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내일이 기다려지는 오늘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힘없이 내리는 눈이 안쓰러워 보인다. 4월도 하순에 접어들어 거의 다 가고 있는데 봄이 왔다 가는 줄도 모르고 봄을 기다린다. 야속한 겨울은 무엇이 그리 미련이 많은지 갈 길을 가지 못한다. 어제는 영상 19도가 넘는 더운 날씨로 기가 막히게 좋았는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눈까지 내린다. 구름 끼고 바람 불며 눈발까지 내리니 괜히 음산해서 오늘은 꼼짝 하기도 싫다. 어제 맞은 백신으로 밤새 몸살 끼가 있어 잠을 설쳤더니 몸이 찌뿌둥하다. 특별히 할 일도 없어 창밖을 내다보며 눈 오는 것을 바라본다. 이제 새파랗게 싹이 돋아나고 있는 화단에는 하루가 다르게 여러 가지 싹이 땅을 덮는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어도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여러 가지 꽃이 필 것이다. 오래전 지인이 준 이름도 모르는 보라색 꽃은 어찌나 번식이 좋은지 해마다 화단을 예쁘게 덮어주어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특별히 손질이 필요 없고 물만 주면 여름 내내 피고 지며 뜰을 환하게 해 준다. 그 옆에 있는 노란색 꽃도 어찌나 예쁘게 피어 온 동네를 환하게 밝혀 주는지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물론 달맞이꽃은 아니지만 밤중에도 노랗게 피어 있는 모습은 너무나 신기하도록 예쁘다. 봄이 끝나 갈 무렵 화원 구석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작은 화분을 몇 개 사 가지고 왔는데 그게 효자노릇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풍성하게 꽃을 피우다 가을에 날씨가 추워지면 빨간색으로 변하여 예쁜 단풍잎까지 선을 보여준다. 겨울이 다가올 때 가위로 바짝 잘라 주면 눈밑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약속도 기약도 없이 잊지 않고 찾아주는 이름 모를 그 꽃이 올해도 기다려진다. 뒤뜰에 앵두나무는 꽃송이가 다닥다닥 붙어서 피어나려고 하는데 눈이 와서 어떨지 모르겠다.


해마다 이맘때 꽃샘추위가 꽃들을 힘들게 한다. 꽃이 피고 지며 세월이 오고 가고 또 다른 봄이 왔다. 오래전 산책을 하다 길 가에 서 있는 앵두나무에서 빨간 앵두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몇 알 가지고 와서 먹고 뱉은 씨가 어느 날 나무가 되어 자라는데 오며 가며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제 꽃샘추위가 끝나면 뒤뜰에 있는 딸기나무도 파랗게 싹이 날 것이다. 여름이 되면 빨갛게 익어 가는 딸기를 따서 잼도 만들고 주스도 만들어 먹는다. 딸기를 따먹고 앵두를 따먹는 것은 도시 생활에서 흔하지 않은데 그나마 아이들이 재미있게 따 먹는 것을 보면 좋다. 눈은 여전히 오기 싫지만 내리는 듯 천천히 땅에 곤두박질치며 내린다. 오기 싫으면 오지 말지 봄에 내리려고 저리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 이미 뜨거워진 땅에 닿기도 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질 눈인데 앉을자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방황한다.


텃밭에 조금씩 자라고 있는 파를 뜯으러 가는데 어찌나 바람이 차가운지 깜짝 놀랐다. 4 월인데 무슨 바람이 이리도 차가울까 싶어 하늘을 쳐다보니 아직도 내릴 눈이 많은 듯 구름으로 덮여 있다. 이렇게 봄은 가고 5월 마지막 주말이 되면 사람들은 텃밭에 씨를 뿌린다. 그때까지는 아무리 급해도 참아야 한다. 몇 년 전에 급한 마음에 모종을 심어놓았다가 갑자기 내린 서리로 비싼 모종이 다 얼어서 버린 것을 생각하면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5월이 지나면 6월과 7월 두 달 동안 봄과 여름이 자리를 차지한다. 꽃이 피고 채소가 자라고 8월이 되면 성장을 멈추고 가을을 준비한다. 해마다 여러 가지 밭농사로 신선한 채소를 먹는 것도 하나의 커다란 행복이다. 들깨와 고추 그리고 호박과 상추를 기르고 때때로 토마토를 기르는데 며칠 전에 친구가 상추씨앗과 들깨 씨앗을 주었는데 어서 빨리 날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작년에는 달팽이가 많아서 심어놓은 상추를 다 뜯어먹어 상추농사를 망쳤는데 올해는 어떨지 궁금하다. 오래전 8월에 눈이 많이 와서 야채들이 다 얼어 죽었던 적도 있으니 8월이면 가을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성급하게 가을이 오면 나름대로 아름다운 가을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어떤 해는 여름이 추워 채소가 하나도 안되던 해가 있었다. 그까짓 거 돈 주고 사다 먹어도 얼마 되지 않지만 씨를 뿌려 놓고 잘 자라지 않으면 왠지 속상하다. 봄이 오기 힘들듯이 계절이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이제 서서히 구름 사이로 해가 들락날락 얼굴을 내민다. 새들도 추워서 나뭇가지에 앉아 낮잠을 자는지 조용하다. 눈처럼 하얗던 토끼도 털갈이를 하여 잿빛이 되어 몸을 숨기고 나무속에 앉아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추운 날씨 핑계로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세월은 가는데 게으른 나는 오늘도 허송세월을 보낸다. 한번 가면 오지 않을 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후회와 미련만 남겠지만 오늘은 나도 맘껏 게으름을 피우며 망상에 젖어보고 싶다. 이제 이번 추위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봄이고 집안 청소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에너지를 잘 충전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도 안 다니는 쓸쓸한 길거리를 바라보며 혼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 세상에 날씨까지 음산하니 마음조차 가라앉는다. 아이들은 살기 바쁜지 소식도 없고 실로 심심한 하루가 간다.


따지고 보면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데 내일이 오면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내일은 어떤 날이 될지 모르지만 왠지 내일이 기다려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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