만나 세상은 기지개를 켜며 활개를 친다.
어딘가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온 봄이 나보고 나와서 저와 놀자고 자꾸만 속삭인다. 새들이 바쁘게 날아다니고 겨우내 살이 뽀얗게 오른 다람쥐도 나무를 오르내리며 운동하느라 정신이 없다. 요란스러운 봄 소리에 천지는 신나서 들썩이고 성질 급한 사람들은 산으로 강으로 향한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 지저분하게 계곡에 누워있다. 눈이 덮여 보이지 않았는데 눈이 녹아서 추하게 보이지만 이제 곧 새파란 새 옷을 입을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고 냉정하게 가버린 봄이 온다. 알아주지 않아 섭섭하다며 그냥 떠났던 봄이 온다. 올해는 미리 알아보고 잘 모셔야겠다. 사람이나 계절이나 화나게 하면 나만 손해다. 비위 잘 마쳐주며 있을 때 잘해야겠다. 떠나면 그만인데 인색하게 할 필요 없이 많이 많이 사랑해 주어야 한다.
꽃도 피게 하고 나무에 새 옷도 입혀주고 내 마음까지 뺏아가는 아름다운 봄인데 잘 대접해 주어야겠다. 길어야 90일 같이 있다가 떠나야 하는데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심술꾸러기 겨울의 눈치를 보며 멀리서 돌고 돌아서 오는 봄이다. 오고 싶어도 찬바람이 가로막고 폭설이 길을 막는다. 지구 온난화로 2월부터 봄이 왔다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겨울이 가다 말고 뒤돌아 본다. 계절도 사람 마음과 같아 엄청 변덕스럽다. 순한 줄 알았더니 뒤끝이 길고, 불같다 생각했는데 은근히 끈질기다. 그저 오면 오고 가면 가나보다 해야지 신경 쓰면 올 것도 더디오고 될 일도 안된다. 세상만사 계획대로 안되어도 다행이라 생각하면 좋은 일이 찾아온다. 소나무 가지에 참새들과 까치들이 소꿉놀이하고 전깃줄에 까마귀가 앉아서 졸고 있다. 겨울이 간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봄이 일찍 오지 않는다고 짜증 낼 필요 없다.
올 때가 있으면 갈 때도 있으니 그냥 놔두면 다 알아서 한다. 그래도 봄이 온다고 하니 마냥 좋다. 늙어가는 것 모르고 새봄이 온다고 기분이 좋다. 어릴 적에는 한 살이라도 더 먹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만 나이가 더 좋은 걸 보면 오는 세월이 무서운가 보다. 펄펄 꿇던 세월을 자꾸만 차게 식히는 야속한 세월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많이 사랑했을 텐데 이제는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 오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늘을 내 생애 마지막 날인 듯 살고, 오는 봄도 처음 맞는 봄처럼 많이 사랑해야 한다. 비도 내려주고 꽃샘바람도 불어주며 온 천지를 화려하게 무지개 세상을 만들어주는 봄에 세상은 춤을 춘다. 보이지 않던 새들이 하늘을 날고 어디서 날아온 씨앗이 꽃을 피운다. 봄은 생명이다. 봄은 희망이고 소망이다. 잃었던 것을 찾아주고 보이지 않던 것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꿈을 이야기하고 오늘을 이야기하고 내일을 데려다준다. 눈이 녹은 텃밭에 손톱만 한 부추가 파랗게 돋아나고 튤립이 고개를 내민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새 생명이 태어난다. 보이지 않아도 살아있고 만져지지 않아도 어딘가에 있다. 눈 속에 파묻힌 봄이 나온다.앵두나무가 아직은 헌 옷을 입고 있지만 새 옷으로 갈아입을 날이 점점 다가온다. 장미는 죽은 듯 마른 가지를 흔들어 대고 서 있지만 어느 날 다른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할 것이다. 눈 녹은 물이 시냇물처럼 흐른다.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벗고 가벼운 옷으로 걸어 다닌다. 누가 뭐래도 이제 겨울은 가야 한다. 겨울 동안 기다리던 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올라오는데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 딱따구리와 블루 제이가 술래잡기하며 논다. 봄이 왔으니 눈도 녹아야 한다. 싫어도 할 수 없다.
눈부신 봄빛이 세상을 녹인다. "겨울아... 가다가 돌아오지 말고 내년에나 만나자. 가라고 할 때 가야지 안 가면 사람들한테 미움받는다."라는 혼잣말을 해본다. 작년 이맘때도 안 간다며 눈을 잔뜩 뿌렸는데 올해는 제발 가기를 바란다. 아직도 뒤뜰에 눈이 녹으려면 적어도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 겨울이 온다고 걱정을 했는데 이제 봄이 늦게 온다고 투정한다.
지나간 세월이 다녀갔듯이 오늘도 지나가고 새날이 온다. 와서 좋고, 가서 좋은 세월이다. 세상만사 다 고맙기만 하다. 어차피 맞아야 할 세월이라면 좋아도 싫어도 끌어안고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