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텃밭김치 맛 좀 보세요.
by
Chong Sook Lee
Jun 16. 2021
(사진:이종숙)
여름이다. 세상이 다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흙밖에 없던 텃밭에 씨를 뿌린 지 채 한 달도 안되었는데 채소가 파랗게 덮여있다.
난데없이 내린 눈폭탄도 맞고
엉뚱한
우박 세례도
맞았는데 죽지 않고 살아난 채소가 나날이 커간다.
손톱만 하던 게 어느새 제법 자라서 텃밭을 꽉 채웠다.
파릇파릇한 모습이 예뻐서 그냥 놔두고 싶은데 멈추지 않고 성장한다.
더 놓아두면 꽃이 피고 억세 질 것 같아 뽑기로 했다.
작년에는 달팽이가 채소를 다 갉아먹어 제대로 된 이파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달팽이가 먹은 거라서 꺼림칙해서 그냥 밭을 갈아엎어버렸는데 올해는 달팽이도 없고 아주 싱싱하게 잘 자란다.
지난겨울에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벽난로에 날마다 불을 때게 되었고 다른 해 보다 훨씬 많은 재가 많이 생겼다.
남편이 병충해를 없앤다는 재를 겨우내 모았다가 봄에 텃밭에 뿌려준 덕분인지 올해는 달팽이가 없다.
파랗게 피어나는 어린 배추와 열무와 갓을 보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맛있게 담아서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물김치를 담그면 딱 좋게 자랐으니 미련 없이 뽑는다.
갓과 열무와 배추가 섞여있어서 가릴 것 없이 무조건 뽑아보니 여간 연한 게 아니다.
더워서 입맛이 없어지는 여름날에 그냥 쌈을 싸서 먹어도 좋고 잘게 채 썰어서 비빔밥 고명으로 얹어 비벼먹어도 맛있을 것이다.
지난주에 계속 비가 와서 땅이 부드러워 힘 안 들이고 잘 뽑혀 뽑아 놓으니 큰 양푼에 하나 가득 되었다.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남편과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다듬었더니 힘도 안 들고 지루하지도 않다.
커다란 그릇 세 개를 나란히 놓고 물을 받아 번갈아 씻었더니 채소가 살아 움직이듯 싱싱하다.
소쿠리에 담아 물을 빼고 커다란 그릇에 넣고 굵은소금을 슬슬 뿌려 놓는다.
김치거리가 절여지는 동안 풀국을 끓여 식혀 고춧가루 파 마늘 양파 새우젓 소금을 넣어 섞어 놓는다.
보통사람들은 믹서에 갈아서 건더기 없이 매끈하게 국물을 만드는데 나는 아무래도 무언가 아삭하게 씹히는 게 좋아 갈지 않고 그냥 잘 섞는다.
어린 배추라 금방 절어져 소금물을 버리고 물에 한번 헹궈 김치통에 배추와 섞어놓은 양념을 번갈아 넣는다.
손으로 너무 만지면 풋내가 나기 때문에 양념을 비비지 않고 번갈아 놓고 위에서 꼭꼭 눌러주면 된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하루정도 밖에 놓으면 알맞게 익는다. 하나하나 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씨앗을 뿌려서 이렇게 자라는 것을 보며 즐겁게 한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나온 어린 채소를 다듬고 씻어서 김치를 담가 먹는 재미는 참 신선하고 씹을 때 아삭아삭 하며 씹히는 식감이 너무 좋다.
풀국을 쑤어 물김치로 한번 담가 놓으면 비빔밥을 해 먹어도 좋고 더운 날 국수를 삶아 시원하게 물국수를 해서 먹어도 좋고 냉면에 파릇파릇하게 얹어 먹어도 좋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나무 그늘에 멍석 위에 앉아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 한 숟갈 넣어 비벼먹던 생각도 난다.
맛있는 김치 하나만 있어도 가까운 친구를 불러 밥을 먹고 싶어 했는데 요즘엔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담아 놓고 보니 밥은 함께 못 먹어도 이 사람 저 사람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해마다 해 먹는 물김치지만 올해는 유난히 맛있게 담가졌다.
언제나 문이 열려있어 오다가다 들리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 집이다.
한 곳에 오래 살다 보니 오며 가며 들리는 친구가 많고 무언가 맛있는 것이 있으면 오다가다 들려서 주고 간다.
때에 오면 밥을 먹고 때가 아니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갔는데 코로나는 그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누군가라도 지나가다 들리면 주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담아졌는데 누가 올까 궁금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두 차례씩 백신을 맞아 조금은 자유스러워진 것 같아 마음이 평화롭다.
머지않아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밥도 먹고 수다도 떨며 배꼽을 잡고 우스갯소리도 하며 살아갈 날도 머지않았다.
다시 만나는 날에는 열무 비빔밥도 먹고 국수도 말아먹기를 바라본다.
(사진:이종숙)
keyword
물김치
텃밭김치
별미
88
댓글
13
댓글
13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Chong Sook Lee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Chong Sook Lee의 브런치입니다. 글밭에 글을 씁니다. 봄 여름을 이야기하고 가을과 겨울을 만납니다. 어제와 오늘을 쓰고 내일을 거둡니다. 작으나 소중함을 알아갑니다.
구독자
2,877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참새와 나의... 행복한 하루
무서운 통증이... 나를 찾아왔다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