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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은... 아버지표 손칼국수가 먹고 싶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비가 온다. 하늘이 운다. 무슨 슬픔이 그리 많아 한없이 운다. 대성통곡도 모자라 찔끔찔끔 운다. 소나기가 오더니 이슬비도 오고 장대비가 오더니 보슬비로 온다. 하늘은 심술이 잔뜩 나있고 온통 시커먼 구름으로 하늘을 덮었다. 저녁 굶은 시 어머니 얼굴 닮았다는 말이 생각난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밉상 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 난 사람은 언젠가는 시어머니가 되는데 시집살이 심하게 당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며칠째 오는 비가 어제는 천둥번개까지 동반하고 난리를 쳤다. 밤새 조용하던 하늘이 새벽에 또 한줄기를 내리는 바람에 아침 일찍 잠이 깼다. 이런 날은 칼국수 생각이 난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이유 없이 좋아한다. 어릴 때 먹던 습성으로 손칼국수만 고집하기 때문에 번거롭긴 해도 먹고 나면 진짜 칼국수를 먹은 것 같아 매번 손 칼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몸이 약하신 엄마 대신 아버지가 방망이로 손수 밀어서 만들어 주시던 칼국수를 생각하며 나는 그때로 돌아가 어린아이가 된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셨다. 엄마가 밀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을 해 주시면 아버지는 방망이로 고루고루 얇고 판판하게 밀어 넓게 만들어 놓는다. 서로 달라붙지 않게 넓게 펴 놓은 반죽 위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 돌돌 말아 일정한 굵기로 칼로 썰어 쟁반에 놓으신다. 엄마는 부엌에서 멸치로 다시를 내어 국물을 만들며 칼국수에 들어가는 야채를 가지런히 썰어 놓으신다. 국물이 팔팔 끓으면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칼국수를 집어넣고 국자로 휘휘 저어준다. 뜨거운 국물에 들어간 국수는 용솟음을 치며 뜨겁다고 몸부림을 친다. 엄마는 다시 한번 국자로 저어 국수를 달래 놓고 썰어놓은 야채를 넣고 섞어주면 칼국수는 오색찬란한 옷을 입는다.


채로 썰은 호박과 양파와 당근은 칼국수와 함께 만남의 춤을 춘다. 엄마는 불을 약하게 하고 파와 마늘을 넣고 소금과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춘다. 우리들은 동그란 앉은뱅이 상에 둥그렇게 앉아서 칼국수를 기다리며 군침을 삼키고 커다란 냄비에서 팔팔 끓고 있는 칼국수가 완성된다. 엄마는 칼국수 먹을 때 쓰는 커다란 대접에 칼국수를 담는다. 하나 둘…여덟 그릇이다. 우리는 각자 앞에 있는 칼국수를 입에 넣으며 한 마디씩 감탄을 한다. 음… 너무 맛있어. 정말 맛있는 칼국수다. 6남매 먹는 모습에 흐뭇해하시며 행복이 피어나던 지난날이 그리워진다. 이제 나는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도 되었고 시 어머니와 장모도 되었다.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이 피어난다. 집집마다 집에 와서 먹는 특별한 음식은 있겠지만 우리 애들은 손칼국수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만들어 준 것이 이제는 손주들까지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사진:이종숙)

특별할 것 없던 옛날에 먹던 칼국수는 이렇게 우리 집에서 는 특별한 음식이 되어간다. 아버지가 칼국수를 좋아하셨고 그러다 보니까 형제들도 다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젠 우리 식구 모두가 좋아한다. 어쩌다 집에 오는 아이들에게 칼국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 되었다. 어쩌다가 못 먹고 가게 되면 그 서운한 얘기를 두고두고 해서 잊지 않고 해 준다. 언젠 가 막내딸 생일날 "엄마가 뭐 맛있는 거 해줄까?"라고 물었더니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칼국수만 먹고 싶어".라고 해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칼국수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 나는 여전히 손칼국수를 만든다. 평범한 레시피로 밀가루에 기름 조금과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해서 뭉친 다음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5분 정도 넣어 둔다. 반죽이 식으면 꺼내서 몇 번 주물럭 거리다가 작은 덩어리로 자른다.


하나씩 밀대로 밀어 칼로 썰어 만들면 근사한 칼국수가 되기 때문에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만들어 먹는다. 나 역시 미는 것은 남편의 도움을 받는다. 남편은 두꺼운 국수를 싫어하기 때문에 정성 들여 얇게 밀어주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옛날에 아버지가 해주시던 칼국수는 더이 상 먹을 수 없지만 남편이 밀어주면 나는 엄마가 하시던 것처럼 국물을 만들고 야채를 썰고 끓인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아이들이 밀고 며느리들이 국물을 끓인다. 맛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전승하며 세월이 간다. 언젠가 한 번은 둘째 며느리가 손주 생일날 초대해서 가 보았더니 다른 한국 음식도 여러 가지 만들고 우리가 좋아한다고 칼국수를 맛있게 끓여 놓아 맛있게 먹었던 적이 있다. 오늘같이 추적추적 비가 오 는 날은 손칼국수가 생각난다. 오늘은 호박과 감자 그리고 부추를 넣고 해 먹어야겠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생전에 아버지는 국수를 정말 좋아하셨는데 돌아가시던 날에는 점심에 라면이 드시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라면을 끓여드렸는데 맛있게 드시고 소파에 앉아 계시다가 주무시는 듯 떠나셨다. 아버지 기일이 다가와서 그런지 아버지가 해주시던 칼국수가 생각이 난다. 어릴 적에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들어주시던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처럼 손으로 밀어서 칼국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밀가루 두 컵이면 남편과 둘이 실컷 먹으니 어서 일어나서 만들자. 생각난 김에 일어나야지 게으름 피우다 귀찮아지면 못 해먹을지도 모른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아버지 칼국수가 생각 나는 날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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