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하는 나날이 행복하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고요한 아침이다. 매일 아침 시끄럽게 수다를 떨며 하루를 시작하는 참새들이 오늘은 웬일인지 조용하다. 눈 쌓인 앞뜰에 토끼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밤마다 토끼가 앞뜰에 있는 소나무로 와서 잠을 자고 나간다. 겨울이라서 토끼 털이 하얀색이라 눈 인지 토끼인지 구분할 수 없어 한참을 봐야 한다. 아무리 추워도 집을 찾아오는 토끼를 위해 나무 아래에 무언가를 깔아주고 싶은데 저 나름대로 자는 방법이 있다. 사방으로 눈을 밀어 쌓아놓고 가운데에 앉아서 자고 여름에 더울 때는 땅에다 배를 깔고 잔다.


오래된 집이라서 토끼도 편한지 늘 우리 집 주위를 맴돈다. 여름에는 회색 옷을 입고 잔디에 누워있으면 잘 보이지 않고 겨울에는 하얀 옷을 입고 눈 위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봄날에 토끼 가족 4마리가 산책을 나왔는지 소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다 간 적도 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한참을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짐승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짝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가족을 만들며 함께 산다. 토끼는 토끼대로, 까치는 까치대로, 참새는 참새대로, 사이좋게 살아가는 우리 집 뜰이다. 재작년에는 까마귀가 새끼를 데리고 와서 소나무 가지에서 키우기도 했다. 하루는 창밖을 내다봤는데 소나무 가지에 새끼 까마귀가 비에 젖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까만 새끼 까마귀가 청승맞게 집 앞 나뭇가지에 앉아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는데 가만히 보니 금방 세상에 나온 모습이었다. 한참을 쳐다봐도 꼼짝을 하지 않고 가지에 가만히 앉아서 잠을 자고 있어서 날아가려나 했는 데 낮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상해서 소나무 옆으로 가까이 가려고 몇 발짝 걸어가는데 멀리서 새끼를 바라보고 있던 어미 까마귀가 깍깍 대며 앞뜰에 있는 커다란 전나무 꼭대기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짖어 대고 아비 까마귀는 가로등 위에서 깍깍 대고 있었다. 혹시라도 새끼 까마귀를 다치게 할까 봐 난리가 났다. 가만히 가서 보니 금방 나온 까마귀라서 날지도, 걷지도 못하고 간신히 나뭇가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런 까마귀 새끼가 걱정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살펴보았다. 때때로 어미 까마귀가 무언가를 가져다 먹이고 틈틈이 보살피지만 아침이 되면 걱정이 되어 커튼을 열고 며칠 동안 지켜보았다.


새끼 까마귀는 그 자리에서 잠을 자며 어느 날부터 조금씩 자리를 움직이며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낮에는 어딘가로 자리를 옮겨 보이지 않다가 어스름한 저녁에는 소나무로 돌아와 잠을 잤다. 아침이 되면 나무 아래로 내려와 살살 걸어 다니며 땅에서 무언가를 찍어 먹는 시늉을 하고 어미 까마귀와 아비 까마귀는 번갈아 가며 멀리서 지켜보며 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였다. 며칠이 지나고 새끼가 소나무 주위를 걷기 시작하며 까마귀 가족은 동네를 날아다닌다. 동네길을 걸으면 까마귀가 깍깍 대며 아는 체를 하는 것 같고 우리 집 주위를 돌며 다른 새들과 사이좋게 노는 모습을 보면 그때 그 새끼 까마귀 같아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런 일이 있기 몇 년 전에는 까치 샤끼가 걸음걸이를 배우고 날기까지 우리 집 뒤뜰에서 기거하기도 했다. 하루는 일을 다녀와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뒤뜰에서 까치들이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나무 아래를 보니 새끼 까치 두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걷지도 못하며 비틀거리며 나무에 기어오르다 떨어지고 나뒹굴면 어미 까치는 불안해서 깍깍 대고 새끼 까치가 다칠 까 봐 날아다니며 안타까워했던 날이 생각난다. 동네 까치들이 다 모여서 우리 집을 굴러 싸고 빙빙 하늘을 날아다니며 조바심했다. 다음날 새끼 까치들은 어미 까치의 도움으로 담장 위에 간신히 날아 앉기 시작하고 며칠 지나서 나뭇가지에 앉고 높다란 가로등 꼭대기에 앉기 시작하더니 몰라보게 자랐다.


하루는 길 건너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걸어오는데 까치 가족 여럿이 모여 잔디 위에 앉아 노는 게 보였다. 평화로운 운동장에서 걸어 다니며 땅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래전 우리 집에서 걸음마를 배우던 까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 혼자 웃으며 지나쳤던 일도 있었다. 짐승들도 가족의 소중함을 알아 늘 함께 하고 멀리서 바라보며 도움이 필요하면 달려가는 모습은 눈물겹다. 짐승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는데 짐승들의 모정과 가족 간의 의리와 사랑은 인간과 다를 바 없고 자식을 향한 마음은 정말 애틋하다.


오늘은 참새가 오지 않으려나 했던 고요한 아침을 깨고 참새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참새들의 수다 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하루는 행복하다. 나무가 많아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숲 속의 별장 같은 우리 집에서 살아온 세월이 길어져가고 마음은 평화롭다. 새들이 놀고 토끼가 와서 잠을 자고 가는 평화로운 집에서 욕심 없이 산다.

더 많이 갖기를 원하지도 않고 더 높이 오르기를 원하지 않으며 새들과 함께하는 내 삶이 좋다. 눈이 하얗게 쌓인 뜰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가을이 왔다간 흔적은 보이지 않고 겨울의 모습만 보인다. 낙엽이 쌓였던 뜰은 하얀 눈 속에서 봄을 기다린다. 그리워하며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봄을 만날 것이다. 참새들의 수다 소리도 잠잠해지고 까치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가로질러 힘껏 날아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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