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아침이다.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집에 있을까 하다 잠깐이라도 걸어보려고 나갔다. 햇볕은 없지만 바람이 없어 걷기가 좋다. 비가 오지 않아 가물어서 오솔길을 걸을 때마다 먼지가 푸석거렸는데 비가 오려고 공기가 습해서 인지 오늘은 잠자코 있다. 발걸음도 가볍게 앞으로 향해 열심히 걷는다. 어느새 숲은 완연한 봄이다. 봄이 오지 않는다고, 언제 봄이 오느냐고 투정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여기저기 파란 이파리들이 올라와 있고 땅에도 여러 가지 새싹들이 자리를 잡고 자라나고 있다.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민들레는 여기저기 나와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들풀들이 만세를 부르며 존재를 알리느라 바쁘다. 죽은척하던 나무들도 뾰족한 잎들을 내밀며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그야말로 봄 세상이다. 그저 보기만 해도 설레고 신기하다. 해마다 보는 봄인데 언제나 새롭다.
계곡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물이 맑아서 자갈이 훤히 보여 발을 담그고 앉아서 하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걸어간다. 계곡이 길게 있어 여기저기 오리들이 앉아서 논다. 사람들이 오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쓴다. 아무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아는지 먹을 거 먹고 헤엄을 치며 평화롭게 산다. 산책길이 다리 공사로 막혀있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오솔길로 걸으니 숲 한가운데에 있어 더 좋다. 나무들 사이를 따라 걸으며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처럼 어둡다. 비가 오기 전에 갈까 하다가 온 김에 더 걸어본다. 길가에 노란 민들레가 인사를 한다. 지금은 홀로 피어 외롭겠지만 며칠 사이로 많은 친구들이 피어날 것이다. 숲 속에 피어있는 민들레는 예쁘다고 사랑을 받는데 잔디밭에 피어있는 민들레는 잔디를 망치기에 다들 싫어한다. 구박덩어리지만 오랜만에 숲에서 만나니 반갑다.
숲에서 자라는 민들레는 아무도 밟지 않고 꺽지 않아 키가 크게 자라서 하늘거리면 어느 꽃 못지않게 예쁘다. 약간 쌀쌀한 듯했는데 걷다 보니 벌써 덥기 시작한다. 모자를 벗고 땀을 식히면 금방 온도가 내려간다. 3차 재확산을 우려한 외출금지로 사람들이 집안에서 꼼짝을 안 하는지 숲은 아무도 없다. 어쩌다 만나는 사람끼리도 거리를 두고 지나가는 현실이다. 언제나 웃으며 안부를 묻고 이야기하며 지나치는 이곳 풍습인데 그것마저 요즘엔 잘 못한다. 그래도 이곳에 자주 오다 보니 산책하는 사람들과 친해져서 멀리 보이면 손을 흔들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어쩌다 지구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서 그런지 이제는 못하게 하는 게 너무 많아졌다. 코로나로 강화된 방역지침이 시작되었다. 장례식도 10명 참석하고 외부 활동도 5명 이상은 안된다. 운동도 식당도 문을 닫고 배달만 되고 아이들도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고 어른들도 재택근무로 돌렸다.그 외의 상세한 내용이 있지만 가능한 집에 있어 달라도 사정을 한다.
주마다 통제를 하고 이유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돌려보내거나 벌금을 먹인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갈수록 태산이다. 작년 이맘때처럼 다시 강화된 방역에 사람들은 한숨만 쉰다. 코로나로 세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자연은 조금씩 깨끗해지는 것 같다. 공짜였던 산소가 많은 돈을 들여도 살 수 없어 사람들이 죽어간다. 아직도 계급사회인 인도에서 코로나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엄마를 위해 산소를 사 가지고 가던 낮은 계급의 청년이 산소통을 강제로 빼앗겨 통곡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경찰은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결국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들이 애통하는 사연에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며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 세상은 지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래서 죽으면 천국 가기를 갈망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세상이 살기 좋다면 굳이 천국 가기를 원하지 않을 텐데 사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
무섭게 몰려오던 구름은 어디로 갔는지 하늘은 조금씩 밝아진다. 이대로 비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일찍 가야겠다는 생각을 바꾸고 다른 길로 접어들어 여기저기 구경하며 걷는다. 다리를 공사한다고 이곳저곳 막아놓았도 사람들은 길을 만들어 걸어 다닌다. 지난번에 없던 새로운 오솔길을 따라 걸어본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은 의외로 잘 만들어져 있다. 위험한 곳에 나무를 막아놓고 걸어가는 길도 넓게 깎아놓아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본다. 숲이 우거진 여름엔 모기가 많아 들어오기 힘들어도 낙엽진 가을엔 낭만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같이 어우러져 사는 것임을 느끼며 걷다 보니 지난번에 아이들이 지어놓은 나무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이 건드리지 말라고 써 놓았던 집인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열심히 나무로 집을 지으며 우정을 쌓던 집이 허물어져 자취도 없어진 것을 보니 나까지 서운하다. 지난번 심하게 불은 바람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햇살이 나무 사이로 은은하게 들어온다. 구름 사이로 조금씩 얼굴을 내미는 햇살로 더워진다. 돌고 돌아서 오는 길이 험해서 다리가 아프지만 계곡을 끼고 걸어가는 오솔길은 언제나 정겹다. 이제 조금 있으면 벌들이 나무에 집을 짓고 여기저기에서 꿀을 모아 올 것이다.
계절은 자연에 순종하며 올 때가 되면 오고 갈 때가 되면 간다. 계절처럼 우리도 태어나 살다가 후손에게 맡기고 어딘가로 사라지리라. 생겨나고 없어지고 잊히며 새로운 세상이 된다. 영원히 기억하는 것도 없고 영원히 남는 것도 없이 물 따라 바람 따라 어디론가 간다.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공기 중에 스러지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왔다간 흔적조차 없어진다. 삶은 자연이 되고 자연은 다시 삶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