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날마다 행복을 캔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뿌연 하늘에 해가 빨갛게 떠오른다. 요즘에 날씨가 덥고 공기가 탁해서 인지 아침해의 모습이 다르다. 올해는 왜 이리도 날씨가 더운지 모르겠다. 여름이 와도 별로 덥지 않아 여름을 느끼지 못하는 곳인데 정말 더운 여름이다.


며칠 동안 텃밭을 돌봐 주지 않았다고 풀들이 잔치를 한다. 상추와 쑥갓 그리고 깻잎은 그 뜨거운 여름에도 서로를 기대며 잘 자란다. 고추도 여기저기 기다란 고추를 매달고 연신 꽃을 피는 것을 보니 좋다. 해마다 고추 모종을 심어놓고 날씨가 좋지 않아 여름 내내 고추 자라기를 기다렸는데 올해는 뜨거운 여름이 고추를 잘 자라게 해서 아주 고맙다.


더운 여름에 입맛도 없고 해먹을 반찬거리가 시원치 않을 때 텃밭에서 말없이 자라는 채소는 여름 밥상에서 크게 한몫한다. 야채를 썰어 넣고 연어를 넣고 연어 비빔밥을 해 먹던지 열무김치를 넣고 고추장 한 숟갈 넣어 비벼먹어도 잃었던 입맛이 돌아온다. 올해는 열무가 잘 되어 틈틈이 뽑아 김치를 담아서 냉장고에서 익혀 조금씩 꺼내서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무김치에 비빔국수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이것저것 넣어 볶음밥을 만들어 먹으니 새삼스레 고향의 맛이 생각난다.


(사진:이종숙)

지난겨울에 단호박을 하나 사다 먹을 때 봄이 오면 밭에 심어 보려고 호박씨를 바싹 말려서 보관해 놓았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을 때 호박씨도 화분에 몇 개씩 넣어 놓았는데 어느새 보니 동글동글한 싹이 흙을 뚫고 세상으로 나와 있는 게 보였다. 하나 둘 꺼내어 텃밭에 여기저기 심어주고 지인들과 조금씩 나눴다. 호박잎이 풍성하여 꽃은 언제 피려나 했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노란 꽃이 아침 인사를 한다. 수꽃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암꽃이 몇 개 있어 앵두만 한 단호박을 달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호박잎이 무성해서 밭을 덮어 그늘에서 자라는 상추가 뜨거운 여름도 잘 버티고 있다.


호박순은 기둥을 타고 오르기를 좋아하는데 옆에 있는 사과나무를 타고 위로 뻗어 올라간다. 매일 머리 숙이고 텃밭에 있는 야채들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사과가 주먹만 하게 자라고 있다. 사과가 자란 줄도 모르고 야채들만 예쁘다, 잘 자라라, 고맙다고 했으니 혼자 자란 사과한테 미안하다. 새파란 사과를 보니 입안에 침이 고인다. 사과나무 중 하나는 8월 하순이면 떨어지는 조생종이고 다른 나무는 10월 중순에 눈이 오고 서리가 와야만 따먹는 만생종이다. 그렇게 추수한 사과는 달콤하고 싱그럽고 물이 많다. 과일로 먹고 사과잼을 만들기도 하고 사과파이를 만들기도 한다. 빨갛게 익은 사과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따먹기도 하고 지인들과 나누어 먹기도 한다. 상품가치가 없지만 농약 한번 쓰지 않는 오가닉이니 옷에 쓱쓱 문질러서 한번 깨물어 먹는 맛은 기가 막히게 맛있다.


원추리는 한동안 꽃을 푸짐하게 피더니 지금은 다소곳이 앉아있고, 벌레 때문에 수난을 당하던 장미는 이파리를 다 뜯겨 앙상하더니 이제야 이파리가 하나 둘 다시 생겨난다. 먹을 거 다 먹고 난 벌레들은 먹을게 없어지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제라도 벌레 없는 때를 틈타서 제 할 일을 하려는 장미가 고맙다. 작년처럼 이제 이파리를 달고 꽃을 피면 찬바람 나는 늦가을까지 꽃을 피게 될 것이다. 벌레들의 등살에도 가시로 몸을 보호하며 살아남을 수 있어 다행이다.


(사진:이종숙)

백 년 만에 꽃을 핀다는 소나무는 꽃이 다지고 솔방울을 살 찌우며 옆에서 자라는 노란 들꽃을 내려다보고 있다. 몇 년 전에 어딘가로부터 이사 온 이름도 모르는 들꽃 무리는 해마다 이때쯤 노랗게 피어 앞뜰을 환하게 한다. 벌들은 늦게 피는 작은 들꽃에 매달려 꿀은 나르느라 바쁘다.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뒤에 피는 꽃이라 유독 벌들의 사랑을 받는다. 특별한 향도 없고 별로 예쁘지 않은데 조촐하게 피는 모습이 좋다. 아무리 더위가 극성을 부려도 여름도 거의 끝나간다. 여름이 가기 전에 피고 싶은 대로 맘껏 피어나길 바란다.


여름이 가고 나면 지겹도록 뜨거웠던 여름도 그리워질 것이다. 봄은 왔다 갔지만 기억도 없다. 그토록 기다렸던 봄이건만 어떤 봄이었는지 그저 아련할 뿐이다. 세월은 그렇게 왔다가기를 반복하고 지나간 날들은 그리움으로 다시 핀다. 폭설을 용케 견딘 앵두나무가 꽃을 예쁘게 피더니 앵두 풍년을 가져다주었다. 달콤 새콤한 앵두를 손주들과 따 먹으며 여름을 보낸다. 어린 손으로 하나하나 따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차고와 집 사이로 돌아가면 작은 딸기밭이 있는데 보지 못한 사이에 딸기들이 어느새 빨간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하나 따 먹으니 제법 달고 맛있다. 12년 전 둘째가 결혼하던 해에 한국에 사시는 분들이 축하차 오셨는데 우리 집 뜰에서 자라는 딸기를 보며 신나게 따던 모습이 생각난다. 딸기나무 옆에 못 보던 나물이 가지런히 자란다. 어디서 온 나물인지 아주 부드럽고 연해 보인다. 동의나물인지 곰취나물인지 모르지만 그냥 관상용으로 본다.


세월은 그렇게 간다. 텃밭을 둘러보며 유난히 더웠던 올해 7월을 보내고 희망의 8월을 맞는다. 나의 텃밭은 계절마다 행복을 안겨주고 나는 텃밭에서 날마다 행복을 캔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마가목 열매가 빨갛게 되면 가을이 문을 두드릴 것이다.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또 하루를 보낸다.


(사진:이종숙)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음을 기약하며 계속되는 삶의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