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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사는 야생동물이 되어본 날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구름이 잔뜩 껴 있다.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옷을 벗는다. 가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아 가을을 만나러 숲을 향한다. 나무들이 샛노랗게 단풍이 들었고 낙엽들이 산길을 덮고 있다. 너무 예뻐서 발길을 그쪽으로 돌린다. 나무 사이로 길이 하나 보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데 오늘은 그 길로 향해 걷고 싶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설렌다. 어떤 길인가 하며 앞으로 걸어가 본다. 무척 경사가 가파른 길이라 숲이 아니고 산 같아 열심히 올라가 본다. 숨이 차지만 오르다 보면 평지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간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주택가가 나온다. 집 구경을 하며 다시 이어진 숲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낭떠러지 길이 나온다. 더 이상 길이 없기에 돌아서 나오다 중간에 작은 오솔길로 연결된 길을 따라 걸어본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걷는데 길은 길인데 길 같지가 않지만 걸어서 내려가 본다. 자칫 잘못하면 무서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데 가다 보면 좋은 길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가는데 길은 나오지 않고 험한 숲이 앞에 보인다.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온 길을 돌아서 나온다. 입구에 있는 길은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며 만들어진 짧은 길인 것 같다. 커다란 공터에 고목이 몇 개 서있고 수많은 낙엽이 잔디를 다 덮어 낭만이 넘친다. 낙엽을 밟으며 걸어본다. 다시 숲으로 이어진 길이 보여서 걸어 들어갔는데 얼마 걷지 않았는데 깊은 골짜기의 멋진 절경이 펼쳐지는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가까이 있다니 정말 기가 막힌 절경이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는 계곡이다. 가을이 전부 그곳으로 모여 회의를 하듯이 오색 찬란하고 백 여 미터 정도 되는 절벽을 내려다보는데 아찔하다. 이곳으로 오지 않았으면 보지 못할 황홀함이다. 젊은 남녀 둘이서 오솔길로 들어가기에 우리도 그들 뒤를 따라 걸어가는데 그들은 중간에 서서 절벽 구경에 바쁘다. 그들 옆을 지나 우리 나름대로 걸어가는데 길이 없다. 돌아 나오기에는 너무 늦어서 앞으로 걸어간다. 끊어진 길을 걷다 보면 길이 나오고 길인 줄 알고 따라간 길은 끊어져 있다. 힘들게 올라간 길은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어렵게 내려간 길은 오르막길로 이어졌다. 길인 듯 길이 아닌 길을 걸으며 인생의 길을 생각한다. 인생도 길 한번 잘못 들어서서 한평생 고생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 하는데 길인 줄 알고 들어섰다. 돌아서지도 못하고 앞으로 가자니 위험하지만 안 갈 수는 없다. 자칫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낭떠러지 행인데 겁도 없이 걸어간다. 나무를 붙잡고 기고 걷고 하며 앞으로 간다. 길이 아닌데 길이라고 생각하며 걷는다. 아래는 가파른 낭떠러지 계곡이고 숲은 나무로 앞이 보이지 않는데 앞으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토록 숲이 깊고 험할 줄 몰랐다.

남편과 나는 야생동물이 되어 본다. 숲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산짐승처럼 나무를 헤치고 오르내리며 나가는 길을 찾아 헤맨다. 발발 떨며 오르내리며 안간힘을 써서 다리가 후들후들 한다. 오금이 저리다는 말이 생각난다.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보이고 나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 숲 한가운데서 길도 없는데 야생동물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만일을 대비하여 남편이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주어 들고 앞으로 걷는다.


나무 때문에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이 산중에서 남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야생동물의 밥이 될 테니 열심히 뒤쫓아 간다. 사람들 말로는 늑대, 무스, 살쾡이가 있다는 숲인데 길이 나올 듯 나오지 않고 계곡만 보인다. 기가 막힌 절경이다. 울긋불긋 물든 활엽수 들과 늘 푸른 침엽수들이 사이좋게 조화를 이루며 계곡을 감싸고 숲을 이룬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그 와중에도 아름다운 가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서는데 휴지뭉치 하나가 보인다.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다. 인간은 언제나 쓰레기를 남기고 간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보이니 나름 안심이 된다. 길을 따라 걸으니 멀리 새로 만든 다리가 보인다. 그곳을 찾아가야 한다. 계곡을 지나 숲을 따라 한없이 오르고 내려가도 길은 안 나온다.


땀이 비 오듯 한다. 마음이 걸음만큼 바쁘다. 결국 산책로가 나오겠지만 아직도 갈길은 묘연하다. 여기서 중지하면 안 된다. 길이든 길이 아니든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가야 한다. 노란 단풍잎이 모자에 앉아서 같이 가자고 한다. 좁고 가파른 길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다. 또 하나의 다리가 보인다. 산책로가 가까이 있다는 소리인데 아직 멀었다. 몇 년 전에 숲에서 길을 잃고 황당했던 날이 생각난다. 눈발이 날리고 오고 가는 사람은 없고 해는 져서 사방이 어두웠는데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때 다행히 한사람이 나타나 같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오늘은 그때처럼 눈도 안 오고 대낮이라 두렵지 않다. 남편과 둘이 가면 된다.


눈에 익은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산책로가 보인다. 사람들이 오고 가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길이다.

그토록 찾던 길이 앞에 보인다. 길이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이제 이 길을 따라 집으로 가면 된다. 우연히 들어선 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보통 때 산책로를 걸으면 15분짜리 노선인데 숲 속을 오르내리며 찾아온 길이다. 멀리 보이던 다리를 건너서 숲을 빠져나온다. 숲 속에서 인생을 배운 하루였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고 한번 잘못 들어선 길로 인생은 달라진다. 하늘이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멋지고 아름다운 길로 들어가서 헤매던 날이 저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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