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과식하여 열이 난다

by Chong Sook Lee
(이미지 출처:인터넷)

냉장고가 과식하여 열이 난다. 꽉꽉 채워놓고 먹기도 전에 또 사다가 쌓아 놓기 때문에 냉장고는 과식을 한다. 코앞이 마트인데 아이들이 온다고 잔뜩 사 왔다. 과일 야채 고기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사다가 맛있게 만들어 주기에 바쁘다. 어쩌다 친정에 가는 나를 위해 김치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밑반찬을 만들어서 차곡차곡 준비하시고 곰국을 끓여 얼려 놓으신 엄마가 생각난다. 몇 년에 한 번씩 친정에 가면 시차로 낮에는 졸고 새벽에 일어나 밤을 꼬박 새운다. 시차가 다르니 식욕도 없고 아무리 맛있는 게 있어도 입맛이 없어 먹지도 못하고 밤에 잠도 잘못자는 모습에 안타까워하셨다. 시차에 적응이 될 때가 되면 또 떠나야 하는 날짜가 가까워 온다. 멀리서 오는 딸을 위해 냉장고는 너무 배가 불러 들어갈 틈도 없었던 친정엄마처럼 나도 그런다.


엄마가 만드는 음식은 무엇이든지 맛있다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려는 마음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갈 자리가 없이 꽉 찬 냉장고를 열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게 쌓여있는 것을 볼 때마다 '다 먹을 때까지 더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틈만 나면 이것저것 사 온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독한 마음을 먹고 며칠을 파먹었더니 조금씩 틈새가 보인다. 헐렁해진 냉장고가 살 빠진 배처럼 홀쭉해졌다. 먹는 게 참 무섭다. 꽉 차 있던 냉장고는 이제야 살겠다는 듯이 부드럽게 잘 돌아간다. 무거워서 힘들어하며 쩔쩔맸는데 조용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편안하게 들린다. 맛있다고 잔뜩 먹고 배불러서 어쩔 줄 모르며 옆으로 드러누워 씩씩 거리는 모습이 아니다. 사람이나 냉장고나 과식이 문제다. 어차피 때가 되어 배가 고플 때 먹으면 되는데 한꺼번에 먹고 괴로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씩 사다 놓고 떨어지면 가서 사도 되는데 왜 미리 욕심내고 사다 쌓아 놓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욕심이란 알 수 없다. 없는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많은데 또 사고, 있는데도 더 산다. 밀레니엄이라는 2000년 도가 되면 세상이 멈추고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말을 하며 사람들은 그야말로 전쟁이라도 시작된 듯 많은 물건을 사다 놓았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화장지부터 발전기까지 준비했는데 아무 일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갔다. 그 뒤로 코로나가 유행한다고 하니까 물건을 또 사기 시작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물건을 사서 쌓아 놓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물건이 없어서 못 산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마음으로 불안해서 준비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준비를 해서 나쁜 것은 없다. 하지만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물건들은 쓰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냉장고를 채워도 다 먹지 못하고 옷장을 채운다고 다 입지 못한다. 먹을 때가 있고 입을 때가 있는데 음식은 기다려주지 않고 변하고 옷은 유행이 변한다. 아이들을 더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저것 사 오느라고 돈을 쓰고, 상할까 봐 신경 쓰느니 차라리 한번 더 가서 필요할 때 조금씩 사 오는 게 낫다. 매일 여러 명의 식구가 먹는 양은 많아도 냉장고까지 배를 불릴 필요는 없는데 다 내 욕심이다. 냉장고나 사람의 뱃속이나 여유가 있어야 한다. 과식해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 한번 과식하면 그 후유증은 며칠씩 가고 식욕도, 입맛도 떨어지듯이 과식한 냉장고는 어딘가에 숨어있는 재료를 썩게 한다. 틈틈이 찬 공기가 사이로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결국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게 된다. 모자라면 라면을 먹더라도 지나치게 많이 쌓아 놓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웰빙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은 건강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밥도 별로 안 먹고 고기도 적당히 먹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과식하지 않고 체지방 운운하며 가려먹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사다 놓으면 안 된다. 몸무게를 빼고 근육을 만들고 과식하지 않으며 건강을 지키려 노력하는데 집에 오면 살이 찐다고 싫어한다. 자꾸만 해주고 싶은 엄마 맘인데 애들은 살 빼기가 힘들다고 참는다. 도와주는 셈 치고 더 이상 냉장고를 배불리 지 말아야 한다. 이젠 배 부르기 위해 먹는 시대가 아니다. 음식도 즐기기 위해 조금씩 먹고 물건이 많이 있다고 행복한 시대가 아니다. 눈으로 보고 느낌으로 행복을 찾고 사는 풍요로운 시대가 되어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옛날 한창 먹을 때 생각해서 한상 가득 차려 놓으면 반도 못 먹고 많이 남는다.


물론 아이들도 나이가 들어 옛날처럼 못 먹지만 요즘애들은 꼭 먹을양만 먹지 절대 과식하지 않으니 억지로 먹으라고 할 수 없다. 이제는 내가 변해야 한다. 냉장고도 비우고 뱃속도 비우며 아이들한테 배워야 한다. 꽉 찬 냉장고가 아니고 알찬 냉장고에서 필요한 것을 먹고 냉장고를 과식시키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선생님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아이들 먹이기 위해 사다 놓고 치우느라 고생하고 나중에는 결국 버리게 되니 역시 사람이나 냉장고나 과식은 금물이다.

(이미지 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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