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고 싶은 하늘이다. 먹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덮는가 했더니 진눈깨비로 길을 흠뻑 적신다. 먼지가 많이 나서 봄비가 한번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잘 되었다. 3월도 하순에 접어들었는데 아직 날씨는 쌀쌀한 이런 날은 칼국수나 얼큰한 찌개가 생각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때는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먹이느라 바빴는데 요즘에는 코로나로 언제 음식을 만들어 먹였는지 모르지만 그나마 할머니가 되니 손주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만들게 된다. 손자는 입이 까다로워 음식을 눈으로 먹는데 비해 손녀는 맛으로 맛있게 먹는다. 신혼초에 하루는 조카딸이 놀러 왔다. 음식을 할 줄 몰라서 요리책을 보며 감자로 만드는 감자 크로켓을 만들어 보았다. 8살짜리 조카딸이 엄마는 못하는 크로켓을 작은 엄마는 잘 만든다고 맛있게 먹으며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 2년 뒤에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둘째를 가졌는데 찹쌀떡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자세하게 나온 설명을 보고 만들면 되지만 그때는 그냥 상상만으로 먹고 싶은 찹쌀떡을 만들어야 했다. 먹고 싶은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팥소를 만들고 찹쌀가루를 쪄서 만들긴 했는데 요령이 없어서 개떡이 되었다. 뜨거운 찹쌀떡을 손으로 둥글려서 팥소를 넣고 붙여서 예쁘게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뜨거워서 쩔쩔매고 만든 모양은 그야말로 가관이었지만 기가 막히게 맛이 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그 뒤로 틈틈이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었더니 실력도 좋아지고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손주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 자주 하게 되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만두 찹쌀떡 빈대떡 잡채 갈비 묵 돼지고기 수육 김밥 칼국수 떡국을 비롯해서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때에 따라 손주들이 주문하는 것을 해주곤 한다.
나 역시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배우지 못하고 이민을 왔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 별로 없지만 음식이란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맛있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식구들이 좋아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음식은 이리저리 밀려다니다 결국 버리게 된다. 사람들의 입맛이란 어릴 적부터 먹던 음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생소한 것은 꺼려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손주들이 따라먹으며 음식이 전수된다. 41년 전에 이민오 던 때는 한국음식이 많이 없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이곳 재료를 이용해서 흉내만 내서 먹어야 했다. 총각김치가 먹고 싶을 때는 샐러드에 넣어먹는 빨강무를 사서 고춧가루에 버무려먹고 상추를 고추장에 무쳐먹으며 김치를 대신했다. 반찬이 없으니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고 미역죽을 해 먹으며 살았다.
입덧은 심하고 이곳의 기름진 음식이 비위를 상하게 해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쌀은 있지만 반찬이 없으니 미역을 넣고 죽을 끓여서 간장으로 간을 해서 먹으면 그런대로 입맛에 맞았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조금씩 재료들이 많아지고 먼저 이민 온 선배들이 살아오며 연구한 음식을 배워 하나둘 해 먹기 시작했다. 있으면 해 먹고 없으면 그냥 넘어가며 웬만하면 서양식을 해 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은 간단하고 냄새 안 나는 양식으로 길들여 한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집에 오면 한식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인의 입맛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없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음식이 넘쳐나서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사 먹게 되었다. 그래도 텔레비전에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을 보면 침을 꼴깍꼴깍 삼키지만 무엇이든지 사 먹고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손주들이 김밥을 잘 먹고 찹쌀떡을 만들어 주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한국 음식 중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떡국과 칼국수라며 엄지 척을 내보이는 손주들이 사랑스럽다. 아이들과 칼국수를 만들고 손주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이런 게 바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는 엄마가 어릴 적 만들어 주시던 떡국의 맛을 잊지 못하고 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밀어 만들어 주시던 칼국수가 먹고 싶다. 부모님이 즐겨 드시던 음식이 나를 통해 아이들에게 내려가고 손자들에게 간다. 강이 바다로 흘러가듯 자손들이 퍼져나가 한국음식을 알리는 것이 자랑스럽다. 진눈깨비는 그치지 않고 바람까지 심하게 분다. 날씨 덕분에 옛날로 돌아가 추억에 잠겨 있었는데 아무래도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되는데 미룰 필요가 없다.
예전 같으면 몇몇 친한 친구들을 불러서 맛있게 해 먹을 텐데 아직은 자중하며 남편과 단둘이 해 먹어야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맛있는 칼국수를 먹을 생각을 하니 침샘이 요동친다.호박도 있고 파도 있으니 간단하게 밀가루 반죽해서 손칼국수나 만들어 먹자. 날씨가 궂은날에 딱 맞는 음식이다. 진눈깨비 덕분에 누렇게 메말랐던 잔디는 파래지고 나는 맛있는 칼국수를 먹는다. 날씨가 고맙고, 음식이 고맙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남편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