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감사로... 함께하는 지금이 너무 좋다

by Chong Sook Lee
앵두꽃이 예쁘게 피었다.(사진:이종숙)


마흔세 번째 맞는 결혼기념일이다.

43년 전 4월 29일 오늘 새색시 곱게 단장하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혼배성사로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 세월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지만 아이들을 보고 손주들을 보면 보람 있고 자랑스럽다. 온다는 말도 없이 온 4월이 간다는 말도 없이 간다. 4월을 기다린 것처럼 5월을 기다린다. 가는 세월은 무심하고 오는 세월은 궁금하다. 하루하루는 지루하고 보내고 나면 화살같이 빠르다. 어느새 이 많은 세월이 흘러갔는지 어렴풋이 생각이 날뿐 희미한 기억밖에 없다. 태어나고 죽고, 만나고 헤어지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아가는 인생살이는 계절처럼 오고 간다. 오지 않을 듯 가지 않을 듯 어느 날 오고 간다. 5월의 신부를 원했는데 며칠을 못 참고 4월의 신부가 되어 결혼한 지 43년이다. 유난히도 맑았던 그날의 모든 것이 눈에 보이듯 선하다. 함진아비들이 늦게까지 먹고 놀다 가서 잠을 설쳐서 조금 피곤했지만 아침 일찍 신부화장을 하기 위해 미장원에 갔다.


마사지를 하고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서울에서 한 시간 떨어져 있는 결혼 식장으로 향하는데 차가 엄청 막혔다. 부모님과 친구 하나와 동행했는데 결혼식 시간은 다가오고 차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지 못하니 답답하다.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데 전화를 할 수 없던 시대였다. 화창한 날씨가 화가 날정도로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유난히 좋았던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는지 차는 제자리걸음만 한다. 간신히 도착한 시간은 결혼식 시간보다 30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부모 형제 친척들과 친구들이 기다리는 성당으로 서둘러 입장하고 결혼식을 하는데 성당 결혼식은 그때만 해도 엄청 길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축하객들은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했고 길고 긴 미사를 견뎌야 했다. 안 그래도 시장하실 텐데 신부도 늦게 왔고 결혼식도 늦게 시작하고 길고 힘든 결혼식을 선물로 드렸다.


가족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성당 앞에 있는 중국집에서 피로연을 했다. 엄마가 만들어 오신 여러 가지 음식과 중국 음식으로 대접을 하며 일가 친척분들 에게 일일이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결혼식에 오기 힘들었는데 결혼식이 길었어도 잘 지나갔다. 친정 식구들을 뒤로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시댁으로 가서 폐백을 하며 어른들에게 일일이 절을 했다. 아침도 못 먹고 시작한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국수 한 그릇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얼떨결에 신랑과 함께 비행장을 향해 갔던 기억이 난다. 부산 해운대를 향해 가는데 정신없던 하루가 영화처럼 지나간다. 몇 시간 동안 큰일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온 것이 꿈만 갔다. 2박 3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신부가 늦게 와서 도망간 것 아니냐고 놀림받았던 이야기는 아직도 남편이 한다.


그때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앞 뒤로 차가 막히고 걸어갈 수도 없고 뛰어갈 수도 없었다. 지하철로 간 친구들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자가용 차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차라리 친구들과 지하철을 타고 갔으면 훨씬 빠르고 멋진 결혼식 추억을 만들었을 텐데 신부화장 지워진다고 차를 타고 애를 태웠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히 하객들이 기다려 주었지만 더 늦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이 흘러 마흔세 번째의 결혼기념일을 맞는다. 해마다 오늘이 되면 그날을 기억하고 나름대로 조촐하게 외식하며 기념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조용하게 보낸다. 아이들도 축하한다는 메시지로 인사를 대신하고 아무도 만날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다. 지난 세월을 하나 둘 생각해 본다. 결혼 1주년 기념일에 쇼핑을 하다가 우연히 들은 'Brown girl in the ring'이라는 노래가 너무 좋아 전축 판을 사 가지고 온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로 돌아가 그곳에 있는 것 같다.


이민 온 지 8년째 되던 해에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88 올림픽으로 한국이 들떠 있던 모습이 지금도 보이는 듯하다. 7월 한 달 동안 머물렀는데 날씨가 어찌나 더운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도 더웠다.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이라서 좋았지만 더웠던 생각을 하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결혼 10주년을 보내고 바쁘게 살다 보니 25주년이 되어 남편과 나는 커플 링을 하나씩 맞추고 가족사진을 찍고 양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 후 결혼 30주년이 되기 몇 달 전 남편이 심하게 앓았다. 병원에 들락거리고 생각한 것은 이대로 살다가는 여행 한번 못 가고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틈틈이 고국에 계신 부모 형제를 만나고 오긴 했지만 한국에 가도 여행 한번 하지 못한 채 돌아오곤 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과 30주년 기념으로 한국행을 제안해 3주 동안 제주도까지 여행을 했다.


사업을 하면서 문을 닫고 여행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그때 갔다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뒤로 10년이란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정년퇴직을 하고 40주년 결혼 기념으로 쿠바 여행을 다녀왔다. 퇴직을 하면 캐나다 전국 여행을 하기로 남편과 약속했는데 작년 초에 멕시코 여행을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여행길을 막아 꼼짝 못 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다니다 보니 여행을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도 좋은 곳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가본 곳에 가는 것도 좋고, 모르는 곳에 가는 것도 좋지만 매일 가는 산책길도 좋다. 어제 가본 곳에 가도 못 본 것이 많고 매일이 새롭다. 비가 오고 구름이 끼고 바람 부는 날이 있고 햇살이 곱게 내려앉는 날이 있다. 같은 날인 것 같지만 새로운 날들이다. 만나지 못한 것들을 만나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둘이 만나 4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니 열두명의 대가족을 이루었다. 새색시가 할머니가 되었고 새신랑이 할아버지가 되는 세월이 흘렀어도 결혼하던 그날처럼 남편과 나는 서로 사랑하며 재미있게 산다.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에 더 행복할 수 있고, 있는 것에 만족하기에 서로가 소중하다. 욕심이 넘쳐나고 꿈을 좇던 젊은 날은 세월 따라 흘러가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서로가 되었다.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좋은 일, 힘든 일을 함께 이겨낸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워한다. 많은 것, 큰 것을 바라기보다 지금 내게 있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고 산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비싼 보석이나 그 어떤 멋진 여행이나 물질적인 풍요보다 함께할 수 있는 남편이 곁에 있어 행복하다.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지금이 너무 좋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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