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오니 아픈 사람이 참 많다. 환자복을 입으니 나도 환자 같다. 물론 아파서 왔지만 환경에 따라 적응한다. 병원에 오니까 더 아픈 것 같다. 무서운 통증이 왔다 가고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딘가에 숨어서 다시 올 것 같이 뜨끔뜨끔한다. '오더라도 천천히 와라. 지난번처럼 오면 견딜 수 없다'. 하며 통증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의사는 다시 아프면 기다리지 말고 당장 응급실로 가라고 하고 응급실은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할 수 없어 왔다. 줄을 서고 기다리다 접수를 하고 체온을 재고 증상을 이야기한다. 의자에서 기다리면 창구에서 이름을 부르고 손목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쓴 밴드를 받는 것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 뒤가 문제다. 의자에 앉아서 호명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른다. 순서가 있지만 순서가 없다. 응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먼저고 응급 환자가 먼저다. 속으로 아프고 터져도 보이지 않으면 뒤로 밀린다. 빨리 부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괜찮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통증은 보이는 증상이 아니라서 기다려야 한다.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눈에 보이는 대로 결정한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응급요원들이 다섯 명을 접수했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것을 보면 힘들지만 더 급한 사람을 살려내야 하는 게 병원이니까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아파도 그들의 판단을 따라야 하는 게 규칙이다. 언제 내 이름을 부를지 몰라 화장실을 갈까 말까 망설인다. 화장실에 간 사이에 이름을 부를지도 몰라서다.
이름을 부를 때 없으면 차례를 놓쳐 뒤로 밀려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야 하면 가는 수밖에 없다. 통증이 왔다 갔다 하고 화장실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2시간 반이 지난 뒤에 이름을 불러 병실로 안내한다. 병실에 들어가도 의사가 바로 오는 게 아니다. 그냥 앉아서 맥없이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니 간호원이 혈압을 재고 병리사가 피검사를 하고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이야기한다. 응급실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빨리빨리 급하게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응급실이 바깥세상보다 천천히 돌아가는 게 이상하다. 생사가 오가는 곳에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을 것이다. 기다린다고 빨리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젯밤 7시에 콩국수를 먹은 게 전부인데 배도 하나도 안 고프다.
아침도 굶고 점심도 아직 안 먹었는데 밥 생각이 하나도 없다. 어제저녁을 먹은 후로는 19시간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단식을 하다 보면 자연히 치유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병은 어쩌면 너무 많이 먹는데서 오는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병명을 몰라서 죽었고 현대는 너무 많이 먹어서 병에 걸리는지도 모른다.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죽으면 바로 천당이나 지옥에 가지 않고 연옥이라는 곳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잘살았는지 아니면 형편없이 살았는지 알아보며 기다리는데 응급실에 들어와 기다리다 보니 여기가 바로 연옥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피검사를 하고 의사를 만나고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기다리며 병원문을 걸어서 나가야 한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도 한참 걸린다. 먼저 온 사람, 더 급한 사람을 먼저 하고 내 차례는 나중이다. 아무리 아파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 좋은 결과를 받아 들고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통증이 나아질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기다리자.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다 정상이니 집에 가라고 하는 결과만 받으면 된다. 비바람이 쳐도 눈보라가 불어도 자연은 죽지 않는다. 이 정도 아파서 죽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아프면 소중함도 알게 되고 부족한 것도 배운다. 고마운 것도 생각나고 미안한 것도 생각난다. 건강이 얼마나 중한지도 생각하며 지금을 넘겨야 한다.
사진 찍고 검사하는데 무슨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지만 기다린다. 아침 8시에 도착해서 2시가 되었다.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늦다. 선진국이라는 이곳에서 아프면 큰일 난다. 얼마 전 맹장염 때문에 응급실에서 24시간을 기다리다 결국 터졌다는 말을 들으며 기가 막혔는데 이까짓 6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집으로 가도 된다는 말만 들으면 된다. 오후 2시가 되니 의사가 와서 설명을 한다. 보이지 않는 돌이 내 몸을 지나가느라 여기저기 찔렀나 보다. 돌은 보이지 않지만 다시 아프면 다시 오라지만 돌이 아주 나갔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간다. 연옥에서 천국으로 보내지는 기분이다. 나를 기다리는 천국 같은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돌 장난이 남기고 간 통증이 다시 나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