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찾아오는... 계절처럼 좋은 날이 온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어제 생각했던 오늘이 아니다. 오늘이 어제와 다른 것은 그만큼 하루 더 늙어간다는 것일 뿐 별로 다르지 않다. 조금씩 봄이 가까워지고 세상은 파릇파릇한 색으로 변해 간다. 뒤뜰에 해마다 혼자 피었다 지는 원추리는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란다. 제일 먼저 나와서 가장 나중까지 뜰을 지키며 예쁜 꽃까지 선사하며 뜰을 지킨다. 자연은 약속도 하지 않지만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비바람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꽃을 피며 할 일을 하는데 사람들은 틈만 나면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남을 속이기를 밥 먹듯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매일 속고 속이며 희망하고 실망하여 절망 속에 쓰러진다. 하루를 버리고 또 새로운 하루와 씨름하며 웃고 운다. 태어난 목숨이니 기왕이면 행복해야 한다지만 세상은 허락하지 않는다.


하루가 백 년 같은 사람도 있고, 백 년이 하루 같은 사람도 있듯이 사람마다 다르게 한평생 사는 삶이 좋기만 하지는 않다. 매일이 같은 날은 아니지만 다 그렇고 그렇다. 의미를 찾는 것도 힘들어진다. 어제는 무엇을 하고 하루를 보냈는지 생각도 나지 않고 새날을 맞아 또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가 보낸다. 누군가는 그토록 살아보고 싶은 오늘일 텐데 나한테 온 하루는 시시한 하루가 되어 사라진다. 숱하게 지나간 바빴던 날들은 세월 속에 묻혀 버리고 찾을 수 없다.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심심하면 누워서 잠자고 스마트폰을 보며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나날이다. 밤이 오면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세상을 보며 어제처럼 오늘을 산다.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고 무슨 요일인지 어떤 날씨가 될 것인지 생각 없이 산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주위에 사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산다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생각하면 한심하다. 매일이 같은 날이고 하루를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뭐라도 해보려고 이것저것 해보지만 마땅히 할 것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없어서 쩔쩔맸는데 시간이 너무 많아 어찌할 줄 모른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잊혀가고 이야깃거리도 없어져 간다. 그나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있어 다행이다. 심심하면 할 일을 찾아 하다 보면 시간도 빨리 가고 의미도 있어 좋은데 손가락 꼼짝 하기도 싫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다. 오래 앉아 있거나 누워서 있는 것도 쉽지 않아 괜히 집안을 서성이며 창밖을 내다보기도 한다. 겨울을 벗어버린 뜰은 찾아보기도 전에 할 일이 눈에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뜰을 긁고 청소해야 하고 차고도 정리해서 버릴 것 버려야 한다.


(사진:이종숙)


물론 바깥일은 남편의 일이지만 두식구 사는데 남편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남편 일이다. 생전 늙지 않을 것 같은 남편도 옛날 같지 않다. 힘든다는 소리 한번 안 하며 이것저것 했는데 요즘엔 힘이 달리는지 일을 쪼개서 한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하고 생각을 돌린다. 새들이 바쁘게 날아다니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졌다. 마스크는 당연시되어 불편하지만 하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어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하다. 사람들끼리 외면하며 산 지 오래되었다. 오다가다 만나는 모르는 사람끼리라도 인사를 하며 지나치는 곳인데 저마다 갈길만 간다. 만나면 안 되고 가까워지면 안 되고 멀리 떨어져야 살아남는다. 백신을 맞아도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그럭저럭 살다 보면 언젠가 끝나겠지만 올해도 벌써 4월도 중순이 되어가는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세월이 약이라는데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 믿는다.


심심한 까치가 나무 꼭대기에서 짝을 부르는지 아침 내내 깍깍 댄다. 죽은 척하던 소나무도 알게 모르게 새 옷을 갈아입고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서 있다. 몇 군데 병이 들어 죽은 가지를 끼고 사는 전나무도 겨울을 이겨내느라 힘들었을 텐데 내색도 하지 않고 늠름하게 서있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고 차만 몇 대 뒤뚱 거리며 지나갈 뿐 아무런 일도 없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동네 모습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나를 찾아온 하루다. 할 일이 없어도 할 일을 만들고 좋은 날이 될 거라 생각하면 기분이 달라진다. 지금은 코로나 전시 상황이라 참는 김에 더 참고 살아야 한다. 오늘이 중요하지만 내일이 온다. 좋은 날이 오고 때가 되면 코로나도 간다. 겨울이 있어 봄이 있고 봄을 기다리다 보면 봄이 온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오면 겨울은 잊힌다.


하루가 열흘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된다. 세월이 가지 않아 언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나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수십 년이 흘렀다. 좋은 날을 기다리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다 보니 오늘을 맞았다. 남의 일인 줄 알았던 세월을 안고 살며 뒤돌아보니 참 많이도 살았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자연을 보면 인생도 보인다. 낡으면 낡은 대로 해지면 해진대로 살아가는 나무들이 올해도 변함없이 봄을 맞는다. 집 앞에 서 있는 자작나무는 적어도 50년을 되었을 텐데 죽은 가지 옆으로 자란 가지가 잎이 나고 꽃을 피운다. 늙어가기에 힘들겠지만 나무도 제 할 일을 하며 마지막을 향해 살아간다. 오라는 봄은 게으름을 피고 가라는 코로나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더 극성을 부린다. 계절도 코로나도 다 알아서 하는데 인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한다.


때가 되면 오고 때가 되면 자연이 알아서 갈 텐데 인간이 마음대로 하려 하니 마음만 급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어느 날 찾아오는 계절처럼 좋은 날이 와서 모두들 손잡고 포옹하며 사는 때가 올 것이다.


(사진:이종숙)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안에 있는... 행복을 찾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