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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정돈의 힘은 위대하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정리 좀 해 달라고 집안이 눈총을 준다. 한꺼번에 후다닥 해버리던 청소였는데 지금은 안된다. 한 군데씩 하면 힘들이지 않고 집안이 늘 정리가 되기 때문에 특별한 날을 잡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요즘 왠지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놀기만 했더니 물건들이 누워서 데모를 한다. 입을 것은 걸고 빨을 것은 빨래통에 넣으면 되는데 몸만 살짝 빠져나온 스웨터와 바지 그리고 양말이 갈 곳을 찾지 못한 낙엽처럼 방안을 굴러다닌다. 아무리 귀찮아도 치우지 않으면 쌓이는 게 살림이니 만사를 제쳐놓고 청소를 시작해 본다. 둘이 사는 집에 무슨 먼지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자고 먹고 텔레비전이나 보는데 그 많은 먼지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사실 사는데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는데 늘어놓고 산다. 인생이 하루만 살고 말 것이 아니기에 이것저것 필요 이상으로 사다 놓고 살아야 하지만 있는데 또 사고 다 쓰지 않았는데 나중에 쓴다고 사다 놓아서 조금씩 쌓인다. 청소할 때마다 다시는 더 이상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새롭고 좋은 게 있으면 산다. 옷이고 살림이고 있는 것 쓰고 입겠다고 사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그동안 야금야금 사들인 물건들이 서랍에 쌓여가고 오래된 것들은 그냥 버려지는데 힘들게 벌은 돈을 왜 그리 헛되게 쓰고 사는지 모르겠다. 안 사도 되고 없어도 되는데 물건을 사면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지 그냥 이유 없이 사다 놓은 물건이 이제는 짐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뚜렷하여 아무것이나 내가 안 쓴다고 누구를 줄 수도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서랍에 무엇이 그리 많은지 꽉꽉 차있고 옷장에도 옷이 촘촘히 걸려있다. 신발장도 그릇장도 틈이 보이지 않게 놓여 있는데 사실 쓰고 입는 것은 정해져 있다. 가을이 간다고 하니 겨울옷을 가까이 내놓아야 한다. 성당 갈 때 입는다고 걸어놓은 옷들이 지난 2년 동안은 손도 대지 않고 그냥 걸려있다. 잠깐 나갈 때 입는 것은 모양을 위주로 하는데 집에서 입기는 불편하여 입지 않는다. 청바지에 편한 티셔츠나 스웨터를 입고 생활하다 보니 자꾸 편한 옷만 입게 된다. 이쁘고 고운 옷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편하고 헐렁한 옷이 좋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몸에 끼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것만 입게 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취향도 달라진다. 옷도, 그릇도 편한 게 좋아 비싸게 주고 산 예쁜 것들은 자꾸 뒤로 밀려간다. 방부터 시작해서 청소를 한다.


서랍 정리를 하며 안 쓰는 물건을 꺼내 재활용 봉투에 차곡차곡 담는다. 언젠가 입고 쓰겠다고 버리지 않은 것들을 손도 대지 않은 채 한 해가 다 되어 간다. 새것은 아끼다가 버리게 되니 언제부턴가 새로 산 물건을 먼저 쓰고 버리기 아까운 것은 서랍에 모셔 놓았지만 안 쓰게 되니 서랍만 차지한다. 차라리 안 쓸 바엔 재활용 센터에 가져다주면 필요한 사람들이 쓸 수 있다. 얼마 전 자선단체가 불이 나는 바람에 많은 물건이 불에 타는 사고가 났다. 겨울이 오면 여러 사람들이 겨울 용품이 필요하다고 기부해달라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어차피 서랍 속에서 겨울을 날 물건이라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게 당연하다. 털모자나 장갑 그리고 목도리도 두세 개씩 여유가 있다.


하나둘 정리하며 백에 담아보니 생각보다 많다. 방바닥에 뒹구는 옷이나 정리하려 했는데 대청소를 하게 되었다. 틈틈이 정리해서 버리고 자선단체에 가져다주는데도 여전히 안 쓰는 게 많은데 놀란다. 시간 날 때마다 정리를 해도 청소한 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살아가는데 도전과 용기가 필요하듯이 청소하고 정리하는데도 결단이 필요하다.


며칠 전 영화에 나온 한 장면이 생각난다. 아이 넷을 키우며 임신 막달로 접어든 여자는 다섯째 아기가 나오기 전에 집안 정리를 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 수 없었다. 마침 싼 가격으로 청소와 정리를 해준다는 청소부를 불러서 집을 보여주는데 물건으로 꽉 찬 집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사들인 집안을 보며 청소부는 과감하게 정리를 시작한다. 아기 엄마는 추억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을 용감하게 버리고 정리하며 청소한 집은 전혀 다른 집으로 태어났다.


그토록 정리의 힘은 위대하다.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크면 주겠다고 모아두었던 물건들은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오래전에 알았다. 지금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만 해도 엄청난데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고 못 버리는 것은 어리석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유튜브에 들어가 물건 버리는 방법을 보았다. 사람에게 한때 필요했던 물건도 인연이 다하면 버려야 한다며 하나하나 보여주는데 정말 공감이 갔다. 내게 부모님이 쓰시던 물건이 없는 것처럼 내가 떠나면 내가 쓰던 물건이 없을 것이다. 내가 없으면 내 물건은 임자가 없는 것이고 임자 없는 물건은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내 쓰레기는 내가 버려야 한다.


지금 쓰지 않는 것이나 버리기 아까운 것이나 결국은 쓰레기가 된다. 아깝다 생각 말고 인심이나 쓰자. 보물도 아니고 쓸 만큼 쓴 물건인데 나와의 인연이 다되어 다른 인연을 만나게 하자. 정리를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하던 많은 것들을 배운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모르던 것들을 깨닫는다. 한때 소중하던 사람들도 인연의 끝이 있는 것처럼 물건의 인연도 물처럼 흐른다. 바람이 불어오며 가져다준 인연을 놓아주는 연습을 하며 산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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