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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노는 가을과 포옹한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지붕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밤 온도가 갑자기 떨어져서 아침에는 춥다. 밤새 불어댄 바람으로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길가에 뒹구는 스산한 아침이지만 강가로 간다. 일찍 온 가을이 가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어 강을 끼고 있는 트레일을 걷는다. 공원과 강이 연결된 작은 다리 위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본다. 오색찬란한 완벽한 가을 풍경이 눈이 부시다. 하늘은 파랗고 단풍이 곱게 물든 숲은 찬란하다. 강 건너에 보이는 숲은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파란 하늘을 품고 있다.

(사진:이종숙)

계단으로 올라가서 강을 향해 다리를 건너 걸어 본다. 해마다 보는 풍경인데 올해는 더 아름답다. 옆으로는 차들이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눈앞에 펼쳐진 강이 유혹한다. 이토록 세상이 아름다운데 우리 둘만이 보는 게 너무 아깝다. 사람들이 나와서 이걸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리를 건너 강가로 들어간다. 강변에서 갈매기와 오리들이 사이좋게 헤엄을 치며 날갯짓을 한다. 햇살이 너무나 곱다. 세상은 코로나로 전쟁을 하는데 강가에는 코로나도 없고 전쟁도 없이 평화롭다. 빠르게 흘러가는 강 저쪽 편에 누군가 배를 저으며 가고 두 사람이 강기슭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이종숙)

강물이 하늘을 안고 흐르고 하늘 높이 기러기떼가 날아간다. 어느새 따뜻한 남쪽으로 이사를 가는데 뒤쳐진 한 마리가 뒤쫓아가느라 꽉꽉 대며 열심히 따라간다. 햇살에 비치는 단풍잎이 더없이 화사하여 이리저리 보며 사진을 찍으며 앞으로 열심히 걸어간다. 길은 노란 낙엽으로 덮여 있고 다람쥐 들은 나무를 오르내리며 겨울을 준비한다. 숲 속에서 강을 바라보는 의자가 눈에 띈다. 가족이 세상을 떠난 이를 기르기 위해 갖다 놓은 의자에 앉아본다. 앞으로 흐르는 강물을 보며 떠난이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해본다.


(사진:이종숙)

오고 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좋은 하루를 기원한다. 커다란 배가 강기슭에 묶여 있다. 지난여름 가뭄으로 수심이 너무 얕아 운행을 못 한 채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고 있는 배가 쓸쓸한 가을을 맞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 이런 강이 있어 코로나를 잊고 걸을 수 있어 다행이다. 매일 다니는 산책로에서 볼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강물을 보고 걸으니 속이 시원해진다. 집에서 할 일을 찾으면 시간이 잘 가지만 집안일은 비 오고 추운 날 하기로 하고 나오길 잘했다. 오늘 오지 않으면 이렇게 멋진 가을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다가 오르막길을 걷고 내리막 길을 걷는다. 오래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다. 기분이 너무 좋아 아픈지도 모르겠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사는 숲은 평화롭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덩달아 물들어 가며 계절에 순응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오리 한쌍이 강가에서 데이트를 한다. 앞서고 뒤서며 헤엄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강 건너편에 사금을 채취하는 사람도 있고 낚시하는 강태공도 보인다.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서 다른 편으로 걸어가는 긴 코스를 잡았는데 도중하차는 없고 끝까지 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왔던 곳이라서 낯이 익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라 걷다 보니 더워서 겉옷을 벗고 걷는다. 아침에는 손이 시려서 장갑이 생각났는데 지금은 땀이 난다. 다리를 건너서 숲 속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경사가 심해서 오르고 내림이 많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오고 간다. 날씨가 화창하게 좋아서 인지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나뭇잎들이 다 떨어질 텐데 때마침 잘 나왔다. 앞으로 난 길을 쭉 따라서 간다. 강가에 커다란 바위가 물에 잠겨서 하늘을 보며 강물과 놀고 있다. 그 옆에는 오리가 헤엄을 치며 물속에서 무언가를 잡아먹고 있다.


가다 보니 낭떠러지 가까운 오솔길로 들어섰다. 자칫 잘못하면 강으로 떨어질 것 같아 조심스레 걷는다. 비 오는 날은 미끄러워 아주 위험할 것 같은데 자전거 바퀴 자국이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강과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만하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 가도 가도 한없이 걷고 싶고 봐도 봐도 멋있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이 시시하다 생각한 게 미안하다. 멀리 가야만 여행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가까이에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곳이 많다. 이런 곳에는 코로나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마스크를 쓰고 병이 옮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무들이 공짜로 주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산다. 컴퓨터에서 만나는 유 박사도 좋고 구 박사도 좋지만 이렇게 나와서 자연을 보며 걸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소파와 친하면 빨리 노화되는 인간의 몸이다. 누워서 빈둥대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가벼운 차림으로 한바탕 걷다 보니 행복이 저절로 온다. 멀리 있는 행복을 찾아 갈게 아니다. 행복은 숲에 있고 강에 있고 자연에 있다. 창조주의 작품이 고스란히 전시된 자연을 걷다 보면 삶의 고통도 고뇌도 다 녹아내린다.

파란 하늘에 반달이 떠있다. 숲 속에서 피어나는 가을이 너무 아름다워 달님도 가지 않고 가을을 만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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