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불어대던 바람이 피곤한지 가만히 있다. 바람이 사라진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다. 나뭇잎도 움직이지 않고 꽃들도 재미가 없는지 잘 시간도 아닌데 끄덕끄덕 졸고 있다. 알 수 없는 내일이라고 실망하지 말자.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오늘을 산다. 알고 나면 별거 아닌 인생살이 알지 못하기에 알고 싶고 무언가를 찾는다. 알 수 있는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알 수 없어도 그냥 그러려니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자꾸 따지고 밝히려 들지 않아도 어느 날 알게 되는 사실이다. 나무도 그냥 세상에 나왔으니 자라고 꽃도 필 때가 되었으니 피고 질 때가 오면 진다. 땅에 떨어지고 싶지 않아도 떨어져야 하고 떨어질 때 떨어지지 못함도 불행이다. 가야 하는데 갈 수 없는 것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것도 다 슬프다. 며칠 전 학생들 몇 명이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던 사람을 살려낸 뉴스를 보았다.
얼마나 힘들면 자살을 하려고 했을까? 사정없는 사람이 없고 핑계 없는 죽음이 없다. 죽으려던 사람도 축복받고 세상에 태어났고 살리려던 사람들도 축복받고 태어났다. 세월이 흐르고 살다 보니 누구는 죽으려고 기를 쓰고 누구는 살리려고 기를 쓴다. 다행히 죽으려던 사람을 살려내 한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구했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오랫동안 아프다 보면 간호하는 사람도 지치고 아픈 사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자살률이 한국이 세계 1위라는 사실에는 놀라게 한다. 더 이상 사람같이 살 수 없을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안락사를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가 점차 늘고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어 간다. 자살이 힘들은 사람의 죽음을 의사들이 조력하여 존엄을 지키며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한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있다. 우울증 환자라고 모두 자살이나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빈도가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막연히 지나가는 생각일 뿐 또 살아가게 되는데 그중에는 치밀하게 계획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경제도 나빠지고 실업자도 많아지고 희망은 점점 없어져가는 현실은 돌연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현대에 안락사는 또 다른 도피의 도구가 되어간다. 며칠 전 뉴스에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늘어가는데 허용 조건이 성립되지 않아 기다리는 사람은 지쳐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몇 사람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며 너무나 고통스러워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괴로움을 눈물로 호소하는 것을 보니 무엇이 현명한 길 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이종숙)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한 사람의 목숨을 끊도록 도와주는 의사 입장도 어려운 일이다. 우연히 길을 걷던 학생들은 죽으려던 사람의 처절한 사정을 알바 없이 그저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참으로 고맙고 기특한 일이다. 그 순간 어떤 사정으로 자살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였는지 모르지만 살 운명이었다. 아주 오래전 친한 친구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는 것인데 어린 나로서는 그저 그녀와 동네를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치밀한 계획이 있음을 알았을 때는 밤이 내려앉아 아름다운 불빛이 찬란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산꼭대기 달동네에서 살던 그녀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며 심한 갈등으로 시달리고 삶을 체념한 상태였다.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며 오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떠나는 길이라고 했다.
아무런 말없이 걸어가며 내려다본 야경은 그야말로 지상 천국의 모습이었다. "참 예쁘다. 까만 밤도 불로 비추니 정말 멋지구나. 절망 속에 빠져 있지만 마음속에 희망의 빛을 하나둘 켜보면 멋진 날이 올 거야".라고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그 뒤로 마음을 고쳐먹으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옛날이야기를 하며 그때 내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했다. 힘들 때 같이 있어주고 여러 말보다 한마디의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그때는 몰랐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그녀와 함께 있으며 그녀의 마음 깊이 들어가 그녀와 한 마음이 되어 간절하게 한 말이 그녀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소식조차 알 수 없는 그녀이지만 힘들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생각이 난다. 죽음은 끝이 아닌데 끝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어쩌면 죽음으로 문제는 더 커진다.
죽을힘으로 살면 된다고 하는데 오죽했으면 죽을 생각을 할까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해마다 안락사가 허용된 나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가고 차례를 기다리며 생을 마감한다. 무엇이 해답인지 모르지만 모든 것은 하늘이 알아서 한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현실에 답은 없다. 다만 죽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 된다.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고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죽는다고 끝이 아니고 산다고 시작도 아니다. 살아 있기에 살고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어느 날 찾아오는 마지막 날을 위해 살다 보면 죽음도 만나게 된다. 쉽게 쉽게 생각하면 평화를 만나고 하는 일도 잘되고 원하는 일도 잘 풀린다.
삶과 죽음은 강하나를 가운데 놓고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급할 것도 없고 안달할 것도 없이 찾아오는 날 건너면 된다. 죽음을 만나려고 뛰어갈 필요도 없고 만나지 않으려고 피할 수도 없다. 살기 더 좋은 세상에 알 수 없는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질 수 없는 것이 많고 버릴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함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