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하늘

by Chong Sook Lee

나무 아래서 토끼가 졸고 있다.(사진:이종숙)


꽃샘바람이 분다. 겨울이 떠나기 전 봄은 어느새 소리 없이 와서 우리 곁에 서있다. 3월이 오기를 겨우내 기다렸는데 벌써 3월도 지나간다. 세월이란 이래서 흐르는 물과 같다 했나 보다. 잡는다고 머무르지 않고, 재촉해도 시간에 맞추어 유유히 가고, 기다리면 더디게 오고, 빨리 가기를 원하면 가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사는 것은 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데 조금은 허무한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동안 나는 내 인생의 봄이 오기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지금껏 살아왔다. 그런데 봄이란 것이 매일 도망만 다니고 곁에 얌전히 있지 않는다.


언제나 무언가를 기다리며 꿈꾸며 살아온 나다. 봄을 맞을 희망으로 겨울 속을 헤매며 살아온 시간들엔 수많은 봄들이 내게 왔다 갔다. 그것을 어리석게도 뒤늦게 내 인생의 가을을 맞고 나니 알게 되었다. 어느덧 손주들이 넷이 있다.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꽃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봄을 연상하도록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다.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고 대접받는 시기라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해도 예쁘고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아름답고 평화로우니 이게 바로 천국이고 봄이다. 아무런 걱정 없이 잠자는 모습, 울고 웃는 모습, 아장아장 걸으며 이것저것 만지며 말썽 피우는 모습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이 바로 천사의 모습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그런 시절을 거쳐 세월 따라 늙어간다. 사는 동안 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추한 모습만 나와 동행하는 것이 때로 안타깝다. 그러나, 사람이 아기들 같은 봄만 있다면 여름과 가을은 없어져 버리고 말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좋은 봄도 어느 날 소멸되어 버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니 봄만 기다리고 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3월의 하늘은 파랗다. 나무들은 그 추운 겨울 속에서도 움트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봄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학교 운동장에도 벌써 봄이 성큼성큼 닦아서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듯한 들판도 어느새 보이지 않는 연한 연둣빛으로 새 옷을 입고 농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새싹이 움트고 자라며 완연한 봄이 가기 전에 여름은 그 봄을 살그머니 밀쳐내고 의젓한 주인행세를 한다. 그렇게 봄 여름이 활개를 치며 제 세상 만난 듯 천지를 호령할 때 가을은 곱게 차려 입고 살며시 우리 곁을 찾아온다. 봄여름을 밀쳐내고 온 천지를 아름답게 장식해 주며 떠날 준비속에 겨울을 맞이하여 제 자리를 내어주며 간다. 이건 마치도 우리 인간들의 인생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태어나 희로애락 속에 생로병사로 끝을 맺으며 후손들에게 우리의 자리를 미련 없이 내어준다.


겨우내 그토록 기다려온 춘삼월은 겨울 속에 묻혀 가듯이 봄도 또한 그렇게 묻혀가며 세월을 따라간다. 그런 자연의 이치를 알지만 여전히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 안에 3월의 하늘은 봄을 뿌린다. 며칠 동안 가기 싫은 겨울이 심술을 부리느라 진눈깨비를 뿌려대더니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고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마당에 나와 서성인다. 혹독한 겨울을 어찌 참아내고 다시 새파랗게 돋아나는 생명의 위대함을 다시 느낀다. 나무 아래에 토끼가 앉아서 졸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짝은 망을 보는지 귀를 쫑긋 거린다.


먹을 것도 없는 추운 겨울에 무얼 먹고살았는지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봄을 맞아 하얀 털이 조금씩 회색으로 변하고 있고 여름에는 잿빛으로 옷을 입고 다닐 것이다. 토끼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더니 짝과 함께 길 건너집 마당으로 가서 둘이 무언가 속삭인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저렇게 사랑하고 의지하며 사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이제 봄이 오면 봄, 여름 동안 풍요로운 들판에서 추위에 떨지 않고 행복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새들이 이나무 저나무를 몰려다니며 봄을 알린다. 먹을 것이 있는지 나무를 쪼아대다 다른 나무로 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평화롭다. 아직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설픈 3월의 봄은 새들과 시샘 바람과 함께 온다.



(사진:이종숙)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반갑지 않은...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