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도 기약한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살아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을 한다. 괴로워서 죽고 싶은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생명은 정말 소중하다. 무서운 추위를 견디고 살아난 것만 해도 잘한 일인데 꽃망울까지 매달고 서있는 나무를 보니 참으로 경이롭다. 눈이 쌓여있는 숲길을 걷는다. 봄은 오는데 봄이라고 하긴 아직 이르다. 숲길은 눈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해서 얼음판이고 자칫 잘못하면 미끄럼을 타야 한다.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나눠 받으며 살아날 궁리를 한다. 햇빛을 향해 바라보며 몸을 가꾼다. 더 예뻐지기 위해, 더 많이 사랑받기 위해 해를 바라본다. 구석에 새로 자라나는 나무도, 늙어가는 노송도 해를 바라보며 사랑받기 위해 애쓴다. 아니 마지막 남은 사랑을 불태우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 살기 아니면 죽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만 명의 생명이 태어나고 순식간에 죽는다. 인생사 남의 일은 하나도 없다. 다 내 일이다. 생각하지 못한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는다. 하루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꽃 한 송이가 피기 위해 추운 겨울을 참고 이겨내야 하듯이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꽃이든 사람이든 살아가는 고초는 마찬가지이다. 하루를 살던 백 년을 살던, 크게 피든 작게 피든 태어나고 피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살아갈 이유가 있고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피어날 까닭이 있다. 쉽게 피는 꽃이 없고 그냥 태어난 사람이 없다. 숲 속을 걸으니 죽은척한 나무들도 보이고 죽을 줄 모르고 뻗대는 나무들도 보인다. 전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고 까마귀는 나무 꼭대기에서 짝을 부르는지 깍깍댄다.


위험한 곳을 피해 한참을 걸어가니 층계가 보인다. 동네로 나가는 길이다. 하나 둘 세어가며 오르니 176개다. 가파른 절벽이라 계단이 참 고맙다. 안 그랬으면 힘들었을 텐데 쉽게 동네 길로 빠질 수 있었다. 계단 꼭대기에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보니 파란 물이 떨어질 듯 파랗고 그 옆에 서있는 나무는 꽃망울을 터트리기에 바쁘다. 나무 하나 가득 꽃망울을 물고 서 있다. 봄은 나중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곁에 와 있다. 저 혼자 견디고, 저 혼자 떨며, 겨울을 넘기고 꽃도 핀다. 참 생명이란 이처럼 아름답다. 누가 보던 안 보던 제 할 일을 한다. 때가 되면 꽃을 피고 잎을 달다가 떠날 때를 알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조용히 떨어져 갈 길을 간다. 힘들어도, 외로워도 불평 한마디 없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오는 계절을 맞고 보낸다.



(사진:이종숙)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매사에 불평불만이고 만족하지 못하며 살다 간다. 조그만 고통도 참지 못하고 죽고 싶다고 말한다. 작은 미움도 견디지 못하고 죽이고 싶다고 말하며 죽음이 오기까지는 죽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생사는 인간이 주관하지 않는다. 어느새 그 많던 눈이 녹고 땅이 모습을 보이고 지난가을에 떨어졌던 낙엽들이 여기저기 뒹굴어 다닌다. 새파란 생명이 낙엽 아래서 얼굴을 내밀고 머지않아 말간 얼굴로 지으신 이를 찬미할 것이다. 가다 보니 전망대가 보여 잠시 머물러 강을 바라본다. 강은 아직 해동이 되지 않아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미 봄을 맞아 춤을 추며 바다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멀리 까마득히 보이는 다리까지 가려면 급히 서둘러야 한다. 한발 두 발 걷다 보니 멀리까지 온 것처럼 하루 이틀 살다 보니 오늘까지 온 나를 뒤돌아 본다.


언제 나이가 드나 했는데 이젠 그토록 먹고 싶던 나이를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 먹지 말라는 나이를 왜 먹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먹는다고 덩달아 따라먹었더니 지금이 나를 만난다. 내려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얼음이 얼어 있지만 양쪽에 나무가 있고 쇠로 된 담이 있어 붙잡고 내려가면 될 것 같아 조심해서 내려가 보니 아까 위험한 것 같아 오지 않았던 길이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듯이 가야 할 길은 피하지 못하고 또 이렇게 가게 된다. 삶은 피한다고 피할 수 없다.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일지라도 살아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은총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날이 중요하듯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하루가 소중하다. 순간에 살고 순간에 죽는다. 지난주 같이 산책하던 친구가 몇 발자국 앞서 가더니 움푹 파인 곳에 발을 접질려서 검사 결과 발목에 금이 갔다.


같이 걸어갔는데 순식간에 생긴 일이었다. 깁스는 안 했지만 의료용 부추를 신고 6주를 살아야 한다며 실망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 치 앞을 모른다고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등굣길에 차에 치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고 한인 마사지들 4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뉴스도 들었다. 그 자리에 없었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야말로 잘못된 시간과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살아서 감사하고 지금 옆에 있어서 감사하다. 삶을 느끼고 기다릴 수 있어 좋고 그리워하기에 행복하고, 좋은 점을 찾아내고 좋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며칠 전 열심히 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로 외국에 사는 아들도 오지 못한 채 쓸쓸히 떠났다. 사느라 힘들었는데 외롭게 떠나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산다는 게 뭔지 떠나는 날을 알 수 없기에 살 수 있겠지만 너무 빨라 갔다.


아직은 할 일도 있고 더 많이 사랑받고 가도 되는데 잘 가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먼저 온 이민 선배들이 하나 둘 떠나간다. 이민생활이 고달파도 오래오래 살면 좋을 텐데 가는 길이 뭐 그리 급한지 벌써 갔다.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해 본다. 세월이 흐르고 젊었던 사람들이 가을을 맞고 겨울을 준비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알 수 없는 내일도 기약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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