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따라 세월이 흐르고... 우리네 인생도 흐른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두꺼운 얼음을 깨고 강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겨울이 온 적이 없고 얼었던 적도 없는 것처럼 꽐꽐 잘도 흐른다. 조금 춥다고 엄살떠는 인간의 모습이 가소로운 듯 언제 얼었던 적이 있느냐며 신나게 바다를 향해 흐른다. 앞으로 가서 무엇을 하려고 저리 급히 가는지 모르겠다. 급하게 살아보니 지금에 와 있다. 늙어보니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급하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세월이 빨리 가서 아이들이 크기를 바라던 날들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세월은 오고 가는데 세월이 가면 좋은 날이 날 찾아오는 줄 알았다. 가라던 세월은 주름진 얼굴에 굽은 어깨를 내게 주고 갔다. 무심한 강물은 뒤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간다. 앞에 보이는 골짜기도, 가파른 절벽도 두렵지 않고 넓은 바다만 생각하고 흐른다. 가다 보면 넘지 못할 장애물이 생겨 꼼짝을 못 하며 지난날들을 돌아보아야 할 때가 있다.


날씨가 추웠다 풀렸다를 계속하면서 자연스럽게 강물이 녹아야 하는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먼저 내려가던 성급한 얼음조각들이 강물을 막고 얼어 버린다. 위에서는 녹은 강물이 내려오는데 얼음이 길을 막아 앞으로 가지 못하고 넘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강물이 동네로 들어가 동네가 침수되어 수재민들이 생기고 사람들은 밤을 새워 가며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지만 감당할 수 없다. 갑자기 날씨가 풀려 생겨나는 현상이다. 먼저 내려간 얼음이 녹지 않고 쌓여 만들어진 커다란 얼음산으로 인해 흘러 내려오는 물은 갈길을 가지 못하고 들판으로 넘쳐서 동네로 길을 만들며 가는 것이다. 동네는 물에 잠기고 커다란 기계를 이용해서 얼음을 깨는 작업을 해야 한다. 기계를 강 한가운데에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강을 막아버린 얼음산을 깨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진:이종숙)


옆에서 조금씩 깨고 강물의 길을 터주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물의 힘이 너무 세서 기계가 쓸려 갈 지경이다. 해마다 물이 녹고 얼고를 반복하는 이곳은 그런 문제로 정부는 골치를 앓는다. 작년에는 다른 도시에서 얼음으로 강이 막히는 일이 있어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자연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올해는 별로 춥지도 않고 눈도 조금 내려 겨울을 잘 보낸다. 엊그제 심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한파도 하루 만에 두 손 들고 납작 엎드렸다. 실망과 희망을 줬다 뺏었다 하는 날씨가 변덕을 부려도 당할 수밖에 없다. 날씨 좋은 날은 햇볕을 만나고 흐린 날은 구름을 만나면 된다. 바람이 불면 바람과 이야기하고 비가 오면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눈이 오면 쌓이는 눈을 바라보면 된다. 세상일이 알 수 없고 안 다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 많다.


찾고 싶은 것은 보이지 않고 갖고 싶은 것은 도망 다닌다. 바라는 것은 얻기 힘들고 소중한 것은 잃기 쉽다. 해야 하는 것이 많다고 다 할 수 없고 못해도 해야 하는 것이 태산이다. 세월 따라가다 보면 춘하추동이 들랑거리며 웃기고 울린다. 코로나라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이렇게 무섭도록 세상에 파고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두 달 견디면 될 것 같던 예상을 무너뜨리고 1년을 넘겨도 꼼짝 하지 않는다. 하라는 대로 하는데도 여전히 갈 생각을 하지 않는 코로나의 정체를 알고 싶다. 주식처럼 확진자 수가 오르내리며 갈듯 말 듯 망설인다. 이제는 가면 좋으련만 가지 않고 서성이는 겨울처럼 끈질기다. 너무나 많이 변한 세상이 코로나와의 전쟁이 끝나면 어떤 세상이 올까 궁금하다.



(사진:이종숙)


기계가 넘쳐나는 세상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 하기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것들을 인공지능의 기술로 다 한다.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책장이 넘기고 눈동자만 굴려도 원하는 것을 해준다. 문을 여는 것도, 손가락을 쓰는 것도 다 잃어버리고 나면 사람의 능력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몸을 쓰던 인간이 기계에 의존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잊어간다. 핸드폰처럼 간단한 것 외에는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랫동안 서서 하는 일을 한 나는 서서 하는 일은 얼마든지 하지만 앉아서 하는 일은 잘 못한다. 몸이 유연하여 운동도 잘했는데 이젠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달리기를 해본지도 오래되었다. 이유도 없고 기회도 없다. 달리기를 생각해보니 35년 전 이야기가 생각난다. 큰애가 5살 때 철봉대에 매달렸다가 떨어지며 입술을 무릎에 찧는 사고가 있었다.


입술 아래가 찢어져서 피가 나는데 막내는 3살 둘째는 4살이었고 다친 5살짜리 큰애를 업고 병원에 가야 했다. 차로는 5분도 안 걸리는 곳이지만 어린 세 아이를 데리고 뛰어가기는 먼 거리였다. 그래도 피가 나는 모습을 본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병원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뛰어갔다. 하나는 등에 업고 둘을 데리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땀이 비 오듯 했다. 막상 의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말만 했다. 입안이기 때문에 그냥 놔둬야 한다는 말만 했다. 다행히 잘 아물긴 했지만 뛰는 이야기가 나오면 몇십 년이 지났어도 그때 생각이 난다. 세월이 가면 그냥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같다. 조금만 미끄러워도 겁부터 나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맞다. 매사에 천천히 하고 가만가만한다.


층계를 몇 개씩 뛰어내리고 미끄러운 길은 장난 삼아 미끄럼을 타고 높은 곳에서도 잘 뛰어내렸는데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장애물이 되어 앞에 나타난다. 갑자기 변하는 세상이 무섭고 두렵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지 겁이 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쉽게 살고 싶은데 현대문명은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어정쩡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보이고 남의 일 같지 않다.


강물 따라 세월도 흐르고 우리네 인생도 흐른다. 청춘이 영원하지 않듯이 세상은 돌고 돈다. 이제 옛날의 나는 없어졌지만 세월의 강물을 따라간다. 가다 보면 얼음조각과 동행하기도 하고 얼음산을 만나 들판으로 흐르게 될지 모르지만 자연을 따라 자연에 순종하며 살다 보면 이 세상 어떤 장애물도 쉽게 넘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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