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체감온도 39도로 너무 더워서 잠을 설쳤다. 지하실에서 누워있다가 반 지하실로 올라와 침대에서 조금 자다가 2층에 있는 방으로 갔다. 이미 새벽에 가까운 한밤중이라 창문을 통해 바람이 들어와 조금 눈을 붙이는데 아침 5시에 새소리에 눈이 떠졌다. 새들이 안 일어나고 뭐하느냐며 밖에서 난리가 났다. 웬만한 더위는 밤새 식어 아침에는 선선한데 이번 더위는 밤에도 식지 않는다. 아침부터 영상 23도가 넘는다. 오늘 37도 가 넘을 거라는 예상에 미리 질린다.
남편은 어느새 하루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뒤뜰에 의자와 간이침대를 내놓고 그네에 쿠션도 올려놓고 텃밭에 물을 주며 하룻밤 사이에 껑충 자란 야채들을 뽑는다. 해가 뜨고 날이 더워지면 채소도 힘들어 축 늘어진다. 더 힘들어하기 전에 아침나절에 뽑아 씻어 담가 놓으면 점심에 싱싱해서 아삭거려 먹기 좋다. 상추와 쑥갓 그리고 깻잎을 물에 담그니 새파랗게 살아난다. 더위에 얼마나 목이 마를까 생각하니 일찌감치 뽑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7시도 안 되었는데 햇볕이 따갑다. 해를 등지고 서 있으면 등이 따가워서 그늘에 앉아서 파란 하늘을 본다.
(사진:이종숙)
바람이 조금씩이라도 불어주면 좋은데 나무도 풀도 꼼짝하지 않는다. 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가만히 조절을 하는가 보다. 일찍부터 봄을 구경하겠다고 눈을 헤치며 나온 파가 씨를 하나씩 물고 서있는데 벌들이 오며 가며 꿀을 빨아먹는다. 여름 한 철 살다 갈 야채들이 할 일을 하느라 바쁘다. 그들은 열심히 자라고 우리는 열심히 먹어주는 관계이지만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잡초를 뽑아주어야 한다. 천만다행인 것은 올해는 달팽이가 없어 너무 좋다. 작년에 다 키워놓은 야채들을 달팽이들이 갉아먹어 밭을 다 갈아엎어 버렸는데 올해는 없다.
새파랗게 올라오는 건강한 야채를 보면 없던 입맛도 되살아 난다. 오늘은 야채로 무엇을 해 먹을까 생각하며 남편과 깨끗이 씻는다. 매일 물을 주며 잘 자라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 듯이 예쁘게 잘 자란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자식 같은 생각에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하듯이 야채를 키우는 우리는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에는 계란에 토마토와 파와 치즈를 넣고 오믈렛을 해 먹었다. 더운 여름에는 특별히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최고다.
(사진:이종숙)
커피 한잔에 오믈렛과 토스트로 가벼운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진다. 코로나로 집밥을 해 먹으며 살아온 지 오래되어 이제는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아침 먹고 조금 있다가 점심 먹고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모르지만 먹어야 산다. 추운 겨울에는 뜨거운 국밥 한 그릇 이면 족하듯이 뜨거운 한여름에는 신선한 야채만 있으면 된다. 상추를 쌈으로 먹기도 하고 무쳐서 먹기도 하는데 요즘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무쳐먹으니 상큼하고 좋다.
깻잎은 갖은 양념해서 쪄먹으면 밥도둑이지만 가늘게 채 썰어서 다른 채소들과 섞어서 고추장 한 숟가락 넣고 비빔밥을 해 먹으면 고소하다. 오늘처럼 더운 날은 부엌에서 지지고 볶으며 땀을 내지 말아야 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운데 요리한다고 땀을 내면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전에 지친다. 씻어 놓은 야채는 물에 담겨있고 밥은 밥솥이 할 것이다. 연어는 냉장고에 있으니 꺼내서 얇게 썰면 된다. 계란 프라이는 준비가 다 끝나고 맨 나중에 만들면 된다. 이제 메뉴는 정해졌다.
오늘 점심은 연어와 야채를 넣어 비빔밥을 해 먹는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야채만 넣어 먹어도 맛있는 게 비빔밥이지만 더위에 자칫 영양이 떨어질 수 있기에 연어를 넣았더니 더없이 맛있다. 상추 쑥갓 깻잎과 오이를 대충 썰어 밥 위에 얹어놓고 얇게 썰은 연분홍색의 부드러운 연어와 고추장 한 숟가락 그리고 예쁘게 만든 계란 프라이로 모양을 잡아주고 고명으로 노란 유채 꽃 한 송이를 올려놓고 깨소금을 뿌려 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되었다.
먹기 전에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먹으니 천상의 맛이 난다. 늘 먹는 요리이지만 오늘같이 더운 날에 텃밭에서 직접 기른 야채와 함께 먹으니 더 좋다. 나무와 꽃이 있는 자연을 벗 삼아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는 뒤뜰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에서 하는 남편 과의 식사는 더 없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많이 있어서가 아니고 화려해서가 아닌 그저 평범속에 찾아지는 행복이다. 남편이 화단에서 잘라다 꽃병에 꽂아놓은 장미꽃, 원추리꽃 그리고 노란 유채꽃이 뜨거운 여름의 사랑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