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이 무엇일까? 의식주가 해결되면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물건으로 얼마만큼의 수요가 필요한 것일까? 집안에 들여놓을 옷과 신발, 그릇과 가구를 비롯하여 생활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씩 사들인다. 그러다 보면 집안에 물건이 꽉 차게 되어 사 가지고 한두 번도 안 쓰고 버려지거나 자리만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옷이나 그릇 하다못해 가구도 유행이 있으니 싸다고 많이 사다 놓으면 당연히 무용지물이 된다. 청소할 때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안 쓰는 물건과 유행이 지나 필요 없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대담하게 정리를 못한다.
따지고 보면 없어도 될 물건들이 거의 다 인 것은 사실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하는 물건들은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책장에는 문학전집을 비롯해 수많은 책들이 읽어주기를 기다리지만 활자가 작아 읽을 수 없다. 아이들 자랄 때 찍어 주었던 사진앨범이 여러 개다. 추억이 담긴 중요한 앨범이지만 요즘 같은 스마트 세상에 필요 없는 물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옷장에는 옷들이 즐비하게 걸려있고 서랍장에도 잔잔한 옷가지들이 꽉꽉 차 있건만 주로 입는 옷은 정해진 몇 가지뿐이다. 그릇장에도 날마다 쓰는 몇 가지의 그릇만 있으면 되는데 여러 개를 쌓아놓고, 신발장 역시 구두 장화 부츠 등 장사진을 이룬다. 때마다, 절기마다 필요하다 생각하며 사들인 물건들인데 몇 번 쓰지 않은 채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며칠 전 청소를 하다가 늘어져 있는 살림들을 바라보며 과연 정말로 내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옛날처럼 물건이 귀한 것도 아니고 무엇이든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까운 편의점에 가면 다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더 이상 물건을 쌓아 놓고 살 필요가 없다. 여행 갈 때 우리는 꼭 필요한 몇 개의 물건만 가지고 떠나듯이 생활하는데도 한 두 개의 여유만 있으면 충분하리라. 우리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애착도 있지만 쓸데없는 욕심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많이 꽉 차게 있음으로 마음에 든든함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옛날처럼 부모가 떠난 뒤에 부모의 물건을 자손 대대로 물려 쓰는 시대가 아니고 부모가 쓰던 물건을 다 갖다 버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서서히 버릴 것은 버리고 줄 것은 주고 하며 정리를 해야 한다.
언젠가는 그 옷들을 입고, 언젠가는 그 책들을 읽고, 언젠가는 그 신발들을 신고, 언젠가는 그 그릇들을 쓰리라는 야무진 생각일랑 그만 접어야 한다. 언젠가라는 것은 쉽게 오지 않는다. 오늘 하지 못하는 것은 내일도, 모레도 아니 먼 훗날도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옛날 생각이 난다. 오래전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밖에서 놀다 집에 올 때는 길에서 조그만 자갈이나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서 아주 소중한 것인 양 손에 꼭 쥐고 들어 온다. 주워온 것들을 책상 위에 놓거나 서랍에 넣어 놓고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게 하며 내가 청소하느라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면 혹시 없어졌나 하여 이리저리 찾아다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어느 날 집안 청소를 하는데 내가 벽장과 서랍에 소중하게 넣어 두었던 것을 꺼내보니 초라하고 낡은 물건들과 구식이 되어버린 그릇들이었다.
나는 왜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을 그렇게 보물처럼 그 속에 넣어 두었을까? 오랜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아마 그 당시 나의 눈에는 그것들이 소중한 물건으로 생각이 들었나 보다. 나는 여전히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에 처박아 놓고 산다. 여전히 입지 않은 새 옷이 옷장에는 걸려있고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안 신는 신발을 나란히 놓아둔다. 옛날 그릇 들은 무거워서 가벼운 것들만 쓰다 보니 그대로 찬장에 자리만 차지하고, 책장에 책도 거의 다 읽은 책이라서 다시 읽지도 않을 텐데 그냥 장식용으로 놔두고 있다. 이제는 서서히 정리를 해야 할 때이건만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주위에 계신 몇몇 분이 갑자기 편찮으셔서 아무 정리를 하지 못한 채 병원으로 요양원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니 나도 왠지 마음이 급해진다.
사람일이란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걱정이 된다. 벽장 속에 들어있는 귀중한 것은 그저 보이지 않게 숨겨진 물건이고, 옷장 속에 걸려 있는 입지 않는 화려한 옷은 들판에 흔들리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다. 쓰지도 않고 입지도 않으면서 놓아두는 것들은 쌓아놓은 하찮은 물건에 불과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사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모으고 쌓아놓고 살아가는가. 서랍마다, 벽장마다, 찬장마다 그것도 모자라 간이 선반을 옆에 놓고 겹겹이 무언가를 올려놓고 산다. 그러나 따져보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주머니도 없는 수의 한 벌이고 가루가 되어 뿌려지면 그것으로 끝인데 무엇을 쌓아놓고 살려하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지난가을부터 하루하루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벽장과 서랍을 차지하고 있는 있는 것을 정리하고 모든 것들을 서서히 내려놓고 보니 세상은 더없이 아름답다. 입지 않는 옷으로 빽빽하던 옷장은 헐거워지고 책장과 신발장도 깨끗하다. 찬장과 벽장은 무거워서 쓰지 않는 그릇들을 빼어버리니 간단하고 단출하다. 그동안 숨겨놓고 감춰두었던 오래된 물건은 애초부터 필요 없던 것이다. 무엇이라도 채워놓고 쌓아놓고 살아야 되는 것으로 믿었던 잘못된 생각이었다. 없어도 될 물건을 다 치우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렇게 치우다 보면 어느 날 우리 집에도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공간이 보이고 공간의 아름다움이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