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이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부모 자식 형제를 잃고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허망해한다. 가고 싶은 사람도 없고 보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가야 한다.
먼저 간 사람은 남은 사람이 겪어야 하는 아픔을 모른다. 사람은 얼마만큼의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슬픔인지 추억인지 아니면 기억인지 모른다. 가슴속에서 살아가는 버리지 못하는 감정으로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미 문이 닫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고 막혀버렸는데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떠나지 않고 바라보며 산다.
절망을 가져다주는 것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없는 내일도 내일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잘라진 인연은 두 동강이 나서 이어질 수 없는데 이어보려고 한다.
꿰매서라도 이어질 수 있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은 허공뿐이다. 마음으로 붙잡고 있을 뿐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완벽한 이별은 없다. 몸은 없어도 마음에 살고 있는 어떤 존재를 완전히 지울 수 없다. 보이지 않을 때 떠올리며 만난다. 지나간 과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마음은 놓기를 거부한다.
금방 문을 열고 들어 올 것 같아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오지 않는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과거로 돌아가 찾을 수 없다. 사진 속에서 웃고 간간히 찾아와 마음을 할퀴고 갈 뿐 없다.
닫힌 문 밖에서 기다리지 말아야 하는데 마냥 기다리며 조바심한다. 연극에 1막이 끝나 막을 내리고 2막이 시작되고 연극은 다음 스토리로 진행이 된다. 한번 닫힌 1막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1막에서 만나서 1막에서 마지막으로 분장을 한 배우는 더 이상 2막에서는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
삶은 계속된다.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가야만 한다. 어떤 연극이 될지 시나리오 작가만 알 뿐 배우는 연기를 한다. 사람들은 배우다. 작품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는 작가가 아니다. 종말을 뒤집는 것도, 작품을 끝내는 것도 작가의 몫이다. 한번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막을 내린 연극은 허무해도, 기가 막혀도 다시 막을 올릴 수 없다. 어제를 다시 불러올 수 없다. 어제는 어제의 할 일을 하고 갔기에 오늘을 만나야 한다. 사랑을 남기고 그리움을 남기고 간 사람은 할 일을 다했다. 나머지는 살아있는 사람의 몫이다. 괴로워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살아 있기에 감당해야 한다.
후회나 미련도 혼자 이겨내야 한다. 못 견디는 아픔과 이별의 고통은 떠난 사람은 모른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듯이 아무리 애원하고 애통해해도 듣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다. 남은 사람은 살 수 없을 것 같아도 살아진다.
시간이 가고 세월 따라 살다 보면 또 다른 기쁨도 만나고 기억은 희미해진다. 결코 그럴 수 없을 것 같아도 삶이 데리고 간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산 사람은 또 어떻게 해서든지 살게 된다. 슬픔이 너무 깊으면 건강을 해친다. 같이 갈 수도 없고 같이 가서도 안 되는 길이기에 어느 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산다.
슬픔의 깊이도, 아픔의 깊이도 알 수 없기에 내일을 향해 걸어간다. 끝을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한없이 걸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닫힌 문에서 방황을 끝내고 돌아서서 걸어야 한다. 이제 연극에 1막은 끝나고 2막이 시작되었다. 2막이 끝나고 3막이 시작되면 추억처럼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은 끝을 알 수 없이 흘러가는 물줄기처럼 이어진다. 싫어도 좋아도 가야 한다. 끝을 향해 시작하고 끝을 위해 견뎌야 한다. 삶은 연극이고 인간은 연극 배우고 관객이다. 이미 써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살아간다. 배우가 되어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만나고 헤어지며 살고 떠나고 죽는다.
관객이 되어 함께 울고 웃으며 배우의 삶을 바라보고 손뼉 치고 갈채하며 함께 한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는 옷을 벗고 관객은 떠나고 극장은 다시 다음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다. 허무와 미련과 후회 속에 다시 사람들은 배우가 되고 관객이 되어 산다. 작가가 쓴 시나리오에 맞추어 산다. 슬픔과 아픔의 깊이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느끼며 함께 살아야 한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그리움에 통곡하며 망각하며 원망하며 후회하며 산다. 계절은 갔다가 다시 오고 꽃은 졌다가 다시 핀다.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어디론가 가버리고 새봄이 오면 새 잎으로 세상에 나온다.
사람의 인연도 끝나지 않고 다른 무엇이 되어 이어진다. 꽃을 보며 나비를 보며 그리워하고 함께 걷던 길을 걸으며 그때로 돌아가 마음속으로 다시 만난다.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