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을 기약하며 계속되는 삶의 여정

by Chong Sook Lee


안개 자욱한 아침을 연다. 세상은 아직 고요한데 자연은 아침을 연지 오래다. 구름으로 가려진 태양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밝은 빛을 주고 나무들은 바람 따라 살랑거린다. 새들은 어느새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고 애교스러운 허밍버드는 벌써부터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재롱을 부린다. 떠나왔는데 돌아갈 시간이다. 떠나와 머물던 날은 지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산과 강은 안개 옷을 입었다. 뽀얗게 안개로 가려져 세상은 아직 잠을 깨지 않는다. 아침 일찍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갈 준비를 하며 텐트를 걷어내 접는다. 어제저녁에 자기 전에 대충 짐을 쌓아 놓았지만 바쁘게 움직인다. 올 때보다 짐이 많이 줄어서 홀가분하다. 긴 시간 동안 가야 할 길이기에 놓고 가는 물건 없이 안팎으로 살피고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길을 떠났다. 집을 떠나고 또 집을 향해 돌아간다.


머무는 시간이 짧았어도 머물던 동안 마음을 다했기에 정이 들었다. 정원을 걸어가면 흐르는 강이 생각날 것이고 사방에 둘러싸여 있던 산이 눈에 보일 것이다. 푸른 하늘과 비와 바람이 살며시 안부를 물으며 속삭일 것이다. 산다는 것은 끝없이 돌고 도는 것이다. 만나고 이별하고 떠나고 돌아가며 어느 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까지 계속된다. 아이들이 자라고 손주들이 태어나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인간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갖기 위해 애쓰며 살다 간다. 자손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으며 자신을 잊고 사는 게 모든 부모의 염원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다. 앞뒤로 산들이 둘러싸여 있고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르는 캠핑장을 떠나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아직은 조용한 고속도로 다. 온 길을 돌아가는 것은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올 때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어 좋고 아침나절의 새로움이 있어 좋다.


길눈이 어두운 나는 여러 번 가 본길도 새로운 길 같아서 매번 좋아하지만 보고 또 본 이곳은 볼수록 좋다. 산 중턱에 앉아 쉬는 운무로 또 다른 산의 모습이다. 침엽수가 푸르름을 자랑하는 호숫물은 완벽한 초록색이다. 어쩌면 저리도 고울까? 인공으로 만들 수 없는 절대적인 절경에 푹 빠진다. 인디언 추장 얼굴을 한 바위도 목에 운무를 걸고 누워서 하늘을 본다. 앞으로 뒤로 산이다. 산이 산을 안고 겹겹이 쌓인 첩첩산중을 달리는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산을 뚫고 가고 있는 듯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를 끝없이 달린다. 산중 곳곳에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록키를 바라보며 1시간 반 정도 지나니 제스퍼를 지난다. 캐나다에 오랜 세월 살아오는 동안 제스퍼는 그야말로 자주 다닌다. 긴 겨울 동안 보지 못한 봄이 오면 그리운 봄을 구경하러 가고 여름에는 온천을 하러 간다. 산속에 자연 온천으로 잘 가꿔놓은 온천은 거의 해마다 몇 번씩 갈 정도로 자주 간다. 그리 멀리 있지 않고 아침 일찍 나와서 온천하고 점심 먹고 집에 가도 충분하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게 찾는다.


가을에 단풍 구경을 하러 가면 천지는 오색으로 물들어 내 눈까지 단풍이 들어 눈을 감으면 고스란히 보인다. 겨울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타러 가는 제스퍼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스키를 타러 갔고 친구들과 배와 말을 타러 가기도 했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 이제는 겨울에 길이 미끄럽고 눈이 오면 가지 않는다. 산속의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로 내리는 폭설로 길을 폐쇄할 때가 있어 웬만하면 겨울에는 꼼짝하지 않는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짧지만 유난히 아름다운 이곳은 겨울이 길다. 사람들은 멕시코와 쿠바 그리고 남미나 미국으로 가서 겨울을 나고 봄에 와서 생활하고 다시 떠나며 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따뜻한 해외에 가지 못해 안타까워했는데 국경도 서서히 열리고 있으니 따뜻한 곳을 찾는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다. 방역과 규제로 부자유스럽던 세월도 끝이 보인다. 어디서 온 것인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당황하며 겪어야 했던 코로나의 시간도 지나고 있다.


(사진:이종숙)

이제는 마스크를 쓰던 안 쓰던 자유롭게 결정하며 산다. 마스크를 써라, 싫다, 잘 써라, 무슨 상관이냐, 하며 다투던 날들이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남편은 열심히 앞서가는 아들들 차를 따라가고 나는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아이들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며 석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다. 산은 늘 거기에 있고 아무 때나 찾아가는 우리를 언제나 변함없이 반긴다. 산 옆에서 나무들에게 물을 대 주는 호수들은 여러 가지 색으로 아름다운 존재를 과시한다. 초록색으로, 하늘색으로, 때로는 진한 군청색으로 산을 비춘다. 주위에 있는 환경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자연을 보며 인간관계를 생각해 본다. 인생을 살아가는 길에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함께 하면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고 같이 있음으로 삶의 의욕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듯이 주위의 환경이 아주 중요함을 느낀다.


기차가 지나간다. 백여 칸도 넘는 기차가 산 중간에 놓인 철길을 간다. 호수가 보이고 산이 보이는 길에 기차가 가니 더없이 낭만이 있다. 고속도로에 차들은 앞서고 뒤서며 어딘가를 향해서 갈길을 간다. 같이 가던 차가 다른 길로 빠지고 뒤에 오던 차가 앞을 추월한다. 조금씩 시내에 가까워지고 차들은 더 많아진다. 낯익은 길을 따라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향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양식을 주로 먹었는데 지금은 한식을 더 좋아한다. 날이 더운데도 묘하게 뜨끈뜨끈한 찌개가 생각난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시켜 먹으며 3박 4일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잘 다녀왔음에 감사하며 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떠나 있는 사이에 날씨가 엄청 더워서 야채들이 목이 말라 시들고, 앞 뜰에 서있는 자작나무도 메말라 가지 몇 개가 죽어간다. 얼마나 날이 덥고 가물었으면 나무가 죽나 싶어 남편은 나무와 텃밭에 물부터 준다.


아이들은 차에서 짐을 내리고 젖은 텐트를 펴서 말린다. 떠날 때 완벽하게 정리를 하고 떠났는데 돌아와 짐을 내려놓으니 집안이 정신없지만 집은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반긴다. 역시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오니 늘 집에 있었던 듯 이곳에서의 생활로 이어진다. 있어야 할 곳으로 물건을 정리하고 조금 쉬다 보니 또 하루가 조금씩 저물어 간다.


눈을 감으니 록키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다녀왔는데 또 가서 만나고 싶은 곳이다. 운무가 산허리에서 춤을 추고 뽀쪽한 산들이 언제든 다시 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 다른 여정을 기약하며 감사 속에 먹고, 자고, 놀며 살아가는 삶은 이렇게 또 계속된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기 위해, 오늘을 살기 위해, 내일을 향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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