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삶이다

by Chong Sook Lee
오리떼가 봄이 온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온다(사진:이종숙)


하늘이 정말 파랗다. 하늘 저편에서 새들의 소리가 들려 가만히 보니 수없이 많은 기러기떼가 하늘을 가르며 오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따뜻한 곳을 찾아오는 기러기떼들이 줄을 지어 온다. 기러기떼가 오면 이제 이곳도 봄이다. 작년 가을에 이곳을 떠나갈 때 잘 가라고 했는데 어딘가에서 겨울을 나고 다시 오는 기러기들이 반갑다. 여름 동안 공기 좋고 물 맑은 이곳에서 잘 살다 가기를 바란다. 나무들이 연두색으로 새잎을 내놓으며 자랑을 한다. 해마다 보는데도 새로 나오는 나뭇잎은 늘 새롭다. 보이지 않던 나뭇잎들이 여기저기 보이니 좋다. 땅에도 파란 것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나오는 민들레가 파란 치마를 두르고 여기저기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노란 꽃을 피우고 앉아 있다. 샛노란 색이 참 예쁘서 사진을 찍으며 머지않아 미움받고 구박받을 것을 생각하니 가련한 생각이 든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시에서 관리를 하지 못해 민들레가 너무 많아졌다. 사람들은 약을 뿌려 죽이고 칼로 후벼 파서 죽인다. 그래도 민들레는 죽지 않아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풀이다. 하나둘 피어 있으면 예쁘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냥 놔두면 잔디를 덮어 보기 흉하다. 노란 꽃을 피었다가 지면 홀씨가 되어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번식을 하여 사람들은 민들레와 싸움을 한다. 손주들이 뛰어노는 뜰에 약을 뿌릴 수 없어 우리는 하나하나 뽑아낸다. 어린 민들레는 뿌리가 깊이 자라지 않아 뽑기도 좋고 비가 온 뒤에 뽑아주면 쉽게 뽑힌다. 뜰이 넓다 보니 한꺼번에 뽑기 힘들어 심심풀이로 조금씩 하면 민들레 없는 뜰에서 생활할 수 있다. 이맘때 나오는 민들레는 들에서 나는 나물과 비슷하고 연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뽑아서 깨끗이 씻어서 살짝 삶아 초고추장에 무쳐먹어도 맛있다.


차고 뒤편에 있는 달래도 한 뼘 정도 자라서 봄을 맞고 있는데 며칠 내로 밥상에 올라올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봄이 오면 좋은데 그토록 오는 길이 험해서 이제야 봄을 만나는데 아직도 바람은 차다. 뒤뜰에 앵두나무는 연분홍색 꽃을 한 아름 안고서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지난겨울이 별로 춥지 않아서 인지 올해는 꽃이 많다. 벌들이 와야 하는데 날씨가 쌀쌀하다 보니 벌들이 오지 않는다. 먼저 핀 꽃들은 벌써 시들고 아직 피지 못한 꽃들은 앞을 다투며 피는데 가지가 휘어질 듯 만발했다. 며칠 피었다가 지는 것을 아는지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꽃이 피지 않았을 때는 꽃이 필까 하며 기다렸는데 눈곱만 한 봉우리들을 달고 있었다. 언제 꽃이 필까 했더니 벌써 피었다 지는 꽃도 있다. 꽃이 만발하니까 벌을 기다리고 벌이 오지 않아 걱정을 한다. 걱정도 팔자라더니 별것 다 걱정하고 산다.


몇 년 전에 앵두나무에 벌들이 벌집을 지었다. 앵두나무가 부엌으로 들어오는 문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벌들이 날아다니다 집으로 들어와 몇 번을 놀랐다. 아무래도 벌들이 너무 많은 게 이상해서 나무를 자세히 보니 주먹만 한 벌집이 보였다. 벌집을 떼어버리려고 잘못 건드렸다가 한바탕 소동이 났다. 집을 부수려는 침입자인 남편에게 벌들이 달려오는데 남편이 웃통을 벗어 휘두르며 도망가는데도 기를 쓰고 달려오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집이 허물어져 다시 돌아오지 못한 벌들이 한동안 앵두나무 주위에서 집을 찾던 모습이 생각난다. 하찮은 미물인 벌도 집을 잃은 슬픔에 방황하고, 살고 있는 집을 소중히 여기던 모습에 한동안 벌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벌이 와서 할 일을 할 텐데 괜한 걱정을 하며 서성인다.


(사진:이종숙)


개나리도 꽃 몇 개 달고 할 일 다 했다며 이파리가 파랗게 나오기 시작한다. 지나는 길에 본 어느 집엔 개나리가 눈부시게 노랗게 피어 있었는데 우리 개나리는 무슨 일인지 꽃 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새 줄기들이 옆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을 보면 내년에는 많은 개나리꽃을 선사할 것 같다. 자연이 하는 일을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칭찬이나 해주면서 눈치를 봐야겠다. 원추리는 무릎까지 자라 바람 따라 흔들리고 봄을 만끽하며 남쪽 땅을 차지하고 머지않아 예쁜 주황색 꽃을 피울 것이다. 원추리와 땅을 나누며 살고 있는 장미는 이제 새싹이 돋아나고 있고 튤립은 꽃 봉오리가 하나둘 열리기 시작한다. 몇 년 전에 많이 심었는데 해마다 날씨가 추워서 얼어 죽고 몇 개 남지 않았지만 한번 꽃을 피면 정말 예쁘게 핀다.


봄이 오네 안 오네 해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라일락도 이파리가 생기고 사과꽃도 손톱만큼 피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보이지 않게 활짝 피고 사과를 매달고 서 있을 것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가고 있다. 남편이 땅을 뒤집어 잘 골라주면 채소 모종을 사다가 심고 자라는 것을 보며 여름을 보내면 된다. 모종을 아직 팔지도 않는데 나는 앞서 나간다. 해마다 마지막으로 폭설이 오는 5월 셋째 주말이 지나야 안심하고 모종을 땅에 심는다. 앞으로 3주를 더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부터 부산을 떤다. 사실 농사는 남편이 짓고 나는 따 먹기만 하는데도 부지런은 먼저 떨고 있다. 기다림이 없다면 어찌 살까 생각한다. 기다리고 생각하고 계획하며 살다 보니 나이만 먹었는데 아직도 기다리는 것을 보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다.


봄이 오면 여름을 기다리고 여름이 되면 가을을 생각하고 가을에는 겨울을 걱정하며 봄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고 짝을 맞기를 기다리고 손주들을 기다렸더니 이렇게 세월이 갔다. 지금은 코로나가 없어지기를 바라고 살지만 없어지면 또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 것이다. 인생은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삶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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