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에서 보는 강물이 초록색이다. 참 예쁘다. 쿠바에서 보았던 바다를 닮았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아주 간단한 디자인으로 걷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오래된 다리인데 왠지 겁난다. 손잡이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 떨어질 것 같고 사진을 찍다가 전화를 떨어뜨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무섭다.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강변 가까이 걸어본다. 햇살에 반사되는 강물은 눈이 부시다. 강변에 아직 녹지 않은 두꺼운 얼음 위에 새들이 앉아서 논다. 오리와 갈매기는 물에 들어가서 헤엄을 치고 까치는 얼음 위에서 무언가를 찍어 먹는다. 아무도 걷지 않는 산책길은 조용하고 숲은 아주 평화롭다. 겨울을 벗은 숲은 목이 마르도록 말라버려서 걸을 때마다 흙먼지를 날리고 며칠 사이로 더 많이 자란 움들은 금방이라도 파란 이파리를 터트리며 세상에 나올 것 같이 커졌다. 어떤 이파리를 하고 나올지 모르지만 겨울 동안 오늘을 위해 견디며 살아온 나무들이 믿음직스럽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기대고 바라보며 서서 강물을 바라본다. 강가에 서서 때로는 춥게, 때로는 시원하게 바람을 맞으며 단련되어 자란다. 색이 검은 나무가 있고 뽀얀 나무가 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옆에 서있는 것만 보아도 기분이 좋다. 비가 올 때나 바람이 불 때나 그들이 있기에 숲은 따스하다. 도시의 빌딩 사이는 찬바람이 불어도 숲 속의 오솔길은 포근하다. 아침에 구름이 끼어 있어서 추운 줄 알고 두껍게 입고 나왔더니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더워서 옷 하나를 벗고 걸으니 시원하다. 강가를 걸으니 어제 들었던 뉴스가 생각난다. 강가를 걷던 남성이 물에 빠진 개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야기다. 산책하던 어떤 사람의 개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개를 구하러 얼음 위를 밟고 들어간 남자가 얼음이 깨져 강물에 빠졌는데 개는 살았지만 결국 사람을 찾는 구조작업을 포기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들었다. 자신의 개도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의 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어갔던 그는 결국 무섭게 흐르는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한순간의 생각이 유명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강을 끼고 있는 골프장은 벌써 잔디가 파랗고 하루라도 빨리 열어 손님을 받기 위해 단장하느라 바쁘다. 시내에 몇 군데는 이미 문을 열어서 성급한 사람들은 골프를 시작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데 봄이 그리 쉽게 오지 못하는 이곳은 내일모레 또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들린다. 어쨌든 눈이 오고 비가 오고 하더라도 이미 4월이니 겨울은 이미 이곳을 떠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년 회원권을 사면 앞으로 6개월간은 신나게 칠 수 있으니 며칠 늦는다고 안달할 필요는 없다. 낭떠러지에 버티고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햇살이 오솔길을 비추며 길에 얼룩말 같은 무늬를 만든다. 멀리 보이는 다운타운이 봄옷을 입은 듯 화사하게 눈에 들어온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가게 되지 않는 곳이라 멀리서 보기만 해도 좋아 사진 몇 장을 찍어본다. 영어학교가 있고 직장이 있던 곳이라 매일 가던 곳인데 세월 속에 묻혀 버렸다.
(사진:이종숙)
아주 오래전으로 생각은 돌아간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영어를 배우러 가는 길은 항상 바쁘다. 숨 가쁘게 살지 않으면 하루도 못살듯이 뛰고 뛰었다. 남의 나라의 삶은 팔팔 뛰는 생선 같은 모습이다. 나 자신을 잊고 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남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남들과 잘 살아가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 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노'라고 해야 할 때 '예스'라고 대답하며 살았던 날들이 지나 대화가 통하고 직장을 잡고 친구를 사귀며 이곳 사람이 되어가야 했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서 웃으면 웃음이 돌아오고 친절하게 하면 기쁨이 되어 돌아온다. 직장생활 속에 사람들을 알아가고 그들의 풍습을 배우며 살아간다. 삶을 이야기하고 음식을 주고받으며 색깔을 떠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된다. 흑인 친구, 인도 친구, 동양 친구 모두 모여 웃고 떠들며 생활하던 때가 그립다.
까마득히 보이던 다리에 다다르니 많은 차들이 쌩쌩 달린다. 제한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리는 것 같다. 속도위반 차를 잡는 차가 이런 곳에 지키고 있으면 수입이 좋을 것 같다는 남편 말에 한바탕 웃으며 비둘기가 잠시 쉬고 있는 다리 밑을 지나 숲으로 간다. 비탈길을 걸으며 지난번 왔을 때 얼음이 많아 미끄러워서 아슬아슬하게 걸어갔던 생각이 난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얼굴에 땀을 말려준다. 추워서 웅크리고 다녔는데 이젠 덥다는 소리를 한다. 세월이 오나 했는데 언제 갔는지 모르게 빠르다. 너무나 빨라서 나이에 따라 세월이 달로 가고, 일로 가고, 시로 가고, 분으로 가고, 초로 간다는 말을 듣고 공감했다. 왜 그리 달려가는지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바비큐를 하는 화덕이 여러 개 있는 숲을 지난다. 날이 따뜻해지면 너도나도 나와 피크닉을 할 것이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바비큐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곳은 3차 유행이 시작되어 확진자가 많아지는 바람에 다시 방역이 강화되었다. 식당과 미용실 그리고 체육관은 다시 문을 닫게 되었고 편의점이나 가게는 장소의 15퍼센트의 인원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두려워하고 집에 있으라는 정부지침에 실망한다. 주수상은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해하고 이번 4주간을 마지막으로 코로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 다짐한다. 아랑곳없는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나무들은 걱정 없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자란다. 다리를 건너서 강물 따라 걸어오며 강물을 돌아가는 사이에 어느새 바로 앞에 주차장이 보인다. 오늘도 함께한 남편이 고맙고 파란 하늘이 고맙다. 욕심을 버리니 감사가 나를 찾는다. 안 되는 게 많았던 날들이 가고 이대로가 좋은 날이 되었다. 많이 바라지 않고 더 많이 사랑하니 더 많이 행복하다.
내가 살아온 동네가 이리도 아름다운 곳임을 살면 살 수록 더 많이 느낀다. 가보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볼 게 없는 시시하고 재미없는 곳이라고 말하던 나 자신이다. 퇴직을 하고 한 번 두 번 여기저기 찾아본 이곳은 그야말로 보물 같은 도시라는 것을 발견한다. 봄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이 너무나 아름답다. 늦게 봄이 온다고 불평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 겨울이 춥고 길다고 말을 하지만 그래서 더욱 좋다. 겨울 숲은 낭만이 넘친다. 침엽수에 눈이 쌓여 그림 같은 풍경을 담아내는 숲에는 다람쥐들과 새들이 잔치를 한다. 가보지도 않고 가깝다고 우습게 여기던 숲 속에서날마다 행복을 줍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음을 자연 속에서 찾는다.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며 강가를 걸으며 그동안 찾아 헤매던 행복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