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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알고... 때를 따라가는 삶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무궁한 세상이다. 언제 시작됐는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고 시작은 있었지만 끝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고 산다. 상상도 못 하던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지 모른다.


어릴 때 만화를 즐겨 읽었다. 만화 속에는 무궁무진 한 세상이 펼쳐져 때로는 아름답고 신비롭고 두렵지만 때로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때만 해도 세상은 참으로 단순하였다. 의식주가 중요했고 오늘을 살기 위해 미래나 꿈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굶지 않고 먹고살면 되고 헐벗지 않고 살면 되었다. 태어나서 하루하루 살다가 명이 다 되어 죽으면 죽나 보다 했지 연명 치료는 상상도 못 했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준비한다. 그 옛날에는 먹을 것도 없었지만 자연에 순응했다.


옛날에는 곡기를 끊으면 떠난다고 생각했다. 때가 온 것을 알고 강제로 먹일 생각도 못하고 억지로 먹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며칠을 굶으시며 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하셨다. 지쳐가며 까불어지는 모습을 보는 자손들은 안타깝지만 떠나는 할머니의 완강한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가야 할 때를 하는 인간의 지혜로운 모습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을 위해 배려하며 죽음을 조용히 맞이하며 준비를 하고 떠내 보냈는데 연명치료가 시작되면서 아무것도 안 먹고 죽어가는 사람을 강제로 살려내는 의학이 생겨나서 콧줄로 또는 배를 뚫고 식사를 해결하고 살게 되었다.


몸이 시간을 알려주는데 의학은 인간의 몸의 말을 듣지 않고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밥을 먹고 배를 채운다고 노쇠한 사람이 걸어 다니지 못하는데 목숨줄 하나 매달아 놓고 살려 놓았다고 한다.


사람은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자의든 타의든 자연을 벗어나 인위적으로 살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는 것이다. 자살하는 것도, 타살을 당하는 것도, 명이 다되어 자연사하는 것도, 운명이고 타의에 의해 연명치료를 하며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도 운명이다.


누구나 잘 살고 싶듯이 누구나 잘 죽기를 원한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목숨을 이어가는 것처럼 비참한 삶은 없다. 아니 이미 그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식음을 전폐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차마 볼 수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놓고 보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가려는 사람을 붙잡는다고 영원히 사는 게 아니고 임시방편이고 억지로 사는 사람이나 바라보는 사람이나 피차 고통의 시작이다. 자신의 의사로 결정질수 없을 때는 더 비참하고 순간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신 결정을 해준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더 하는 결과만을 가져온다.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고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데 시간을 보낼수록 아픔은 더해지고 슬픔은 더 깊어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다만 운명의 신은 인간의 갈길을 따라다닌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시작은 무엇이고 끝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후회와 미련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는 계절을 닮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연속 속에서 살아간다. 만화 속에서는 몇십 년 앞의 일을 생각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미래의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엉뚱한 공상은 인간이 바라는 허망한 이야기만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만화 속에 있는 공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올지라도 답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공상과 과학 그리고 의학이 발전해도 답이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 다만 생이 다하여 몸이 준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오래 사는 게 전부가 아니고 갈 때를 알고 떠나는 계절을 닮아야 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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