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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 안에 평화가 온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

몇 시간 자고 잠이 깼다. 잠이 들었는데 이유 없이 깨어 반토막난 밤을 만났다. 시계 소리만 크게 들리는 이 시각에 눈은 맑다. 다시 잠을 자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예 일어나 앉는다. 별것도 아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찾아온다. 요양원에 홀로 계신 엄마를 오빠가 비대면으로 찾아뵈며 찍은 사진을 가족방에 올렸다. 너무나 연로하신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찾아가 뵐 텐데 지금 상황으로는 체념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식이 여럿이라도 못가보고 손 한번 만져볼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지난번 3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만 해도 정정하시던 엄마가 식음을 전폐하시며 건강이 안 좋아졌지만 연세에 비해 정신은 아직 괜찮으시다. 이번에 오빠와 올케 언니를 알아보고 고맙다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참 서글프다. 살아온 날이 주는 것은 늙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허무하다. 영원히 살 듯이 열심히 모으고 쌓고 사는 게 사람인데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다. 버리기 위해서 사고 떠나가기 위해서 산다. 살아갈수록 점점 모르겠다.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삶인지 답이 없다. 생각지 못한 전염병 때문에 인간은 초토화되다시피 꼼짝을 못 한다. 백신을 맞아도 걸린다는 코로나의 정체는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답을 알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여 해결책이 생겨나는 듯하더니 변이종으로 다시 갈팡질팡 하며 갈길을 찾지 못한다. 사람들은 아우성이다. 답을 내라고 거리로 나간다. 이제는 어린아이들 에게 접종을 강요하는데 부모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접종을 시킨다.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나중에 생길 수 도 있는 후유증은 뒤로 묻힌다.


다시 시작된 4차 유행으로 세상이 다시 얼어붙는다. 규제가 강화되고 백신 접종을 강요하며 병원은 침대가 부족하여 붕괴되는 상황에 이른다. 시간은 가는데 잠은 오지 않고 엉뚱한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사람은 떠나기 위해 오고 헤어지기 위해 만난다. 가족의 일원이 되어 살다가 크고 작은 이별을 통해 그리워하고 기다린다. 형제지간이라도 때로는 희망하고 실망하며 외면하기도 하고 다시 화해도 한다. 태어나서 같이 자라고 결혼으로 헤어져 살다 언젠가는 끝내 혼자만의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만나서 좋은데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삶이란 냉정하다. 언젠가 다가오는 유효기간이 있지만 정확한 때를 모르기에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젊은 딸을 먼저 보낸 엄마가 애통하며 울던 생각이 난다. 너무 늦게 발견된 암은 손도 댈 수조차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사고로 죽지 않고 준비를 할 수 있어 너무나 다행이라던 그녀는 2년을 살다 갔다. 2년 동안 차근차근 마음의 준비를 하며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아들을 놓고 가는 발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이 안 간다. 6개월이라는 선고를 받았지만 그리 악화되지 않아 조금 더 준비를 할 수 있었지만 얼음판 같은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떠나고 보내며 이별을 슬퍼하지만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남은 사람은 아픔을 안고 또 살아간다. 옆에 있을 때는 영원히 오래도록 함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고 새로운 삶으로 이루어진다.


잠은 여전히 오지 않고 정신이 맑아진다. 인간은 매일매일 무언가 연습을 하며 산다. 긴 잠 속으로 빠져들어 다시 깨어나지 않기 위해, 영원히 잠들기 위해 매일 밤 잠을 자며 연습한다. 잊기 위해 기억하고 모르기 위해 알려고 한다. 배운 것은 잊고 잊어야 할 것은 기억한다. 주기 위해 빼앗고 버리기 위해 얻기를 갈망한다. 자기 위해 깨어있고 보내기 위해 기다린다. 화해하기 위해 싸우고 용서하기 위해 오해한다. 끝을 보기 위해 시작하고 청소하기 위해 더럽힌다. 만나기 위해 헤어지고 죽기 위해 산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다. 쌓기 위해 허물고 허물기 위해 쌓는다. 오르기 위해 내려가고 내려가기 위해 오른다. 해는 뜨기 위해서 지고 지기 위해 뜬다. 글은 쓰기 위해 지우고 지우기 위해 다시 무언가를 쓴다.


전쟁이 나고 가뭄과 홍수가 범람하고 화산이 터지고 지진과 폭염과 산불로 세상이 비틀거린다. 세상이 살기 힘든 것을 생각하면 아무도 아기를 낳을 것 같지 않은데 여전히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 자연재해가 만연하는 세상이라 해도 여전히 희망이 있고 더 나은 날을 위해 살아간다.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처는 남아 있지만 미래를 향해 걸어간다. 비록 떠나더라도 남은 것이 있기에 절망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 사라진 모든 사람들의 염원으로 인간은 영원히 존재한다.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맙고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이 감사하다. 미움을 버리고 서운함을 지우며 사랑으로 끌어안는 것은 자신을 위한 행위다.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하며 긍정의 생각으로 바라보면 나에게 좋다. 하늘은 하늘의 일을 하고 땅은 땅의 일을 한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감사하며 살 때 평화는 온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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