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치 안 보고... 뜻을 따라 길을 간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사람들은 남을 인정하며 자신도 인정받기를 원하며 산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좌절한다. 남이 주는 점수에 민감하고 자신에게는 인색하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지만 자신을 위하는 일에는 뒤로 미루며 산다. 남을 위한 자선도 좋고 희생도 훌륭하지만 자신이 없는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것을 사고, 갖고 싶은 것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만 어느 날 때가 되면 그 모든 것들이 소용없음을 알게 된다. 별것 아닌 것에 연연하며 안타까워하며 안달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때가 온다. 알고 보면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기에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 오늘 행복을 주는 것이 어느 날 짐이 되고 장애물이 되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다만 추억은 희미하게 남아 그때의 순간을 기억하게 하기에 버리지 않은 채 붙들고 산다. 그토록 좋아했던 일도,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친구들도 세월 따라 가버리고 잊힌다.


학교를 졸업하고 소설을 쓰겠다고 원고지를 가지고 다니며 틈만 나면 썼는데 그때는 그것이 세상에서 최고라 생각하고 썼다. 글로 위로받고, 글로 사랑하고, 글로 고백했다. 글 안에 마음을 담고, 글을 쓰며 울고 웃었다. 하루에도 몇 편의 시를 써도 한없이 솟아나는 열정으로 살았다. 쓰고 또 쓰고 하다 보면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나의 모습이 보여 행복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도 그 뜨거운 열정은 식지 않았다. 배우지 않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연구를 하고 실수를 하며 독학하는 길은 한없이 나를 희열로 이끌어 주었다. 물감이 만드는 신비함은 실로 아름다웠다. 음양과 원근 그리고 배색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생기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그렸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캔버스에 상상의 그림을 그려 완성하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 그런 행복이 없으면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고 한 폭의 그림도 그릴 수 없기에 열심히 그리고 썼다.


그러나 어느 날 그것마저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옛날에 써 놓은 글을 모아 책을 두권 만들어 주었다. 시는 시 대로 묶고 수필은 수필대로 묶어 만들어준 글을 읽어보면 그때의 내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 좋았던 일, 힘들고 슬펐던 일들이 기억나지만 지나간 것 들이다. 그 글을 쓸 때 나는 나의 영혼을 다 넣어 썼다. 그것이 문학적인 가치는 별로 없겠지만 세상에 그 어느 것보다 나 자신을 잘 이야기한다. 잘 쓰고 멋지게 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진실과 혼이 들어있기에 더 소중한 것이다. 작가는 진솔함에 있다고 해도 기교가 중요하다. 아무리 혼을 넣은 작품이라도 기교가 없는 작품은 글이던 그림이던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 인가? 좋아서 쓰고 그리며 행복하게 살면 된다.


글을 쓰며 유명 작가가 되고 싶었고 그림을 그리며 유명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면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유명해져도 하루 세끼 먹고 나이가 들고 어느 날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좋아하던 것도 어느 날 추억이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유명인이 되어 이름을 남기고 죽은 사람이나 평범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간 사람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생전에 사람들이 실력을 알아주고 유명해진 사람도, 죽은 뒤에 가치를 평가받은 사람도 별 차이가 없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다르고 글도, 그림도 취향이 다르기에 잘 썼다, 잘 그렸다,라고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다. 누군가 남긴 글 한 줄이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뜻을 알 수 없는 추상화 한편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기준을 만들어 놓고 가치를 결정하기에 실망하기도 하고 희망에 부풀기도 한다.


진정한 행복은 이 순간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뜻대로 내 생각을 표현하며 내길을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름 있는 사람의 글이나 그림은 무조건 어떤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많다. 그래서 공인이 되면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유명한 사람도 없고 유명하지 않다고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부족한 점을 발견한다. 잘 쓰려고 해도 잘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로 생각하고 글 쓰기를 멈추게 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알고 노력하여야 하는데 지레 겁을 먹고 하던 일을 멈춘다면 세상에는 작가도, 화가도 없을 것이다. 유명해지기 위하여 열심히 글을 쓴 사람도 무명작가로 생을 마치는 경우가 있고, 쉽게 쓰는데도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


오랜 세월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유명해지기도 하고, 열심히 쓰고 그려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 무명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 그것은 실력과 운으로도 결정되지만 꾸준한 노력과 인내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해서 무언가를 하면 이미 유명해진 것이다. 20년을 넘게 무명작가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를 볼 때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음을 느낀다. 세월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갑자기 떴다가 물거품이 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는 이제 빛이 난다. 무엇을 해도 두렵지 않고 어설프지 않아 프로의 삶을 살아간다.


길을 가다 보면 고갯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길고 짧은 한평생을 살다 보면 안 되는 일이 되는 일보다 더 많다. 인간은 그냥 나이를 먹는 게 아니다. 살면서 겪은 일들은 역사이기에 누구든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나이가 들면 힘이 약해지고 정신이 없어지고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아 보이지만 사람들은 나름대로 삶을 멋지게 살아낸 유명인이다. 이름을 남기지 않으면 어떤가. 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명해진 것이다. 남들의 평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힘이 더 크다.


(사진:이종숙)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함께하는 오늘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