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도, 헤어짐도... 만남을 위한 자리바꿈이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눈폭탄이 떨어져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해마다 4월에 어김없이 오는 눈이지만 올해는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잊지 않고 찾아왔다. 세상은 봄인 줄 알고 넋 놓고 있는데 눈이 와서 움츠린다. 사과나무도 앵두나무도 눈을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고 있다. 마가목 나무는 빨간 열매 위에 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있고 소나무에 어린 솔방울 위에도 하얀 눈이 곱게 앉아있다. 나뭇가지에도 나뭇잎에도 저만의 모습을 보여주며 겨울과의 마지막 이별을 한다. 그냥 가면 서운한지 잊지 않고 찾아온 겨울이 얄밉기도 하지만 애교로 봐줘야겠다. 안 그래도 너무 건조해서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춤을 추며 따라 다녔는데 이번에 온 눈으로 땅이 물을 마시며 먼지를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아 한편으로는 반갑다. 이제 눈이 녹으면 세상은 온통 초록색 옷을 입고 봄의 향연을 할 생각을 하면 끈질기게 가지 않는 겨울도 그리 밉지 않다.


자연은 언제나 제 마음대로 한다.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절대 듣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기다리면 더 멀리 가고 그리워하면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버린다. 잊은 듯 무시하면 어느새 곁에 와서 아양을 떨고 봐 달라고 하늘거린다. 지구를 더럽히고 자연을 훼손한 대역죄인인 인간이 할 말이 없지만 여전히 불평불만을 한다. '언제 가느냐, 왜 이리 늦게 오느냐, 왜 벌써 왔느냐, 왜 가느냐'하며 자연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연은 제 맘대로 오고 간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온다. 꽃을 피고 싶을 때 피고 힘들면 아무도 모르게 지며 땅에 떨어진다. 안녕이라는 소리도 없이 잘 있으라는 말도 없이 저혼자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며 사람들은 왜 벌써 지느냐고 서운해한다. 갈 때가 되어 가고 올 때가 되어 왔는데 계절이 빠르다, 늦다 말도 많다. 자연은 배신도 배반도 없이 할 일을 한다.



(사진:이종숙)


눈이 오다가 비가 되기도 하고 비가 오다가 홍수가 되기도 한다.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며 햇볕을 가리기도 하고 천둥번개로 겁을 주기도 한다. 언제라도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사람들은 연구를 하여 앞일을 알아가지만 자연의 꿍꿍이속을 알듯 하지만 모르겠다. 13년 전 결혼 30주년을 기념하여 세 아이들을 데리고 고국방문 여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한 여행이라서 잊히지 않고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여기저기 분주하게 여행을 다니고 제주도 여행 패키지를 사서 제주도까지 여행을 다 끝냈다. 행을 마치고 이곳에 오는 날은 영상 25도로 한여름처럼 더웠기 때문에 여름옷을 입고 가방을 보내고 출국 수속을 밟아 미국 시애틀에 도착했다. 미국도 한국과 다름없이 여름 날씨로 더워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런 불편 없이 먹고 조금 쉬다가 비행기를 갈아탔다.


오는데 기내방송으로 이곳의 날씨 현황을 알려주는데 폭설이 와서 착륙을 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 가까이 올수록 기내 온도는 추워지고 여름옷을 입고 온 우리 식구는 담요로 몸을 감싸고 착륙을 기다렸는데 몇 번 착륙을 시도하던 비행기가 다행히 안전하게 착륙했다. 짐을 찾아 겨울 재킷을 입고 밖에 나왔는데 15센티가 넘는 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는 파릇파릇 새싹이 나오고 튤립도 꽃망울을 피우고 있었는데 집에 와 보니 모든 것이 다 눈 아래로 숨어버리고 다시 하얀 겨울로 돌아가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해마다 요란스러운 인사를 하며 떠나는 겨울이 올해도 어김없이 신고를 한다. 이제 가면 다시 오지 않을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서운해서 그 난리를 하고 가는지 모르겠다. 오래가지 않고 있으면 사람들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줄 모르는지 심술을 부리며 오는 봄을 방해한다.


사진:이종숙)

뒤뜰에 있는 그네와 피크닉 테이블도 눈이 하얗게 덮어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도 봄은 온다. 겨울이 강한 듯 하지만 봄이 더 세다. 땅을 뚫고 나오고 가지에 싹을 키우고 꽃을 피우는 봄이 얼마나 강한 줄 겨울이 몰라서 깔보는 거다. 약하지만 강하고 봄과 강하지만 약한 겨울의 만남과 이별은 참으로 어렵다. 소멸과 소생이 엇갈린다. 시작이 없고 끝이 없기에 세상은 영원히 돌고 돈다. 때가 다 된 겨울은 떠나고 때가 되어 온 봄은 머문다. 지붕에 하얗게 쌓인 눈은 뜨거운 봄빛으로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목말랐던 대지는 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찾은 봄을 자축하며 활기를 찾고 봄 안에서 겨울을 잊는다.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는데 눈으로 온갖 세균이 다 얼어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쏟아진 눈이 고맙다.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좋게 생각하니 다 좋다. 10월에 볼 눈을 한번 더 보게 해 준 눈이 예쁘고, 겨울이 가져다 놓은 더러운 것들을 덮어 세상이 깨끗하다.


헌 계절이 가기에 고맙고 새로운 계절이 오기에 고맙다. 함께 하기에 좋고 떠나기에 좋다. 실망보다 희망을 갖고 오늘 내게 온 것에 감사하니 세상만사가 다 좋아진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이유가 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온다. 이유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모두 말해준다. 만남도 헤어짐도 다 이유가 있고 자연은 그 모든 질서를 따라오고 간다. 숨었던 태양은 다시 얼굴을 내놓고 환하게 세상을 비춘다. 눈이 와서 어딘가로 몸을 피했던 새들이 날아다니고 나뭇가지 사이를 오르내리며 수다를 떤다. 세상을 덮을 듯 내리던 눈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을 낮춘다. 눈은 녹아서 나무가 먹고 꽃이 마시며 다시 사람들의 숨 속으로 들어가 세상에 나온다. 가는 것이 아니고 잠깐 자리를 비우는 거라 생각하면 이별도 헤어짐도 만남을 위한 자리바꿈일 뿐이다. 잠깐 외출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삶은 여전히 지속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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