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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계절이 준 선물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오는 것 막지 못하고

가는 것 잡지 못하는 계절이

오고 가

자리 바꿈을 합니다


바람을 불어대며

여름이 간다고 하더니

바람 타고 가을이 찾아옵니다

지붕에 하얀 서리까지 덮으며

진하게 신고식을 합니다


서리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기상청 예보를 듣고

늦여름의 햇살을 즐기며

텃밭에서 앉아있던 채소를

하나 둘 뜯어서 바구니에 담아 봅니다


여름 내내 우리의 밥상에서

우리들의 수다를 들어주고

우리의 푸념을 받아주던 채소

올해 마지막의 모습이

마냥 예쁘지만 않은 이유는

너무나 정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사랑스러운 여름을 기억하기 위해

깻잎 김치를 담고

고추장아찌를 담았습니다

쌈으로 먹어버리면

고추장에 찍어서 먹어버리면

너무 서운해서

조금씩 먹으려고 장아찌를 담았습니다


하연 쌀밥에

깻잎 하나 올려 싸서 먹고

입맛 떨어질 때

매운 고추 장아찌로

입맛을 돌려보려는 마음입니다


긴 겨울에

고국의 음식이 그리울 때

한 번씩 꺼내서 먹으면

그리운 가족을 만난 것 같아 좋습니다


오래전

친구 집에서 먹던 깻잎이 생각납니다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는데

깻잎만 먹는 나에게

깻잎 장아찌 한병 주겠다던 친구는

가을이 와도 소식이 없어

텃밭에서 자란

깻잎으로 장아찌를 담았는데

맛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봄이 기다려질 때

조금씩 꺼내먹는 장아찌

얼마 안 되지만 계절이 가져다준

선물이라 소중합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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