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또 외박을 했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오늘 또 잠이

외박을 했습니다


외박한 잠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눈을 꼭 감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는 잠이 괘씸해서
누가 이기나 버텨봤지요


어둠이 얼마만큼 깜깜한가
눈을 떠 봤더니
어둠에도 빛이 있었습니다
눈을 뜨고 천장을 보며
들어오지 않는 잠을
생각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났습니다


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쓰레기를 생각하고
가야 할 곳은 많은데
갈 수 없는 여행도 생각나고
할 일은 많은데
하지 않은 일이 걱정이고
남은 시간은 짧아져 가는데
무엇을 먼저 할지 모릅니다


잠이 나가서 안 들어오니
별별 생각이 자꾸 떠올라
걱정이 태산입니다


밤새 기다려도 오지 않고
외박을 하는 잠
이대로 가다가는
까만 밤이 떠나고
하얀 새벽이 올 텐데
오지 않는 무심한 잠 때문에
머리는 터질 듯합니다


나간 잠을 기다리며
눈을 살며시 감아 봅니다
기와집도 짓고
빌딩도 짓고
후회도 하고
화해도 하고
참회도 합니다


나간 잠이 돌아올 때까지
앞으로 살 계획도 하고
희망도 하고 기대도 하며
내일을 생각하는데
멀리서, 가까이서
잠이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잠은 나를 데리고
꿈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말간 해님은 창문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살며시 앉습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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