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는 아침에 구름 낀 하늘만 올려다본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고 깜깜한 하늘이다. 이것저것 만들어서 먹으면 좋겠지만 두 식구 먹기 위해 하기도 번거롭다. 그나마 가까운 지인들과 서로 주고받던 과일과 송편도 코로나 4차 유행으로 만나지 못해 추석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상황이다.
왕래 없이 카톡으로 이런저런 추석에 대한 사진을 주고받으며 쓸쓸한 추석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도 안 하면 추석은 잊힐 것이다. 요즘 애들은 추석은 모르고 추수 감사절이나 챙기니 추석날이라고 음식 준비를 하게 되지 않는다. 만들어서 차려놓으면 맛있게 먹고 갈 텐데 서로 바쁜 세상에 추석은 한국 명절이라고 미루고 산다.
이민 초기에 여유가 없어도 아이들에게 추석을 알려주기 위해 음식도 만들고 추석 사진도 보여주며 달맞이도 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따로 살고 멀리 살다 보니 그것마저 안 하고 산다. 추석 명절이 자손들에게 이어지지 않고 우리 세대에 끝나버리는 것이 서글프기는 하지만 이곳 나름대로 추수감사절이 있으니 다행이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에 터키를 굽고 여러 가지 음식을 해놓고 지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살았는데 코로나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각자 먹고 각자 살아가는 개인주의가 되어 간다. 이웃집 숟가락 수를 알던 때와는 세상이 달라졌다. 친한 사람들조차 멀리서 손으로 인사를 하며 지나치는 세상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마음까지 멀어지게 하고 외면하는 세상을 만든다. 코로나가 끝나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가 어색할 것 같은 시간이 지난다. 처음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만나지 못하는 그리운 마음이 절실했던 생각이 나는데 세월이 흐르고 일상이 되면서 그러려니 하면서 만나지 않고 살아간다.
코로나가 극성 중에도 열심인 신자들은 여전히 성당을 나가고 있지만 우리는 성당을 가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안 가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성당에 가기가 쑥스러운 만큼 긴 세월이 흘러간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앉아야 하고 옆사람에게 혹시나 코로나를 주게 될지 모르고 받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에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성당에 가지 않아도 유튜브 영상을 볼 수 있고 성경도 읽으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살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종교도 명절도 제사도 옛날 것들이 사라지고 모든 것들을 '줌'으로 하는 세상이다. 만나지 않고 사는 세상이 되어 참 서글퍼진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먹고 놀고 웃으며 정을 나누던 일은 이제 역사책 속으로 들어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삶이다.
옛날 것은 없어지고 잊히고 새 물건들이 사랑을 받는다. 어둡고 칙칙한 것들은 산뜻하고 깔끔한 새 것들에 밀려 사라져 간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옛날 물건은 티가 난다. 새로 유행이 된다 해도 현대에 맞게 복고풍을 만들어 옛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좋고 귀한 물건들을 아끼다가 결국에 아무도 모르게 쓰레기 통으로 버려지는 예를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만 현실이다. 그래도 값비싼 고품은 박물관으로 가지만 고품이 되지 못하는 물건들은 버려진다. 추석명절이라 고향을 찾고 부모님을 방문하며 산소를 찾아가는 풍습은 정말 아름답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는데 그것은 나만의 욕심인지도 모른다. 바쁜 아이들이 산소를 찾아오지 못한다고 묘지도 없이 생전에 좋아하던 장소에 뿌려 버리는 세상이 되어간다. 고향도 없고 묘지도 없고 먹고 마시는 명절이 되고 희미한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도 없이 사는 현대인들이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제사음식을 만들며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대는 없고 멋지게 포장된 제사음식을 사다가 차려놓고 영상으로 함께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본다. 코로나는 우리의 정다운 일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바꾸어 놓았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일상을 찾지 못한 채 새로운 삶의 모습을 탄생시켰다.
뉴스로 보는 한국의 추석은 그나마 푸짐하다. 아직도 줄 이은 귀성객들로 고속도로가 꽉 차고 가족끼리 하는 성묘객들의 모습도 따뜻해 보인다. 한국인의 추석이 세월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한국인의 뿌리는 영원할 것 같다. 추석이라고 하지만 이민 사회에서 점점 무뎌가는 명절의 의미가 안타깝지만 한복과 송편을 보면 더없이 그립다.
한국은 추석 연휴로 많은 사람들이 추석명절을 즐기듯이 이곳도 추수 감사절이 연휴라서 가족들이 모이는 큰 명절이다. 추석은 쓸쓸하게 그냥 넘어가고 다음 달에 오는 추수감사절에 아이들과 함께 커다란 터키를 구워 놓고 잔치를 하고 싶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서로 조심하면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구름 낀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데 보름달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욕심을 부려본다. 둥근 보름달을 보며 그리운 형제들에게 안부도 묻고 싶고, 소원도 빌고 싶은 것은 고국을 떠나온 모든 이민자들의 명절날 느끼는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쟁반같이 둥근달이 떠 있는 남산에 당장에 뛰어가고 싶다. 어릴 적 부르던 노래를 목청 높여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