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우리네 삶이 있는 숲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숲 속의 오솔길로 들어갔다. 눈이 와서 미끄러울 줄 알고 신발에 스파이크까지 달고 나왔더니 전혀 미끄럽지 않다. 잘 꾸며진 산책로는 넓고 위험하지 않아서 좋지만 날씨가 추운 날은 숲 속의 오솔길이 더 따뜻하다. 옷을 다 벗어버린 나목들이지만 빼곡한 숲은 바람이 없고 조용해서 좋다. 산책로는 사람들이 개를 풀어놓고 데리고 다녀서 개들이 덤벼들어 어떤 때는 두려워서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나는 어느새 나무가 되고 새가 되어 숲에서 논다.


다람쥐가 죽은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있고 건너편 숲에서는 이름 모를 새가 짝을 찾는지 목청 높여 노래를 한다. 눈이 많이 쌓이지 않은 곳을 찾아 걷는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다 보면 숲 속에 우리네 삶이 보인다. 평지를 걷는 것보다 힘들지만 운동이 더 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절경이 너무 좋다. 죽은 나무가 꿋꿋이 서 있고 견디지 못하는 나무는 맥없이 쓰러져 누워있다. 새로 나온 작은 나무들이 여름을 잘 넘기고 추운 겨울을 맞으며 눈 속에 숨어있다.


눈사람 한쌍이 언덕 아래에 서서 숲으로 난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영한다. 아마도 한가족이 와서 만들었는지 엄마 아빠 같기도 하고 형제 같기도 하고 남매 같기도 한 한쌍의 눈사람이 한층 더 정겨워 보인다.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고 바람은 전혀 없어 좋다. 지난여름 연보라색 꽃으로 들판을 아름답게 장식하던 이름 모를 꽃은 누렇게 말라 생을 마감하며 하나 둘 쓰러져 있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혹하던 꽃인데 죽은 모습을 보니 참 허망하다. 죽으면 사람이고 꽃이고 다 저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간다. 나이 먹는 것도 무섭고 죽는 것도 두려운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하루하루 즐겁게 산다. 하얗던 눈 위에 나뭇잎이 떨어져 지저분하지만 멀리 바라보면 여전히 예쁘다.


이제는 계곡물이 완벽하게 얼었다.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보이고 사람들의 발자국도 보인다. 성급하게 얼음 위를 걸으면 얇은 얼음에서 빠질 수 있는데 다들 알아서 할 걸로 믿는다. 숲 속을 걷다 보면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이런저런 것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평소에 안 하던 모험을 하며 계곡을 건너가게 하기 위하여 커다란 죽은 나무를 가져다 놓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원주민 집을 짓기도 한다.


계곡을 끼고 있는 공터에 멋지게 집을 지어놓고 의자까지 가져다 놓았다. 심심하면 놀다 가고 힘들면 쉬었다 가도 될 것 같다. 아이들은 걱정 근심이 없어서 창의력이 좋아 이런저런 물건을 손쉽게 만든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사회라서 다행이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볕이 잘 드는 곳에 다다른다. 앞에 계곡이 여름에는 시원하게 흐르고 나무들이 양쪽으로 빡빡하게 자란다. 뒤로는 듬직한 언덕에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는 늘 하는 생각이 있다. 이다음에 어느 날 저세상으로 간 뒤에도 놀러 오고 싶다.


(사진:이종숙)

그곳은 양지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앞을 바라보고 서 있으면 가슴이 시원하고 마음이 평화롭다. 언제 시간이 되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다리가 있고 산책로로 이어지지만 앞으로 계속 오솔길을 따라 걸어간다.


오색찬란하게 물들었던 숲이 이제는 하얀 옷으로 갈아 입고 봄을 기다린다. 숲에 사는 산짐승들은 이 추운 겨울에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심심한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내리며 바쁜 듯이 움직인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이 숲 속에서 저들이 살아남는 것이 신기하다.


한국 같으면 밤이나 도토리도 많고 감과 돌배도 많은데 이곳에는 고작 마가목 나무 열매와 몇 가지의 빨간 열매가 있을 뿐 그들이 먹을만한 것들은 전혀 없다. 날씨가 추우면 꼼짝하지 않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음식을 찾으러 나와 바쁘게 찾아다닌다. '굶어 죽는 것도 재주'라고 찾으면 뭐라도 찾아 먹고살게 되는 것 같다. 아무리 찾아도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 숲에는 내가 모르는 보물창고라도 있는 것 같다.


지나가는 오솔길은 매일이 새롭다. 눈이 쌓이고 눈이 녹으며 미끄럽다. 잠시도 눈을 팔 수 없고 항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무에 얼굴이 찌르기도 하고 머리를 다칠 수도 있다. 동물이 다니는 길을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만들어 놓은 길이라서 좁고 험하지만 자주 다니다 보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된다. 한여름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고 한겨울에는 추위를 피할 수 있어 좋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파랗다. 마른풀들도 좋았던 여름을 생각하며 눈 아래에 누워서 하늘을 본다. 모든 것들이 메마르고 죽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겨울이 가기도 전에 연한 푸른빛을 띠며 봄을 만드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흑백의 세상이라 사진을 찍으면 화려하지 않아도 그 속에 봄이 오고 있어 예쁘다.


엊그제 늑대가 앉아 있던 산책로를 걸으니 다시 늑대가 생각난다. 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앉아 있던 그 늠름한 늑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세상 모든 만물은 저 나름대로의 생각대로 움직이며 산다. 하찮은 미물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사는 모든 만물은 귀하다.


여름에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와 벌을 보면서 그들의 삶이 결코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본다. 새들이나 다람쥐들도 짝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가족을 위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숲 속에는 나무와 풀들만 있는 게 아니고 우리네 삶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숲을 찾고 아름다운 삶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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