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그 많은 비가 들어 있었을까? 비가 오고 싶은데 핑계가 없어 못 오더니 한바탕 쏟아지려고 작정을 했나 보다. 구름 속에 숨어있던 해가 들락날락하면서 하루 종일 추웠다 더웠다 해서 옷을 입고 벗고 를 번갈아 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무섭게 퍼붓는다.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 내려 붓는 빗발은 세상을 정신없이 두드린다. 그동안 오지 못한 게 억울하기라도 한 듯 마구 퍼부어 온 세상이 흠뻑 젖는다. 오랫동안 목말랐던 대지가 촉촉이 젖어간다. 아무리 퍼부어도 땅이 다 빨아먹는다. 쩍쩍 갈라져서 속을 드러내 보이더니 제 모습을 찾으며 매끈해진다.
지붕을 때리고 천지가 흔들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밖을 내다본다. 내릴까 말까 하다가 말던 지난 한 달 동안 무척이나 기다린 비가 밤새 오더니 빨간 해가 떴다. 아직도 연기가 있는지 옛날에 보았던 미세먼지 잔뜩 낀 한국에 뜬 해처럼 해는 빨간데 주위는 뿌옇다. 연기가 비로 다 씻겨 내려가길 바랬는데 아직 조금 남았나 보다. 그나마 많은 비가 와서 아주 상쾌하다. 온도는 많이 내려가 춥지만 그래도 아직 7월 하순이니 더운 날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하는 사람들의 불평은 끝이 없다. 비가 와서 그런지 세상이 더 푸르게 보인다.
올여름에 기록적인 폭염으로 잔디는 누렇게 타서 보기 흉하다. 이른 봄 눈이 녹았을 때 파랗던 잔디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촉촉한 잔디 위를 걸으면 부드러워 신발을 벗고 싶은데 뻣뻣하게 마른 누런 잔디는 신발을 신어도 서걱거린다. 마치 여름이 떠난 어느 늦가을 잔디밭의 모습이 되어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하게 한다. 얼마나 날이 더웠으면 풀들이 저리 마를까 하는 마음에 앉아서 잔디를 한번 쓰다듬어 본다. 이제는 성장을 멈추고 익어가는 자연이다. 무성하던 숲도 가만히 있고 아침저녁으로 앞을 다투며 피던 들꽃도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다행히 이번 비로 잔디도 파랗게 되고 산불도 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비가 골고루 오면 좋을 텐데 오라는 곳에는 오지 않고 오지 말라는 곳에는 너무 와서 큰일이다.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빨간 해가 잠깐 얼굴을 보이더니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하늘은 다시 구름으로 덮여있고 어디선가 천둥소리가 들린다. 순식간에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쌓이고 소나기가 쏟아진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번개가 번쩍거리고 그동안 토해내지 못하던 기쁨과 설움을 쏟아낸다. 나무들은 죽죽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있고 텃밭에 있는 야채들도 그리워했던 비를 반갑게 맞으며 파랗게 살아난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흔들며 살아가는 자연이다.
참새가 창문을 두드리며 나와 놀자고 한다. 무엇이 있는지 창가에 앉아서 무언가를 쪼아대고 있다. 심심한지 유리창문도 한번 꼭 찍어 보고 간다.창밖으로 보이는 꺽다리 전나무가 비에 젖어 빗방울을 여기저기 매달고 서있다. 쏟아진 비가 시냇물이 되어 흐른다. 하늘에서 구름으로만나 함께 살다가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지며 구름 형제들과 헤어져 비 자매를 만난다. 함께 세상을 흘러가다가 시냇물도 만나고 강도 만나 함께 흐르다 바다에서 모두 만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남을 지속하면서 이루어진다.
삶은 오고 가고 보내고 맞으며 돌아간다.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맞고 내일을 맞는다. 만나고 헤어지며 또 다른 만남을 만들며 살아간다. 둘이 만나 세 아이들이 생겨나고 짝을 만나 여섯이 되더니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열두명의 가족이 되었다. 세상은 돌고 돌며 영원하고 끝없이 이어진다. 세상이 전염병으로 아파하는 동안에도 태어나고 생겨나며 지속되는 삶은 너무나 아름답다. 보이지 않고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과도 소통하기에 삶은 더없이 아름답다. 종말론이 범람하여도 지혜로 이겨나간다. 끝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고 시작은 또 다른 시작으로 꿈틀거린다.
아픔도 고통도 희망과 소망으로 다시 태어난다. 비를 기다리고 해를 기다리며 구름을 만나고 바람을 만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영원토록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