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뜰을 걸으며 나무와 대화하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한다.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눈빛으로 소통하고 바라보며 소통한다. 말이 아니더라도 소리를 들으며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자연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화에는 자신과의 대화, 타인과의 대화 그리고 자연과의 대화와 동물과의 대화도 있다. 엄마들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태아하고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배운다. 그렇게 함으로 세상에 태어났을 때 서로 낯설지 않아 얼마 되지 않은 만남도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익숙하다. 큰아들이 태어나 3일 만에 황달이 생겨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돌아오는데 대성통곡을 한 기억이 난다. 만난 지 겨우 3일밖에 안됐는데 무슨 정이 그렇게 많이 들어 울고불고했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였기에 잠깐의 이별도 싫었다. 그처럼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자연을 보며 이런저런 속마음을 전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좋다. 올해로 마흔일곱 살이 되는 우리 집 뜰에는 열네 개의 나무가 있는데 세월 따라 나도 나이가 들고 나무들도 늙어가고 있다. 32년 전에 이 집을 사 가지고 이사 왔을 때는 나무들이 아주 어려서 손을 뻗으면 나무 꼭대기까지 닿았는데 지금은 얼굴을 뒤로 젖혀도 나무 꼭대기가 잘 보이지 않게 크게 자랐다. 이사 온 뒤로 몇 년 동안은 앞뜰에 있던 전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남편이 서서 빙빙 돌려주었는데 어느 해부터는 사다리가 필요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장식을 할 수 없이 커버린 나무가 되었다. 물도 주지 않고 다듬어 주지도 않는데 혼자 멋지게 자란 나무를 보면 신통방통하다. 어제 눈이 왔는데 눈이 온 흔적은 어디를 봐도 찾을 수 없다.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쌓이지 않고 그냥 녹아버렸다. 그래도 아침 온도는 영하 5도 정도 되기 때문에 봄 날씨 치고는 상당히 추운 날씨다.
겨울 추위는 잘 견디는데 이상하게 봄의 꽃샘추위는 더 견딜 수 없어서 두꺼운 옷을 입고 밖에 나가니 나무들이 나를 기다리기나 한 듯 나를 쳐다본다. 사과나무도 전나무도 반가운지 바람이 불 때마다 손을 흔든다. 뒷문 옆에 서 있는 앵두나무도, 담에 서 있는 마가목 나무도 반갑다고 팔을 흔들어 댄다. 32 년째 매일 오가며 만나는 나무들이지만 이렇게 변함없는 모습으로 의젓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새삼 사랑스럽다. “그래 그래, 고맙다 나무들아." 우리가 사는 집을 그 오랜 세월 잘 지켜주고 감싸주어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나무 하나하나를 쓰다듬어주며 감사함을 전한다. 맛있는 사과를 해마다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사과나무 들, 은은한 냄새를 풍기는 연보라색의 라일락꽃, 여름 내내 뒤뜰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예쁜 빨간 장미꽃들 그들과 함께 한 세월이다.
(사진:이종숙)
봄이 되면서 해도 길어지고 넓은 뒤뜰에 나와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잔디도 파릇파릇하게 자라고 자꾸만 밖으로 나오라는 봄의 유혹에 슬쩍 넘어간다. 뜰을 걸으며 그들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들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 추억들이 생각이 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조그만 사과나무와 앵두나무 한 그루씩 사다가 심었는데 이제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아이들이 이 집을 사서 이사오던 날 이층으로 아래층으로 신나서 뛰어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벌써 아들 둘은 아빠가 되었다. 다섯 식구가 어울려 재미있게 살던 집이 이제는 아이들이 다 분가해 우리 둘만의 터전이 되었는데 작은집으로 가기는 아직 이르다. 때로는 우리 둘 사는데 너무 큰 듯 하지만 어쩌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 명절 때는 아이들이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어 좋다. 나이 들어가는 남편이 눈을 치거나 잔디를 깎을 때는 힘이 들지만 자식같이 듬직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몇 년 전 큰 전나무 하나가 비실비실 하더니 죽었다. 죽어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싫어 잘라버렸는데 어찌나 서운한지 한동안 맘이 힘들었다. 나무 있던 자리가 텅 비어 마치도 사랑하는 식구 하나가 밖에 나간 듯하여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다. 꽃 하나 나무 하나도 오랜 세월이 흐르니 식구가 되었던 것이다. 어제 온 눈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지만 아직 꽃샘추위로 나무들이 웅크리고 있다. 추운 겨울을 지난 나무들은 이까짓 추위야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수백 송이를 품고 있는 앵두나무가 하나둘 꽃이 되어 세상 구경을 나오고 사과나무는 까치가 먹지 않고 남겨둔 쭈글쭈글한 까치밥을 매달은 채 죽은척하고 시커멓게 서 있다. 게으름을 피우는 개나리나무도 보이지 않게 새싹이 나오고 소나무도 아기 솔방울을 키우고 있다. 머지않아 노란 송화가루를 날리며 살아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따스한 햇살은 걸어 다니는 내 등에 누워 나올 때처럼 춥지는 않다. 따스한 양지쪽에 민들레가 초록색 치마를 두르고 얼굴을 내밀고 앉아있다. 머지않아 불청객이 될 민들레지만 아직은 예쁘다. 장미는 언제 피려는지 가시만 잔뜩 달고 서 있다. 작년 봄에 벌레가 많아 자라지 못하고 비실비실 했는데 늦여름이 되더니 벌레가 없어져서 늦게까지 꽃을 피었다. 말 못 하는 식물이라 벌레 먹은 이파리를 볼 때마다 속이 상했는데 어떻게 잘 이겨냈다. 한 뼘쯤 자란 파란 부추를 보니 부추김치가 먹고 싶다. 내일 모래 사이로 잘라서 맛있게 무쳐 먹어야겠다.
앞으로 겨울이 올 때까지 매일 나와서 나무와 사랑을 속삭일 것이다. 예쁘다고 말해주고, 수고했다고 칭찬하고, 아프면 같이 힘들어하며 보듬어주며 소통할 나무들이 있어 행복하다. 오랜만에 나무들과 대화를 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그래, 사랑하는 나무들아! 올해도 잘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