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힘은 위대하고 끈질기다. 영상 24도까지 올라갔던 온도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며 눈까지 왔는데도 땅을 뚫고 나오는 생명은 건재하다. 얼어 죽었으려니 생각하며 텃밭을 보니 새파란 싹들이 '나 여기 있어' 하며 인사를 한다. 기특하고 예쁘다. 앞으로 다가올 많은 시련도 지금처럼 잘 이겨 나가길 바란다. 넘어졌던 꽃들도 기를 쓰고 하나 둘 일어나고 눈 속에 파묻혔던 잔디들도 예쁜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겨울이 마지막 인사를 푸짐하게 하고 떠났다. 난데없이 함박눈을 뿌리며 온 세상을 다 하얗게 덮더니 간다는 말도 없이 가버렸다. 나무들은 가지가 휘어지고 꽃들은 다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하늘만 쳐다본다. 가려면 그냥 가지 왜 이렇게 심술을 부리고 가는지 모르겠다.
머지않아 또 만날 텐데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은지 알 수 없다. 남이 잘되는 것이 그리도 보기 싫은지 잘 자라고 있는 꽃들을 짓밟아 놓고 떠날게 뭐람. 더 많이 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눈을 맞은 꽃들이 떨어지지 않고 잘 버티고 나무들은 눈을 다 털어내고 씩씩하게 서 있다. 오히려 더 파래졌다.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데 나만 안쓰러워서 발을 동동 구른 것 같다. 더 추운 겨울에도 살아남은 생명들인데 힘 빠진 겨울이 가기 싫어 뿌리고 간 김 빠진 눈이 뭐 그리 대수냐며 웃고 있다. 눈이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햇빛을 이길 수 없다. 햇볕에게 사랑받으며 예쁘게 자라나는 꽃들이 시기 나서 되돌아와서 뿌려보지만 몇 시간 더 버티지 못하고 녹아서 물이 되어 버리는 눈이다.
가야 할 때 가야지 자꾸 미련을 두면 안 되는데 철없는 겨울은 가고 싶지 않다. 다음을 기약하고 떠나야 하는데 가기 싫어한다. 이제 더 이상은 안된다. 봄에게, 여름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만나면 이쁘다고 반갑다고 한다. 쏟아 낼 눈이 더 있는지 하늘은 아직도 어둡고 구름이 꽉 차 있지만 세상은 다시 봄으로 돌아와 새가 날아다니고 나비는 꽃을 찾고 벌은 꿀을 모은다. 아직은 갈 때가 아니라며 쓰러진 봄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자연은 그리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언행에 상처를 받지만 자연은 스스로 살아갈 길을 만든다. 오늘 같은 날은 산책을 멀리 갈게 아니고 가까운 동네를 도는 것도 좋다. 언제 눈이 더 올지 몰라서 겨울 재킷을 입고 걸어본다.
어제 온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운동장에서 찬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리고 앞으로 걸어간다. 나뭇잎들은 바람 따라 춤을 추고 도로는 눈이 온 흔적이 하나도 없이 말랐다. 지나가는 차 소리가 공해가 되어 듣기 싫다. 숲 속은 자연이 아무리 떠들어도 시끄럽지 않은데 도시의 소음은 시끄러워 빨리 벗어나고 싶어 동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동네가 조용하다. 어제 내린 눈으로 겨울이 다시 온 듯 을씨년스럽지만 봄은 다시 온다. 5월의 아름다움을 안고 다시 찾아올 때 만나면 된다. 걸어가는데 싸라기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하며 얼굴을 때리며 쏟아진다. 아직 내려오지 못한 눈들이 있나 보다. 하늘은 다시 어두워지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와서 집을 향해 바쁘게 걸어간다.
인간은 어쩌면 변덕스러운 날씨 덕분에 매일매일을 사는 것 같다. 오늘은 이렇게 보내고 내일은 또 다른 날씨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매일이 같지 않아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지루하지 않고 매일이 새롭고 설렌다. 봄이라고 봄 날씨만 계속된다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기에 이런저런 날씨로 우리를 찾아오는 것 같다. 집 앞에 있는 소나무는 어느새 눈을 다 털어내고 서 있다. 까치 한쌍이 지붕을 오르내리며 놀고 있고 소나무 앞에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또 간다. 세상은 각자 해야 할 일을 하며 돌고 돈다. 자연이 여름에 눈을 뿌리고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못 알아듣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주며 사랑하는데 인간은 과연 자연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 인간의 평안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물건을 만들어 버리며 쓰레기를 먹인다. 그 쓰레기를 먹고 살아가는 자연은 참다못해 열이 나서 빙하를 녹인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전염병을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은 자연이 다 알아서 할 거라며 무시하며 자꾸만 괴롭힌다. 계절이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자꾸만 인간들이 방해를 한다. 끊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 속에 이어져 있는 자연과 인간이 협조하지 않으면 파괴되는 자연을 영원히 살리지 못한 채 지구는 멸망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살길을 찾아가는 자연이라도 더 이상 지치지 않게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아픔을 덜어줘야 서로가 산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속삭인다.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통과 괴로움을 날씨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이상기온이라고 하며 그러려니 하며 산다. 이유 없이 봄에 눈이 오고 여름에 우박이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이 빨리 오고 절기가 바뀌며 토네이도와 지진이 발생하는 지구에 자연은 사랑을 속삭인다. 언젠가 그들의 말을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