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나무에도 지붕에도 동구밖에도 골고루 나부끼네 아름다워라'
어렸을 때 눈 오는 날 목청 높여 부르던 노래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하루 종일 내리더니 드디어 해마다 5월에 내리는 눈이 내린다.처음에는 비처럼 내리더니 진눈깨비처럼 오다가 눈으로 변해서 그러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주먹만 한 눈송이가 되어 내린다. 앵두나무는 꽃이 다져서 이파리가 파랗게 나왔고 사과나무는 꽃이 만발했는데 눈이라니 정말 너무 한다. 하늘이여 왜 이러시나요? 하늘은 말이 없다. 그저 구름을 뒤집어쓴 채 인상만 쓰고 있다. 그 예쁘던 꽃들 위에 하얀 눈송이가 하얗게 쌓여가고 눈발이 점점 굵어지는 것을 보니 한심하다. 올해는 봄이 조금 일찍 와서 꽃도 피고 잔디도 파래서 보기 좋다 했더니 난데없이 온 눈으로 다 덮였다. 세상은 다시 하얀 이불을 덮고 겨울이 되었다. 지붕도 잔디도 하얗고 꽃과 나무도 눈의 무게 때문에 축 늘어져 초토화가 되었다.
밤에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니 다 얼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참 안쓰럽다. 안 그래도 지난 4월에 온 눈 때문에 튤립이 잘 자라지도 못한 채 지더니 나머지 꽃마저 얼어 죽게 되었지만 하얀 눈 꽃송이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온 동네를 덮어서 아름답다. 다시 겨울이 와서 화단에 피어있는 꽃들은 추워서 웅크리고 누워 버리고 순식간에 봄에서 여름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이 되었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는다. 멀쩡한 5월에 내리는 눈에 놀래서 찍고 신기해서 찍는다. 어디서 이 많은 눈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난겨울에 눈이 별로 오지 않아 좋았는데 그때 못 내린 눈을 마지막 선물로 주고 가려나 보다. 앞이 보이지 않게 쏟아지는 눈이 지붕에 쌓이고 피크닉 테이블에 쌓인다. 나무 아래에 놓여있는 그네에도 쌓이고 텃밭에도 하얗게 쌓인다.
어느 곳 하나도 놓치지 않고 쌓이는 눈이 얄밉지만 비 대신에 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가물어서 비가 필요한 이때에 눈이 와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기로 했다. 5월에 내리는 눈이라 금방 녹을 것이고 나무도 꽃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인생살이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살아가야 하듯이 자연을 원망할 수 없다. 눈이 오는 것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까 눈 구경이나 실컷 하자. 얼마 전 강원도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힘든 제설작업을 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길에 내리는 눈은 차들이 다니면서 쌓이지 못하고 지붕이나 뜰에 쌓인 눈은 아침이 되면 서서히 녹을 것이다. 눈 맞은 나무들은 아침이 되면 씩씩하게 툭툭 털어 버릴 것이고 땅속에 있는 채소들도 목마른 김에 쉬었다 나올 것이다. 뜬금없이 오는 봄눈 때문이 아니라 봄눈 덕분에 세상이 깨끗해졌다고 생각하니 고맙기까지 하다.
(사진:이종숙)
어쩌면 이번에 온 눈으로 이곳의 있는 모든 바이러스가 다 얼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고맙다. 가로등에 눈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오늘이 아니면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한다. 사선을 그리며 땅에 떨어지는 모습이 새삼스레 눈에 보인다. 봄이라서 눈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고 겨울이라고 비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늘에서 하는 일은 땅에 사는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그저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하며 살아야지 토를 달면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 비가 오면 시원해서 좋고 물값 덜 나가서 좋고 눈이 오면 세상에 눈꽃이 펴서 아름답게 보여 좋다고 생각하며 살자. 불행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길이라 생각하면 그리 슬프지 않고 고통도 기쁨을 가져다주는 도구라 생각하면 반갑다. 삶이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헌신이 있어 세상은 돌아간다.
원하는 것은 얻기 어렵고 가야 할 길은 멀다. 보이는 것은 아름다우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도 있다. 친절한 말 한마디에 세상이 달라 보이고 무언의 침묵은 세상을 움직인다. 싸움이 멈추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죽어가고 자신의 부와 평안을 만들기에 바쁘다. 눈은 그저 눈 일 뿐인데 겨울에 오는 눈은 당연하고 봄에 오면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 눈이 와서 석 달 열흘을 머물다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예쁘게 봐주자. 산불이 많은 요즘에 이렇게 멋진 눈이 와서 산불을 미리 방지하게 해 주니 얼마나 좋은가.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펑펑 쏟아지는 주먹만 한 눈송이는 어린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간다.
나는 아이가 되어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받아먹는다. 어릴 적에 하얀 눈이 맛있어 보여 많이도 먹었다. 장독 위에 쌓여있는 깨끗한 눈을 한주먹 맛있게 먹으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쳐다보던 시절이 생각난다. 흩날리며 내리는 눈을 따라 강아지와 마당에서 맴맴을 돌며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동네로 퍼지던 날이 그립다. 5월에 오는 하얀 눈을 보며 봄과 겨울 안에서 지나가는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