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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나뭇잎이 다 떨어진 숲이 휑하다.

나무들은 미련 없이 잎을 다 털어버리고 겨울을 맞는데 철없는 풀들은 아직도 새파란 청춘이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세상에 나오는 풀이 철도 모르고 팔팔하다. 산책길에 떨어져 굴러다니던 낙엽들은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가루가 되어서 생을 마치고 흙이 되었다. 숲 속에 있는 오솔길에 낙엽이 많이 쌓여 길에 나온 나무뿌리들이 보이지 않아 위험하다.


얼마 전 날씨 좋은 어느 날 하늘 보고 나무 보며 신나게 걸으며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길에 나온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으려고 앞에 있는 나무를 끌어안으며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뭇기둥에 이마가 벗어지고 곁가지에 손가락이 찔려 피가 났다.


충격으로 힘들어서 오솔길 한편에 누워 하늘을 보며 숨을 고르고 일어나는 남편을 보며 다시는 낙엽 쌓인 오솔길로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낙엽이 차곡차곡 쌓여서 미끄럽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나무뿌리에 걸려서 넘어지는 것이 위험한 것은 올해 처음 느낀다. 몇 년 동안 산책을 했는데 해마다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고 오래 걷기 힘들다.


산책을 하면서 급하게 걷다가 나도 두세 번 넘어졌어도 남편이 걸려 넘어지니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늘 조심하고 매사에 섬세해서 아무 걱정 안 했는데 몸이 말해주는 것 같다. 어쩌다 나도 모르게 발을 끌고 가다 보면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보이지 않게 숨어 있어 조심해도 사고가 나기 때문에 잘 보고 다니며 사고가 나지 않아 지금껏 재미있게 오솔길을 걸어 다녔는데 이마가 벗어지고 손가락이 찔러서 피가 나와 급하게 집에 와서 약을 바르고 진정하며 넘겼다.


며칠 뒤에 다시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대체 어쩌다가 넘어졌는지 가서 보니 그만한 게 다행이다 할 정도로 그 주위에 위험요소가 많았다. 옆으로 웅덩이가 파여있고 나무줄기들이 여럿이 숨어 있고 넘어진 나무 옆에는 뿌리째 뽑힌 나무가 날카로운 나뭇가지를 하늘로 향하고 길에 누워 있었다. 넘어지면서 앞에 서있는 나무를 붙잡고 앞으로 넘어져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안 그러면 구덩이에 빠져 다리가 부러지거나 뾰족한 나뭇가지에 배를 찔러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다행히 남편이 넘어지면서도 나름대로 균형을 잡아 그 정도로 끝났다.


수십 번 다니던 길에서 넘어지고 나니 곳곳에 위험한 것들이 눈에 띈다. 어떤 것은 뾰족하고 어떤 것은 뭉뚱하며 매끄럽고 어떤 것은 둥글어 잘못 밟으면 넘어지게 되어있다. 자주 가서 아는 곳이라고 얕잡아 보았는지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치고 나니 눈에 들어온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도 좋지만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좋아하다 보니 자꾸 오게 된다.


봄에는 눈이 녹기 전부터 양지쪽에 민들레가 피어 봄을 알리고 넘어진 나무에 버섯이 자란다. 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고 들꽃이 피어나 오고가며 안부를 묻는다. 오르고 내려가며 운동도 되고 새들과 다람쥐들 노는 것도 보며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곳은 천국이 된다. 평화롭고 고요한 자연과 이야기하며 추억도 꺼내고 걱정 근심도 계곡물에 흘려보내며 편안한 산책로에서 만나지 못한 설렘을 느낀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고 말할 정도로 요즘엔 걷기를 강조한다. 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걷기의 매력을 퇴직한 후에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면 저녁에는 파김치가 되도록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눕는다. 남들이 산책 다닌다는 소리를 들으면 누울 시간도 없는 나에게 산책은 사치였다.


퇴직을 하고 시간이 있어 시작한 산책은 나에게 또 다른 삶의 재미와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걸으며 보는 세상은 정말 아름답다.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모르며 살아온 지난날의 삶이 알려 주지 않은 모습이다. 기를 쓰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살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자연은 이야기한다. 봄이 오기도 전에 새들은 봄을 알리고 들꽃은 얼은 땅을 헤치고 파랗게 세상에 나온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나뭇가지에는 겨우내 추위를 견디고 뾰족하게 나오는 싹이 보인다. 어느새 숲은 봄을 맞고 나무들은 잎을 달고 꽃을 피고 열매를 맺으며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다.



올 때를 알고 온 계절은 가야 할 때도 안다. 욕심을 버리며 최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미련 없이 떨어지고 비운다. 다들 떨어지는데 아직도 철 모르는 잡풀들은 저렇게 피어대다 눈이 오면 눈 속에서 겨울잠을 잘 것이다. 철없는 풀들은 철도 모르고 살고 어리석은 인간은 영원히 살듯이 싸움만 한다.

넘어져서 오지 않으려고 생각했는데 우리네 삶이 있기에 다시 찾는다.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다시 만나고 이별하고 기약하기에 온다. 상처 준 사람도 고맙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감사하다. 그로 인해 성장하고 자연과 더 가까이 간다. 지속되는 코로나로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들어 가지만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진다. 나날이 새로운 규제가 생겨나고 새 법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자유가 없어진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사는 세상이 된다.

새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노래를 하며 숲 속을 날아다니고 다람쥐는 가고 싶은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사는 숲 속에서 마음의 때를 깨끗하게 씻고 나온다. 한걸음 두 걸음 걸으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걷는 발길에 평화가 따라온다.

(사잔: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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